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반점』 - 정미진 글, 황미옥 그림
어느 날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에 검은 반점이 눈에 들어온다.
언제부터 있던 것일까? 아주 오래전부터?
검은 반점의 존재를 알게 된 순간부터 나는 그것을 숨기려고 했지만, 숨길수록 검은 반점의 크기는 점점 커졌다.
점에 갇혀 살아가던 나는 어느 날 닮은 점을 가진 사람을 만나 함께 의지하고 사랑을 했다. 닮은 모습에 좋아했지만 오히려 그 점이 싫어져 헤어지고 말았다. 엄마의 몸에도 나와 비슷한 점이 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던 걸까?
어느 날 지하철에서 무릎에 주황색 점을 가진 사람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마다 색은 다르지만 각자 점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됐고 어쩌면 우리는 한 점으로 시작된 존재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는 얼굴에 잡티가 많다. 피부는 하얀 편인데 잡티가 많아 점이 더 잘 보인다. 그래서 주변에서 점 좀 빼는 게 어떻냐고 했다. 코끝에 점이 있었는데 (일명 고소영 점) 그 점은 빼기가 싫었다. 고소영만큼 이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런데 결국 싹 빼버렸다. 점 빼고 나니 얼굴도 깨끗해 보이고 피부톤도 환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점 뺀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또 숨어있던 멜라닌 색소들이 올라와 다시 얼굴에 점을 만든다.
나에게 트라우마가 있다면, 지운다고 잊을 수 있을까?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 나는 빌라에 살았다. 3층짜리 빌라였는데 양쪽으로 두 집씩 있는 구조로 총 6가구가 한 건물에 있었다. 빌라 앞에는 놀이터가 있었고 주차장으로 쓰는 넓은 마당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이웃끼리 정을 나누며 사는 시절이라 6가구는 한가족처럼 서로 아이들을 돌보고 부모님들끼리도 가족처럼 왕래하고 지냈다.
딱, 응답하라 1988에서 보여주는 쌍문동 골목 식구들 같은 분위기였다.
하루는 부모님이 시골에 급하게 다녀오셔야 해서 유치원생인 동생은 데리고 가고, 학교 다니는 나는 1층 집에 부탁을 하셨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고 1층으로 놀려가려고 집 문을 열었는데, 거실이며 방이며 물건들이 정신없이 흩어져 있었다. 때마침 우리 집은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하는 시기여서 장롱이나 가구들이 조금씩 밖으로 나와있고 바닥에는 장판을 덮는 종이가 깔려 있는 등 며칠간 정신없는 상태였는데, 물건들이 밖으로 다 나와 흩어져 있으니 어리 둥절했다. 어린 마음에 부모님이 뭔가를 급하게 찾느라 정리를 안 하고 갔나 보다 생각했다. 가방을 내려놓고 나가려는데 바닥에 동전이 흩어져있어서 신난다고 동전을 줍다가 안방까지 들어갔다. 아쉽게도 안방에는 동전이 떨어져 있지 않았고, 비디오 아래 문갑서랍이 열려있어 엄마의 칠칠맞음을 탓하며 서랍을 닫고 1층으로 내려갔다.
부모님은 깜깜한 밤이 되어서 돌아오셨다. 같이 문을 열고 집을 들어서는데 아빠가 잠깐 들어오지 말라고 하신다. 집이 손탄 것 같다고. 나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 좀 지나서 경찰 아저씨들이 왔다. 집에 도둑이 들었다고 한다. 없어진 물건 목록을 적는데 비디오가 있었다.
"엄마, 아까 나 학교 갔다 왔을 때는 비디오 있었어."
나는 내가 동전을 몰래 집어간 게 마음에 걸려 내가 도둑으로 의심받을 까봐 두려웠다.
집에 아빠의 회사 공금이 있었는데, 다행히 그것은 없어지지 않았고, 아빠가 새로 산 운동복과 비디오, 저금통의 지폐만 가지고 갔다. 무서운 것은 내가 동전을 줍던 그 시간에 도둑이 집안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내가 온 시간에 숨어있다가, 내가 나가자 비디오를 가지고 나간 거라면... 나는 너무 무서웠다.
어른이 된 지금도 조용한 집에 혼자 있는 것이 두렵다. 음악을 틀어 놓거나, tv라도 틀어놓지 않으면 밖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음에도 놀라곤 한다. 만약, 내가 도둑을 맞닥뜨렸다면... 상상도 하기 싫다.
벌써 30년도 더 된 일인데 그날의 일은 잊히지도 않는다. 그동안 살면서 기억에 남는 몇 장면들이 있는데 모두 심리적으로 충격을 받았던 날들이다. 그런 일들이 트라우마라면 그거는 극복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잠시 관심을 돌리고 잊고 사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점을 뺐다고 당장은 깨끗해 보이지만 결국 다시 점이 생기는 것처럼 내 안의 트라우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검은 반점에서도 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살짝 흐려질 뿐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주인공은 점에 갇혀 살지 않는다.
점에서 점으로 이어지는 나의 연결고리
내가 <검은 반점>을 알게 된 계기는 서평단으로 뽑혀 읽게 된 <그림책의 마음>에서였다. 심층심리학으로 풀어쓴 그림책 이야기였는데 콤플렉스에 대해 다루면서 <검은 반점> 책을 소개했다. 주인공이 보는 점은 자신의 콤플렉스로 그것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다루었다. 그림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나는 이 책을 보고 싶었다.
내가 인생 그림책으로 꼽는 피터 레이놀즈의 <점>이 생각났다. 마음이 불안한 시기에 만난 한 권의 책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고 그림책이라는 것에 빠지기 시작한 계기였다. 나는 학벌 콤플렉스가 있다. 학벌주의 사회에 살아서 일까? 누구나 인정하는 일류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는 것에 패배감을 느꼈다. 그렇다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도 아니면서 욕심은 많았는지, 해보지도 않고 못 가진 거에 대한 아쉬움을 갖고 있다. <점>은 나에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중해주면, 작은 점 하나가 나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책이다. 그리고 이번에 만난 <검은 반점>은 나의 콤플렉스가 내가 숨기고 싶어 할수록 나를 괴롭힌다는 것, 누구나 각자 콤플렉스가 있지만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결국 점에서 점으로 이어졌던 나의 콤플렉스에 대한 생각은 점점 희미해지고 별거 아닌 것이 되고 있다.
아무렴 어때, 아무도 내 학벌 따위 궁금해하지도 않고 신경도 안 쓰는 걸, 어차피 나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갖자! 나를 사랑하자! 나는 오늘도 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