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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동분 소피아 May 25. 2016

그의 쉼터에 사랑의 색을 입히다.

이번엔 초보 농사꾼의 안식처를 리폼하다.

‘도전은 무모함을 먹이로 한다’ 더니 손재주도 없는 내가 리폼을 한다는 것은 무모함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의 그 무모함은 귀농할 때도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했었다.

    

고작 작은 발판 하나 만든 것이 내 리폼의 시초였는데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 더니 이내 우리 집 현관 앞 데크에 있는 미니 테이블과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귀농 주동자인 초보 농사꾼이 밭에서 돌아와 지친 몸을 걸치고 장화도 벗고, 땀도 식히는 곳이다.

그뿐인가.  

(나도 가끔 앉아 자연의 변화를 눈에 넣는 곳이기도 하는 곳이다.)

   저녁이면 커피 한 잔 들고나가 그곳에 앉아 데크에 설치해둔 스피커에서 빵빵 터져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돌아보는 귀농 주동자인 초보 농사꾼에게는 소중한 곳이다.

  

  내가 이렇게 고막이 터지도록 음악을 들으려고 독가촌으로 귀농했다나 뭐라나.


그렇다고 해도 데시벨이 무한대가 되도록 할 필요는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마는 

서울에서 뇌세포가 파열될듯한 소음에 절어 살다 귀농해서 그런지 이런 것을 만끽하는 모습만 봐도 그의 영혼이 쫀드기처럼 꼬들꼬들해질 것만 같다.  

   

어쨌거나 야외 스피커에서 초보 농사꾼이 좋아하는 노래가 신의 아우라처럼 정수리 위로 쏟아져 내려오니 명당 중에서도 명당이었다.

    

문제는 테이블과 의자가 후졌다는 거다.

처음 서울의 언니에게 얻어 올 때는 쨍쨍했었는데 몇 년의 세월을 지샌 것들이라 이제는 스타일을 있는 대로 구기고 있었다.   


초보 농사꾼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작은 것들이니 그에게 작은 기쁨을 주고 싶었다.

이 알량한 리폼 솜씨루다가...     

“니들 다 일루 와!”

그렇게 리폼 제2탄이 시작되었다.

이 작업 역시 그대로 색만 입히면 되는 게 아니다.

사포질을 팔이 떨어져라 해야 한다.

    

이전 페인트가 군데군데 떨어져 나가고, 떨어져 나갈까 말까 고민하며 반만 들떠 있는 것들을 죄다 굵은 사포로 문질러대야 한다.


그래야 페인트칠을 했을 때 깔끔하고 새 칠이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그런 다음 젯소, 페인트, 바니쉬칠을 몇 차례씩 반복해야 한다.

    

그러는 중에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딸아이가 연휴라고 산골에 잠시 왔다.

오자마자 바로 엄마, 아빠의 농사일을 도와주고, 뙤약볕에서 아빠 테이블과 의자에 페인트칠을 마저 해주었다.     


바니쉬까지 마무리로 바르고, 거기에 밋밋함을 없애기 위해 집에 굴러다니는 미니 종 두 개를 달아주는 센스!!!


색깔이 우중충하여 종의 존재감이 떨어지니 다음에 종만 새빨갛게 칠해야겠다.

그리고 허전함을 없애기 위해 미니 손잡이도 박아주었다.

물론 이 손잡이는 하등 쓸모가 없고 그저 눈요기용임을 밝혀둔다.     

완성품을 본 초보 농사꾼의 반응이 의외였다.

(주물로 된 종에 빨강 칠을 하면 바람이 불 때마다' 나를기덕해달라'며 흔들릴 것만 같다.)

옆구리를 찔러줘야 인사 비스무리한 것을 받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참 좋다고, 참 잘했다고, 이런 것까지 할 줄 몰랐다고 붕붕 띄워주었다.

공짜라고 어마어마하게 띄워주었다.  


이거 슬 걱정이 된다.

사람이 안 하던 짓 하면 숟가락 놓을 때가 되었다는 뜻이라는 데...   

(가끔은 신발을 벗고 자연을 걸으면 대지가 말을 거는 것만 같다.)

사람이 아주 쌈박하고 기똥찬 뭔가가 있어야만 행복에 겨워하는 것은 아니다.

이 작은 소품에 페인트칠을 한 것뿐인데도 거기에 사랑이 깃드니 이태리 가구 저리 가다.

삶은 그런 거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 동분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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