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 애기 때 쓰던 물건의 환생
서울 살 때, 딸아이 돌 무렵 선물로 받은 정리함이다.
지금은 저렇듯 두 칸의 정리함만 보이지만 그 위로 기다란 행거가 달려 있었다.
그러니까 아래는 정리함, 그 위로는 행거가 있어서 아이들의 옷과 가방 등을 걸도록 되어 있었다.
누가 봐도 애들 용품인 티가 팍팍 나는 물건...
당연히 귀농해서도 그 물건은 아이들 방에서 제 역할을 잘 해주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커가고 행거에 옷이란 옷을 죄다 걸다 보니 점점 애물단지가 되어 갔다.
겉보기엔 멀쩡한 것 같아도 몸이 말이 아닌 아이다.
행거를 떼내고 어찌어찌 쓰다가 결국은 이마저도 분리수거장에 내다 놓았다.
부셔서 아궁이에 넣어도 되지만 누군가 요긴하게 쓰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며칠 지나 생각해 보니 리폼을 해주면 좋을 것 같아 다시 눈 속에서 주워 왔다.
시원찮은 부분은 튼튼히 피스도 박아주고 구석구석 깨끗이 씻어 말렸다.
그리고 행거가 부착되었던 부분에난 구멍을 메꾸미라는 것으로 메우기로 했다. 감쪽같이...
측면이라 그냥 두려다가 리폼 용품을 파는 곳에서 메꾸미를 사서 저 큰 구멍을 메꾸었다.
메꾸미는 나무색으로 된 폭신폭신한 감촉을 지닌 것으로 저런 구멍이나 흠집 있는 곳에 사용한다.
일단 사용하여 페인트칠을 하면 감쪽같다.
조금 퍼 내 구멍난 곳에 밀어 넣으면 끝이다.
물론 마르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리고 박스 전체적으로 하도제인 젯소를 칠한다.
칠하고 바싹 말리고 다시 칠하고 바싹 말리고를 반복한다.
그래야 그 위에 페인트칠을 해도 그 아래의 저런 글씨와 무늬가 배어나오지 않는다.
젯소칠이 마르면 칠하고 싶은 페인트를 칠하면 된다.
난 아이보리색으로 테두리를 두르고 파란 계열로 네모난 면을 칠했다.
마감재로 바니쉬를 세 번 칠해주었다.
이렇게만 하면 서운하여 맨 위에 스텐실을 하기로 했다.
커피나무의 스텐실을 하고 나니 한결 근사해졌다.
이제는 열고 닫을 수 있도록 손잡이를 달았다.
그리고 정면에는 작은 냅킨 아트를 하여 밋밋함을 없앴다.
커피나무 위로 새 두 마리 날아가고....
애당초 바퀴가 달린 것이라 딸아이방 여기저기로 굴리면서 사용할 수 있어 여간 좋은 게 아니다.
새 물건을 들여놓은 듯 기분이 상큼하다.
리폼은 끝나고 나서의 행복이 걷잡을 수 없는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