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동분 소피아 Mar 09. 2018

산골에서 그리움을 다스리는 법

귀농가족의 어느 눈오는 날 단상

그거 아는지 모르겠다.

그리움을 달래는 방법도 계절마다 다르다는 거 말이다.

물론 사람마다 다른 것은 기본이고...     


난 말이다.

날이 좋은 날에는 별의 다섯 모서리에 그리움을 걸어둔다.

모서리가 튼튼하여 떨어질 리가 없고, 그리움이 곰팡이 나고, 좀먹는 일이 없어서다.    

그렇다면 눈오는 날의 그리움은 어떻게 하나???

오늘처럼 이렇게 그리움을 다듬어간다. 나만의 의식처럼...

그러고 시간이 지나면 그리움이 조금씩 온도가 낮아진다.


그러나 정여울 작가는 "그리움도 살았는 생명체와 같아서 제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그저 살려두는 수밖에 없다."고 했듯이 그리움이 그렇게 잠자고 있다가 어느새 불쑥 나타날지 모르는 일이다.

  

오늘 눈이 많이 왔다.

예전에 비하면 새발의 피지만..

귀농초에는 정말 내 허리까지 눈이 왔었다.

면에서 보낸 포크레인이 와서 길을 내주지 않으면 우린 고립이었다.

그렇게 여러 해를 눈의 축복 속에 온가족이 눈썰매 타며, 눈사람 만들며, 눈싸움 하며, 군불 때며, 토끼와 노루 등 들짐승 먹이 주러 산을 헤매며  산골에서 살았다. 

그러려고 귀농했으니까.  

   

겨울 중에서 제일 평온한 때는 눈으로 고립되었을 때다.

그렇게 되면 때도 시도 없이, 연락도 없이 모르는 사람이 찾아오는 일도 없고, 일을 보려고 나 또한 분주하지 않아도 되고,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보내며 내 마음의 뜰에 내린 눈을 볼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또 눈이 와야만 영접할 수 있는 자연 곁에 살고 있으니 이보다 좋을 순 없다.

내가 좋아하는 헤르만 헤세는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나는 자연의 기이한 형태를 바라보는 버릇이 있었다.

관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닌 고유한 매력과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언어에 몰두했다.“고 했다.   

  

(아이들 중,고등학생 때..함께 만들었는데...)


내가  39살 되던 해에 남편은 잘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귀농하자고 했다.

그 등살(^^)에 귀농을 생각하다 허락한 후에야 헤르만 헤세가 어린 아이였을 때 느낀 것들을 하나하나 꼬맹이 한글 깨치듯 깨치고 있다.

(대학 때문에 서울로 간 아이들 생각이 나서 몇 년전 만든 눈사람..)

하늘만 하더라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하늘이 다르다.

봄의 비오는 날 하늘, 봄꽃이 만개했을 때 하늘의 반응이 다르고, 가을의 그 노을을 머금은 하늘이 다르고, 한겨울 눈이 올 때의 하늘의 촉감이 다르다.

    

긴긴 겨울 동안 산골에서 뭐하고 사냐며 걱정해주는 지인들의 말에 난 그들이 뭘 말하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산골에는 겨울놀이가 넘쳐났기 때문이다.

귀농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귀농해서 산골에 살면 기똥찬 뭔가가 있는듯 묻곤했다.

그것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지 뻐근한 뭔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전엔 눈이 왔다 하면 이 정도였다.)

그렇게 눈이 많이 와서 내가 좋아하는 ‘고립’도 되어 보고 겨울을 겨울답게 보냈는데 몇 해 전부터 겨울에 눈이 많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 올 겨울은 눈다운 눈 한 번 안왔다. 

이래도 돼나 싶을 정도로...   

  

(가족사진)


겨울에 눈이 오지 않으면 농부는 봄 가뭄을 걱정해야 한다.

그러니 계절은 제 계절에 맞는 짓을 해야 하는 거다.

장마철에는 비가 오고, 겨울에는 눈이 오고, 씨뿌리기 전에는 비가 오고, 겨울에는 온갖 번레들이며 해충들이 죽을 정도의 추위가 있었야 한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그 고리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올해는 눈구경 제대로 못하겠구나 실망했는데 오늘 눈이 왔다.

귀농 초나 예전처럼 허리까지 오는 정도로는 어림없지만 내가 눈사람을 만들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와주었다.

   

(아빠와 딸이 손잡은 모습...이 정도의 디테일은 있어야지. ^^)


눈이 오니 서울에 살고 있는 아이들 생각이 났다.

함께 살고 있을 때는 함께 이 눈 오는 날을 빡세게 놀았을텐데...

그리움이 목젖까지 차올라 뎅그랑거리면 난 눈사람을 만들었다.

오늘이 그랬다. 설거지하다가 그리움이 감당이 되지 않았다.     

난 소리없이 주방을 나와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오늘은 아이들에게 목도리도 해 주고, 머리에 나뭇잎 모자도 씌워 주었다.)

아이들이 대학을 다니기 위해 서울로 가기 전에는 늘 함께 눈사람을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혼자다.     

눈을 굴린다.

귀농 주동자인 남편, 청춘인 두 아이들, 그리고 나 그렇게 만들어 세웠다.

귀농하여 물에 풀린 잉크처럼 늘 한 물에 살았던 우리 가족..

동글동글 몸을 만들고, 눈썹은 다시마를 오려 붙이고, 입은 작은 꽃송이를 떼어 붙였다.

머리카락이 있어야 했으므로 내가 좋아하는 율마를 조금 떼다가 꼽아주었다.

우리 가족이 되었다.

‘가족사진’을 찍었다.     

그때서야 눈에서 물이 또르르 떨어진다.

아이들에 대한 나의 ‘눈오는 날의 그리움’은 가슴에 응어리지지 않고 그렇게 해소가 되었다.     

내일 다시 태양이 뜨면 난 이 날을 태양만큼 뜨겁게 살 것이다.  

   

그대는 겨울 그리움을 어떻게 달래시나요?
매거진의 이전글 귀농아낙이 기다리는 것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