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난로의 단짝 친구
귀농하고 오두막에서 살 때, 우리 네 가족은 그 오두막을 가족이라 여길만큼 사랑했다.
군불 때는 방까지 있었으니 금상첨화인 데다가 창호문으로 달이 놀러 오고, 별들의 속삭임이 깊은 밤 들려오곤 했다.
그 아랫목에 누워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던 그 시간은 영혼의 살을 가장 많이 찌웠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몇 년을 오두막으로 인해 복에 겨워하다가 점점 쥐가 들어와 친구하자는 바람에, 뱀들이 심심하면 마루로 올라오는 바람에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국 집을 짓게 되었다.
집을 지었을 때,
워낙 천장을 높게 했기 때문에 입둔 사람들마다 벽난로를 놓으라고 했다.
벽난로는 우리에게 사치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겨울을 지낼수록 예상했던대로 위풍이 세서 고민에 빠졌다.
결국 벽난로를 놓았다.
집 지을 때 놓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다시 천장을 뚫고 서울에서 기술자들까지 와서 놓았다.
쥐뿔도 없으면서 통은 커서 제일 큰 사이즈로...
사실 큰 사이즈를 한 것은 욕심이기보다는 나무 사이즈를 크게 잘라 넣을 수 있어서 우리에게 더없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여하튼 그 벽난로를 살 때 따라온 장난감 같은 철재 나무 나르는 것이 있었으나 우리들의 이 큰 벽난로 나무를 나르는 일에는 제 구실을 하지 못했다.
(▲ 한겨울을 병아리처럼 따뜻하게, 꽃처럼 밝게 나자는 뜻에서 이 그림으로 '냅킨 아트'를 해주었다.)
나무를 무식하게 통째로 집어넣어 확확 불을 때는 것이라 벽난로 옆에 큰 헝겊천을 돗자리처럼 깔고 거기에 통나무를 쌓아놓고 땠다.
문제는 이 나무가 쓰러지고, 많이 쌓지 못한다는 것...
결국은 이 리폼 솜씨로 '나무의 집'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난 리폼촛자다.
누가 리폼을 가르쳐준 적도 없는 것은 물론이고 누가 리폼하는 것을 어깨너머로나마 본 적도 없다.
산골에 살다 보니 만들어 써야 할 것들이 워낙 많다 보니 이 솜씨가 직접 톱을 든 것뿐이다.
귀농 주동자인 초보 농사꾼에게 만들어달라느니 그냥 '앓느니 죽는 게 낫다'.
(▲민밋한 곳에 초보 농사꾼이 전기선 정리할 때 쓰는 것을 칠해 달았다. 일명 공갈 손잡이)
톱을 들었으나 어디부터 만들어야 할지도 몰랐다.
순서는 무슨 놈의 순서, 그냥 만들면 되겠지...
무식함은 아주 가끔 모든 걸 가능케 해줄 뿐만 아니라 운이 좋으면 행운을 거두어 들이기도 한다.
나의 귀농처럼...^^
이 작업은 전부 다 집에 굴러다니는 나무 조각으로 만들다 보니 나무의 사이즈가 다 다르다.
무슨 상관이랴.
젯소칠, 페인트칠, 스텐실, 냅킨아트, 바니쉬로 마무리 순서지만 시간을 오래 뜸을 들였다.
나무가 안에 들어앉아서도 마르면 좋겠다는 생각에 사이사이 간격을 두어 바람이 통하게 배려했다.
딸이 엄마를 위해 스텐실본을 만들어주었으므로 그의 사랑이 물결치는듯한 나무 그림의 스텐실을 해주니 문패 역할을 해주어 정말 '나무의 집'같았다.
손님이 오면 다가가 서랍인 줄 알고 저 손잡이에 손을 댄다. 공갈 손잡이인 줄도 모르고..
무거운 나무를 날라야 하므로 바닥에 바퀴를 달아 뒷베란다까지 가서 그 너머 나무 창고의 나무를 나르게 되었다.
일일이 나무를 하나씩 들어 옮기는 일이 힘들었는데 이 물건 하나로 '누워서 떡먹기'가 되었으니 뭐니 뭐니 해도 편리함이 최고다.
저렇게 나무를 들여놓으면 쌀 항아리에 쌀을 가득 채운 것처럼 든든하다.
사람 뭐 있겠는가.
든든함이 따사로움을 낳고, 따사로움이 다른 이들을 향한 향기를 내뿜게 하니 그게 최고지 않겠는지..
통창으로 바람이 부딪쳐 나동그라지는 소리가 들린다.
작은 물건 하나 만들었는데 이렇게 마음이 풍요로울 수가 없다.
그래서 난 산골에 필요한 것을 뚜딱뚜딱, 삐뚤빼뚤 만들어 나간다.
사랑을 하나하나 이쁜 때깔로 새겨 넣으며....
그대는 어떤 작은 일에 마음 든든해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