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세상의 곰들에게 묻습니다 ,『달에서 아침을』이수연 글, 그림
토끼와 곰은 옆 집에 사는 같은 반 친구사이다. 토끼는 올드팝과 고전영화를 즐겨보는데 그중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좋아한다. 곰과 토끼는 같이 등교를 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지만 토끼는 학교에 도착하는 순간 입을 닫는다. 토끼는 학교에서 왕따이다. 곰은 학교에 도착하는 순간 토끼와 모르는 사이처럼 지내며 토끼의 일을 멀리서 지켜만 보고 있다. 친구들은 곰과 토끼 사이를 의심하지만 자신도 왕따를 당할까 두려웠던 곰은 토끼와 친구가 아니라고 말하며, 토끼를 괴롭히는 비둘기들과 어울려 지낸다. 어느 날 토끼가 편지한 장을 받고 울면서 뛰쳐나가고, 놀란 곰은 토끼를 찾으러 나갔다가 토끼와 말다툼을 하지만, 사실은 곰이 일방적으로 혼난 것이었다. 곰은 자신의 비겁함에 괴로워하고, 용기를 내어 학교에서 토끼의 친구임을 밝힌다.
책을 보는 내내 그림책이라기보다는 한 권의 소설을 보는 기분이었다. 책을 덮는 순간 먹먹해지는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어 한참을 표지를 보고 멍하니 있었던 것 같다. 늘 곰처럼 살아왔던 나에게 던지는 메시지 같았다.
학창 시절 우리 반에도 왕따가 있었다. 나는 그 아이와 친하지는 않았지만(물론 관심도 없었지만) 다른 아이들이 그 아이 험담을 하면 같이 맞장구를 쳤고, 그 아이가 맞고 온날에는 뒤에서 수근 거리에 바빴다. 왜 단 한 명도 그 아이의 상황을 알면서도 모르는척하며 바라만 보고 있었을까? 우리의 방관이 그 아이를 더 힘들게 한건 아닐까? 우리는 무엇이 겁나서 그냥 있었는지, 어쩌면 내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비겁한 방관자여...
매사에 방관자로 살았던 곰 같은 나의 삶이었다. 묻어가는 것이 익숙한 순응하는 삶. 용기가 없어 비겁해짐을 그냥 무시하며 살아왔던 삶이 아닌가. 요즘에는 사회적 이슈에 공감을 누르고 주변에 공유하며 알리고, 국민청원에 참여하는 행동으로 나의 의사를 표현한다. 이런 작은 행동이 모여 큰 뜻을 이루니 나는 더 이상 곰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건지, 아니면 나는 아직도 곰이지만 공감 한 번으로 비겁함을 모면했다고 자위하며 살고 있는 건지 알 수없다.
그래서 이런 비겁한 나를 감추고자 혹은 벗어나기 위해 부캐가 필요한 거라면, 그럼 우리는 어떤 캐릭터로 살아야 하는 걸까, 부캐가 비겁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바야흐로 부캐 전성시대에 살고 있다. MBC <놀면 뭐하니>의 유재석만 봐도 다양한 부캐의 소유자다. 심지어 부캐를 앞세워 혼자만의 무한도전을 하고 있다. 연예인들이 이미지 변신의 부담 없이 부캐라는 이름으로 활동영역을 넓히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이 부캐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오히려 그런 신선한 모습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우리도 SNS 및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닉네임으로 활동하면서 본인의 부캐를 하나씩은 갖고 살고 있으니까.
지난 10년 정도는 00 엄마에 빠져 살고 있었다. 카페 닉네임도 서오마미. 인간관계가 아이들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모든 관심사가 아이들 위주이다 보니 인터넷에서도 00 엄마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지금은 오롯이 나를 생각하며 나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어서 일까? 세례명으로 지은 소피아가 나의 새로운 부캐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왜 부캐라는 이름의 새로운 가면을 쓰려고 하는 걸까?
현실에 나는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어서, 혹은 숨겨져 있던 내 모습을 발산하기 위한 창구로 활용하기 위해서,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 나를 감추기 위해서 일까 생각을 해본다.
이렇게 부캐를 갖는 것이 집에서의 내 모습과 사회에서의 내 모습이 다른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차이점은 사회에서 보이는 내 모습은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나라면 부캐는 나의 또 다른 자아이다. 왜냐하면 부캐는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집에서는 엄청난 귀차니즘의 소유자로 한번 귀찮다는 생각이 들면 그 일은 언제 할지 기약이 없어진다. 가족들에게는 짜증도 잘 내고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 하는 성향이 강하다.
사회에서의 나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조율하고, 짜인 계획대로 움직인다. 플래너에 오늘의 할 일을 정리해 체크해가며 빠진 일은 없는지 꼼꼼히 챙겨가며 처리한다. 워커홀릭의 성향도 있어서 몰아치는 일들을 처리하고 나서 느껴지는 짜릿한 쾌감을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나에게 지시를 하거나, 내가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이라 마냥 즐겁지는 않다.
지금은 새롭게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려고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
책을 가까이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글로 표현하고 싶은 사람. 생각만으로도 설레고 기분이 좋다. 즐기면서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로망을 실현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아직 나의 부캐의 존재를 주변 사람들은 모른다.
나만의 은밀한 사생활이 생긴 것이다. 이런 사실도 너무 재미있는 것 같다. 나중에 부모님이 아시면 깜짝 놀랄 일이다.
만약 본캐보다 부캐가 더 유명해지거나 잘된다면 그때는 어떨까?
연기자들이 자신의 드라마 캐릭터가 인기를 얻어 본인도 인기를 얻게 되어 스타로 자리 잡는 것과 같은 걸까?
아니면 나의 부캐를 본캐화 시켜서 나의 삶을 부캐에 맞춰야 하는 걸까? 어쩌면 부캐도 나의 또 다른 자아니까 그렇게 살아도 상관없지 안나 생각이 들다가도 사실 내가 사는 현실과의 차이는 어떻게 극복할지도 의문이다. 이건 아직 내 부캐가 유명해지기 전이니 지금 생각하는 것은 쓸데없는 고민인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