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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동분 소피아 Mar 18. 2018

산마늘 심는 날,
그들의 집을 마련해주다.  

산골 귀농이야기

산골의 봄은 아주 느리게 온다.

느림의 삶을 살기 위해 귀농한 우리에게 ‘느림이란 이런 거야’라고 못박아주려는 듯

느릿느릿 온다.    

 

겨울 역시 봄에게 쉽게 자리를 양보해 주는 건 아니다.

4월까지 세차게 눈을 쏟아 부으니 말이다.     

그래서 3월 화창한 날이라고 해도 꼭 겉에 걸칠 옷을 단단히 입고 밭으로 출근해야 한다.

햇살 따숩다고 발걸음마냥 가벼운 차림으로 나섰다가는 오후 2시가 넘으면 이내 찬바람이 세차게 불어 재끼기 때문에 여벌의 겉옷은 필수 준비물이다.

밭에서 일을 하다보면 속에 화딱증이 나서 겉옷을 벗어던지고 싶지만 이내 불어오는 바람이 아직은 쌀쌀맞기 때문에 참아야 한다.    

 

우리 밭 중에서 가장 해발이 높은 깨밭골 밭에 다녀온 남편이 계단에 잠바를 벗어 놓았다.

왜 잠바를 거기에 두냐고 했더니 봄선물을 받아 왔단다.

이웃 집 아주머님께서 귀농주동자인 남편이 좋아하는 산마늘을 따 주시고 심어 먹으라고 모종도 함께 캐주셨단다. 


산마늘 옆에는 오늘 딴 표고버섯도 있었다.     

아주머님은 꽃모종도 주시고, 이런 모종도 주시는 정 많은 분이시다.

우리 부부가 밭으로 가기 위해 가는 길에 있는 집인데 만나면 들어와 커피 한 잔 하고 가라 하신다.   

  

산마늘은 명이나물, 맹이나물이라고도 하며 고산지대의 그늘에서 잘 자란다.

산마늘의 효능은 항암효과와 면역력 증대, 노화방에 좋으며 콜레스테롤을 낮추어 주고 각종 비타민과 무기질을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잎에서 마늘냄새가 나는 산마늘은 생으로 삼겹살과 함께 쌈을 싸먹어도 좋고, 장아찌를 만들어 두면 오래오래 그 맛을 볼 수 있다.     

초보농사꾼이 산마늘을 좋아하기 때문에 산골에 오래 전부터 몇 번 심었었다.

그런데 야콘이나 고추, 사과 농사에 에너지를 쏟다보니 산마늘은 매번 관리가 잘 안되었다. 

생각나서 올라가 보면 풀과 놀아나고 있어 입으로 들어오는 것보다 죽어 넘어가는 것이 더 많았다.

그래서 한동안 산마늘 심는 것을 포기했었다.     

귀농밥이 고봉으로 쌓일수록 이런 반찬거리는 집 옆 가까운 밭에 심어야 풀관리가 잘 된다는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에 집에서 가장 가차운 곳에 산마늘의 집을 마련해주기로 했다.     

산마늘 모종을 보자 신바람이 나서 늦은 시간이지만 바로 밭으로 올라가 산마늘 심을 평수만큼만 호미로 흙을 돋우어 두둑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여기는 우리집이야’라는 소속감을 가지라고 깨진 항아리로 울타리도 튼튼히 만들어 주었다.     

적당한 간격으로 묻을 구덩이를 조그맣게 파고 물을 준 다음 산마늘 모종을 심었다.

이제 곧 어두워질 기세를 보이는 시간에서야 일이 끝났다.

아니나 다를까.

호수밭에서 일하던 귀농 주동자가 늦은 시간에 뭐하냐며 올라와 본다.     

“이제 내년부터는 산마늘을 많이 먹을 수 있겠는걸. 당신 고생했어.”

그 말에 호미 하나로 늦은 시간까지 이 작업을 해결하느라 몸은 곤죽이 되었지만 그도 나도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어느 시인 말마따나 왜 산골에 사냐고 물으면 나 역시 그냥 웃지요.

 

집으로 내려오며 우리집에서 첫밤을 맞을 아이들에게 속삭여 주었다.

“얘들아, 텃세하는 친구가 없으니 낯설어도 잘자거라.

그리고 할 수 있다면 토끼의 번식력만큼이나 너희도 많이 번식했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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