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가족의'아침 풍경'

귀농 아낙의 산골 편지

by 배동분 소피아

2006년 7월

발음도 어려운 태풍 에위니아가 물러갔다.

그래도 꼬리는 아직 안걷우어 갔는지 바람과 빗줄기가 지금도 예사롭지는 않다.

막간을 이용해서 잠깐씩 햇살이 고개를 내밀자 빗속에서 잔뜩 눅눅해 있던 마음이 제일 먼저 신발을 꿰신고 나간다.

사람이든, 뭐든 궁해봐야 고마운 줄 안다.

한 해에만 해도 태풍이 몇 차례 등장했다 사라지니 에위니아가 물러갔다고 안심할 순 없지만 지금 현재, 이 순간 무사함에 두 손 모아 감사하는 밤이다.



도시에서만 살다가 꿈에도 생각 못했던 귀농으로 산골로 둥지를 옮기고 나서 변화된 것은 참으로 많다.

그중 한 가지가 '아침 풍경'이다.

도시에서의 아침 풍경은 어느 집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기서 거기지 싶다.

남편은 전날 회의다 뭐다 하여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왔으니 5분만, 5분만 주먹만 한 알람시계에 대고 통사정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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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통하지 않자 잠이 덜 깬 눈을 하고 넥타이로 스스로 목을 조이고는 아침밥이고 뭐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몸을 날리는 것으로 아내의 눈에서 등장인물 하나는 퇴장.

아내 된 자, 쓰린 속을 움켜쥐고 엘리베이터 벽에 몸을 기댄 남편의 뒤통수에다 대고 일찍 들어오라는 씨도 안 먹힐 얘기를 반복적으로 쏟아붓는다.

그러나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엘리베이터는 닫히고 아내 된 자, 김 빠져 들어올 것이다.


다음은 아이들.

"오늘 학교 다녀와서 엄마가 없더라도 학원 다녀와라. 다음 순서는 알지? 태권도 가고, 피아노 가고, 영어회화..... 가라. 내 말 듣기나 하니? 학원 보내 놓으면 장난이나 치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

냉동실에서 막 꺼낸 동태처럼 탱탱 얼어버릴 말만 그 싱그런 아침에 골라할 것이다.

거기까지면 좋으련만 마지막 멘트는 이렇게 날리는 엄마도 있단다.

"너한테 들어가는 돈이 얼만지 알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


누가 누구더러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라고 하는지…

부모의 모습이 아이들 눈엔 온통 정신 제대로 차리고 살아야 할 일로 보일 텐데…

그런 상황에서 애들인들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가겠는가.

학교 가방에, 학원 가방에 잔뜩 둘러매고 그들 역시 아비를 흉내 내어 엘리베이터로 맥없이 사라지는 것으로 등장인물 모두 퇴장....

다는 아니지만 얼추 엇비슷한 풍경이 연출되지 않을까.


그러나 산골의 아침은 다르다.

자연의 맑은 그들이 아이들을 감싸면, 차례를 기다리던 새들이 아이들 주위에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자신만의 소리로 신호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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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은 내 차례다.

아이들이 밥 먹는 동안 난 시를 읽어준다.

귀농하고부터 동시를 읽어주기 시작했으니 시를 읽어준 역사도 꽤 된다.

요즘 부쩍 아이들이 시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니 더없이 잘된 일이다.

이보다 더 영양가 있는 반찬이 있을까.

다른 반찬은 육체를 건강하게 해주지만 시 반찬은 영혼을 살 찌우기에 충분하다.

애들 덕분에 덩달아 내 영혼도 기름이 반지르르해지고 있다.


도시의 화려한 아파트 속 아침 풍경과 산골 오두막의 아침 풍경은 이렇듯 다르다.

장대와 나무껍질로 지은 위그암(인디언들의 원추형 오두막집)에서 인디언들의 영혼이 그토록 영롱했듯이 현대의 우리들이 사족을 못쓰는 거죽은 삶을 기름지게 하는 조건이 결코 되지 못한다.

이제 아이들의 키가 한 뺨씩 커갈수록 그들의 밥상 옆 시집도 높아지고 그들의 영혼과 한 뺨씩 키재기를 하겠지.


그리하여 그들의 밥상 위에는 돌 밑에만 엎드려 있는 메기가 나와 헤엄치고, 박새가 그들의 밥 숟가락 위에 반찬을 올려줄 것이고, 유태교 신비주의자의 은빛 언어들이 아이들의 젓가락 옆에서 달그락거릴 것이다.

이처럼 아이들에게 시 한 수 읊어준 날은 찰떡을 먹은 것처럼 진종일 속이 든든하다.

장루슬로는 말했다.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라. 풀과 돌, 새와 바람 그리고 대지 위의 모든 것들처럼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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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보기에 아이들이 아무 생각 없는 것 같이 보이겠지만 그들의 눈은 천리를 볼 것이고, 그들의 가슴은 어떤 것들도 다 받아들여 정화할 수 있는 평수 넓은 대지이다.

그러니 먼저 세상을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어른들이 그들의 모든 것에 관여하고, 참견하고 재촉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걸어가는데 불편을 주는 가시덤불 등을 당분간 치워주고 지켜보는 역할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일 아침에는 어떤 시인의 영롱한 시 한 편으로 산골 아이들의 아침상을 차릴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

(이 글은 2006년 7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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