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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동분 소피아 Jan 06. 2017

화초들의 집을 마련해주다.

귀농 아낙의 리폼 이야기

내가 귀농한 이곳은 해발이 아주 높은 곳이다.

집의 위치가 600 고지 정도 되는 곳이니까 알만할 것이다.     

귀농해서 첫해에 눈이 허리까지 오는 것을 보고 ‘아, 이곳이 산중에서도 산중이 맞는구나’ 했을 정도다.

겨우내 지붕 위의 눈을 떠받들고 살아야 하는 산중이다.  

   

어쨌거나 봄이 되면 집 안의 화초들을 죄다 내다 놓는다.

올해는 현관 바로 옆에 미니 화단도 만들어 주었다.     

현관을 드나들며 작은 생명들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솔솔 했다.

그러나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자 마음이 급해졌다.

(이번에 리폼할 장본인이다.)

예전에 서리가 내린 줄 모르고 화초들을 밖에 두었다가 된서리에 목숨줄을 놓는 참사가 있었다.

그때는 화초가 엄청 많았는데 그만 된서리 한 방에 줄초상이 난 것이다.

대부분의 화초는 얼굴 한 번 못 본 분이 우리가 귀농해서 의미 있게 산다며 일일이 신문에 싸서 화초 선반까지 보내주신 것이었다.     

그러니 더더욱 얼굴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몇 개 안 되는 화초지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하루라도 자연의 온도에 두고 싶은 마음에 된서리가 내릴 때까지 데크에 두고 있었다.     

갑자기 날이 추워져서 드디어 바깥살이를 끝낸 화초를 집안으로 들였다.

그러나 문제는 화초를 올려놓을 것이 마땅치 않다는 것.     

생각 끝에 옛날 옛날 전설처럼 된 학생 책상을 리폼하기로 했다.

(워낙 오래된 책상이라 삐그덕 거린다.)

요즘은 구하려고 해도 값나가는 골동품이 된 이 낡은 책상....

‘언젠가 리폼해서 한 인물 나게 해주리라 ‘ 마음만 먹었지 몇 년째 창고에서 기다림에 절어 있던 녀석이다.     

꺼내 놓으니 구석구석이 사람 때가 묻어 볼수록 정이 간다.

이 책상을 보면 옛날 아이들은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잘 못 먹어서인지 키가 작았다늘 것을 감잡을 수 있다.

초등학교 책상인데 요즘 아이들은 유치원생 앉히면 될듯해 보인다.     

옆에는 신주머니를 걸 수 있도록 걸이도 박혀 있다.

요즘 아이들은 신발장이 있어서 신주머니를 안 들고 다니지만 그 옛날에는 너도나도 신주머니를 들고 다녔다.    

(하도색인 쳇소칠을 하는 모습)

구석구석 먼지를 털고 털고 때를 물걸레로 닦았다.

그래야 페인트칠을 해도 얼룩이 생기지 않는다.     

우선 오래된 것이라서 하도 색인 젯소칠을 해주었다.

젯소칠을 하면 페인트를 칠하더라도 책상의 얼룩 등이 보이지 않아 깔끔하다.     

책상의 상판은 페인트칠로 마무리하지 않고 그 위에 얇은 미송합판 패널을 덧대주기로 했다.

(책상 상판의 모서리가 이렇듯 잘려 나갔다.)

상판이 울퉁불퉁하기도 하고, 모서리가 보기 싫게 잘려 나갔기 때문이다.

상판에 새 옷을 입힐 요량일 뿐이기 때문에 비싼 두꺼운 패널을 박을 필요가 없다.

내 리폼의 포인트는 ‘싼 값으로 뽀대나는 소품을 만들자’라는 것이다.     

패널이 긴 것이라 일단 재단을 한다.

귀농 주동자인 초보 농사꾼(귀농 17년 차인데도 이 별명이 어울린다.^^)이 나무 재단기를 하나 사주었다.

   

일일이 재단하여 원목용 스테인을 칠하기로 했다.

문제는 이 책상이 워낙 작아서 화분 서너 개 올리면 가득이라 나머지는 또 어쩔 것인지가 였다.

그래서 책상 아래 바닥에 화분을 그냥 놓는 것보다 작은 판자를 만들어 그 위에 화분을 올려놓기로 했다.

그리 되면 얼추 몇 안 되는 화분을 꾸역꾸역 자리 잡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상판은 내가 좋아하는 겨자색을, 하단의 판자는 용감하게 핑크색 스테인을 칠하기로 했다.

패널마다의 칠이 끝나면 이제는 피스를 박아 고정하는 일이 남았다.

피스를 다 박고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이쁘다.(제 눈에 안경^^)

그런데 사람 욕심이란...     

책상 아래 뒷면이 허전해서 망을 쳐주기로 했다.

닭장처럼...

적당한 크기로 자르는 일이 쉽지 않다.

철망을 어렵사리 재단한 다음 책상 뒷면에 손 타카로 박았다.  

   

철망 하나로 분위기가 확 산다.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다.

우리 집 귀농 주동자는 모든 표현이 ‘이쁘다’ 면 끝이다.

이 작품 역시 '이쁘다'라는 말로 땡쳤다.

그는 철망을 해서 한결 멋진지, 뭘 했는지는 관심이 미치지 못하고 그냥 ‘이쁘다’ 면 만사형통이다.

그런데 집에 손님이 오면  나서서 내가 만든 것들을들을 자랑한다. 손님이 묻지 않아도..

그럴 때 그냥 찡하다.

'그는 마음에 없어서가 아니고 표현이 짧은 거구나'

귀농하고 부부가 서로 알아가는 일이 많았으니 그게 내 귀농 성공의 요인이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율마 먼저 올려놓았다.

숲의 나무처럼 율마는 내 마음을 푸르게, 푸르게 해준다.

발음도 어려운 비싼 화초는 없지만 하나하나가 생명이기에 난 모두를 귀히 여긴다.

아래 칸에도 화분을 넣었는데도 치자 화분이 남는다.

덩치가 크니 그냥 책상 옆에 두기로 했다.

(낡은 책상이었는데 한인물 난다.)

치자 화분 혼자 두면 서운할 것 같아 반대편에 기와 재질의 그림 소품을 놓았다.

그렇게 며칠 지나고 보니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예전처럼 거창하게 트리를 하지 않고 소박하게 하기로 했다.    

 

화분 앞에 유럽 배낭여행 갈 때마다 사 온 크리스마스 소품들을 화분 앞에 놓았다.

여행했던 이태리, 독일, 스위스, 체코, 오스트리아 등의 목가적 유럽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의 소품의 하이라이트인 양말은 신생아용 양말로 놓으니 한결 입가에 웃음이 머무른다.

   

               (독일 로텐부르크 배낭여행 중에 사모은 크리스마스 소품들....)

배치가 끝나고 보니 이태리 인테리어 가구 저리 가라다. 내 눈엔 그렇다.

이렇게 함으로써 산골에 생명 붙은 것들을 죄다 집 안으로 들여놓았으니 이제 겨울의 긴 터널을 잘 빠져나오기만 하면 된다.

   

 “얘들아, 너희랑 우리는 한 솥밥을 먹는 신세이니
서로 등을 토닥이며 혹독하고
긴 겨울의 터널을 지나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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