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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동분 소피아 Sep 20. 2016

경계를 허물고 달려온  방아꽃 튀김

귀농 아낙의 요리 에세이

보라색은 아픈 속 마음을 누르고 눌러 마음이 질식한 색이다.

그런 까닭에 내 눈에는 피멍보다 연하나 아림보다는 진한 색으로 보인다.     

그래서 자줏빛이 도는 보라색 앞에서는 칭얼대지 못하겠다.


서울에서 아이들을 자연에 방목해 키우고, 내 삶의 페달을 내가 밟고 살기 위해 사표 던지고 귀농하여 이 방아꽃을 볼 때마다 난 힘을 얻곤 했다.   

‘아픔이 분명 헛 것만은 아니리‘라는 다짐을 주는 색을 간직한 배초향이기에...     

배초향이라고도 하는 방아꽃이 피는 계절은 가을이다.

뜨겁고, 광적이며, 용맹 정진만이 삶의 지름길이라고 외쳐대는 여름의 강렬함을 차단해야만 하는 계절이 가을이다.

여름과 겨울의 경계를 허물어 주려 최선을 다하는  계절 가을. . .

그런 차단이 없으면 우린 겨울의 혹독하고, 긴 터널을 제정신으로 건너오질 못한다.

그러니 가을이라는 계절이야말로 얼마나 소중한 시기인지...  

(꽃무늬 앞치마가 꽃따러 가는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데크 사이로까지 비집고 들어와 귀농 가족의 삶과 함께 한 꽃,

바쁜 내게 아는 체를 하며 위로와 용기의 경계를 허물고 달려온 방아꽃...     

오래오래 산골 가족의 눈에 남으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긴 팔을 훠이 훠이 저으며 말없이 나부끼는 꽃이다.    

바구니를 들고 방아꽃 앞에 서니 경건해진다.

작년에 이어 저 혼자 겨울의 터널을 지나 언 땅을 뚫고 나오고, 키를 키우고, 진통을 하며 꽃을 피우는 동안 어느 누구에게도 내색하지 않고 늠름하게 서있는 자연 앞이기 때문이다.     

꽃을 딴다.

오늘 수고로운 가족을 생각하며, 거저 주는 자연을 생각하며 천천히 손을 놀린다.     

꽃대는 생각보다 질기다.      

아마도 하늘로 하늘로 올라가서 맨 마지막 꼭대기에 꽃을 올리느라 강함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네 삶처럼...

배초향은 냄새를 물리친다 하여 물리칠 배(排)를 붙일 정도로 향이 강하다.

다년생으로 어린잎도 먹고, 꽃 등은 약용으로 쓰일 정도로 고마운 꽃이다.

독특한 향으로 유명한 만큼 잎을 이용해 장떡이나 전을 부쳐 먹기도 하고, 매운탕이나 추어탕에 넣어 비린 맛을 없애기도 한다.    

배초향은 노화를 방지하고, 암을 예방에 좋은 로즈마린산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소화불량, 설사, 감기, 식욕부진에 좋으며, 한약재로도 쓰인다.     

오늘은 이렇듯 신통한 방아꽃(배초향) 튀김을 하기로 했다.

귀농 주동자인 초보 농사꾼(귀농 17년 차지만 아직도 초보 농사꾼이다.)에게 가을이 왔음을 알려주고 싶었으므로....  

   

튀김이야 다 같은 방법이지만 난 간단한 방법으로 요리를 하는 편이다.

단순함 속에 담백함이, 순수한 맛이 난다는 생각이 기본으로 박여 있기 때문이다.     

1. 찬물에 튀김가루를 푼다.

밀가루를 섞는 사람도 있지만 난 튀김가루만으로 반죽을 한다.

계란도 넣지 않는다.

찬물이 준비되지 않았으면 작은 그릇에 물을 담아 냉동실에 잠깐 넣는다.     

2. 그 사이 준비한 꽃을 씻는다.

청정한 산골에 핀 것이라 오래 씻을 것도 없으니 물에 넣었다 건져 물기를 뺀다.  

3. 한 번만 튀겨낸다.

두 번씩 튀기면 기름이 더 깊숙이 배이기 때문에 꽃 튀김의 맛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꽃 튀김은 바삭함도 생명이지만 무엇보다 향을 얼마큼 잡아두느냐가 관건이다.

튀김옷은 얇아야 꽃의 투명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4. 튀김옷에 간을 하지 않는다.

우리 집 초보 농사꾼은 습관적으로 튀김은 집간장을 찍어 먹기 때문이다.

직접 담근 16년 된 집간장이 있는데 그리 오래 숙성했는데도 전혀 짜지 않다.

간장을 넣는 거의 모든 음식에 이 집간장을 쓴다.   

  

(금방이라도 하얀 튀김옷에 보라색 잉크물이 들 것만 같다.)

요즘 농사지으랴, 선산에 벌초하랴 고생이 많은 초보 농사꾼을 위한 튀김이니 막걸리가 빠지만 '자두 푸딩에 자두가 빠진 격'이다.     

방아꽃(배초향) 튀김 옆에 막걸리 한 잔 놓아 주니 가을 술상에 사랑이 스며든다.

'사랑이란 스며드는 것'인가보다.

표현이 없는 초보 농사꾼의 입가에 박꽃처럼 하얀 미소가 달린다.    

다른 표현은 필요 없다.

세 치 혀로 침튀기며 하는 표현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는 자신이 즐겨 암송하는 ‘설악시’도 읊어 줄 수 있었겠지만 말없이 웃는다.

그 모습에 오늘 하루의 노곤함은 어디로 가고 모카신을 신은 것처럼 마음의 후미진 곳까지 푸근해진다.     

그대의 마음은 어떤 결을 유지하고 계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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