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우리 엄마는요 고함쟁이 엄마예요
두 권의 그림책을 읽고 엄마로서 아이에게 미안했던 점들을 떠올리며 씁니다.
첫째야, 너에게 젖을 물리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는 아이를 낳으면 당연히 젖을 물릴 수 있는 거라고 알았어
너를 기다리며 다니던 산모교실에서도 모유는 너희를 위한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고
태교책에서도 모유를 먹이는 자세에 대해서만 나왔지 만약에 못 먹이는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거든 엄마는 젖꼭지가 남들과 다른 모양이라 젓을 물릴 수 없다는 걸 너를 낳고 처음 알았단다.
평편 유두인 엄마는 젖꼭지가 없어서 네가 빨 수가 없데
너를 낳을 때도 당연히 자연 분만할 줄 알고 있다가 제왕절개를 한 것도 너무 억울한데 네가 나와서 핏기 없는 얼굴로 응애응애 하고 있는데 가슴에 안아볼 수도 없었던 거야.
수술 후 통증으로 하루 온종일 정신없이 보내고 나서야 너는 잘 있는지 생각이 났어. 배고픈 거야 신생아실에서 주는 분유를 먹고 있었겠지만 엄마는 젖도 안 돌고 젖을 못 물린다니 무슨 말인가 싶었지
몸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 처음 젖을 물리러 갔는데, 그때도 선생님들은 못물린다 고만 말하고 아무도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어, 나중에서야 알았는데, 엄마처럼 이런 젖꼭지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보조기구가 있다고 하더라고, 근데 그때는 그게 어떻게 생긴 건지도 모르고 엉뚱한 유두 보호기만 차고 젖을 물리려고 하니 너는 짜증만 냈지. 네가 울면 덜컥 겁이 나서 선생님이 준비해준 분유를 챙겨 먹이고, 젖이 제대로 안 나와서 그런 거겠거니 하고 산후조리원으로 갔어. 거기는 모유수유를 위해 모인 곳 같았어. 다들 거실에 나와 둘러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젖을 물리고 있는데, 엄마만 혼자 분유를 먹이니까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주늑이 들어서 선뜻 사람들 사이에 낄 수가 없었던 거야, 그렇게 사람들하고 이야기도 안 하고 방에 틀어박혀 2주를 보내고 나왔어. 남들은 초유도 먹이고 젖량이 많아서 고민이라고 했는데, 엄마는 가슴이 팅팅 불어 아팠어도 한 방울도 널 먹이지 못했어. 그 사실에 너무 죄책감이 들어서 참을 수가 없었단다. 결국 분유만 먹이는 걸로 결정을 내렸지만 모유수유를 못한다는 죄책감은 떨쳐낼 수가 없었어. 그래서 엄마가 그렇게 우울했나 봐.
첫째야, 너에게 눈을 마주 치치 않아서 미안해
지금 생각해 보면 널 낳기 전부터 우울증이 시작했던 거 같아, 널 낳기 일주일 전이 었을까? 햇살이 너무 예뻤던 어느 주말이었는데, 아빠는 회사 워크숍 때문에 출근을 하고 엄마 혼자 빈 집에 있었거든. 근데 그 햇살을 보고 앉아 있는데 너무 슬픈 거야, 만삭의 몸이 너무 무거워 아무 데도 갈 수가 없었지만, 아무 데도 연락을 할 수가 없었어. 너도 크면 알게 되겠지만, 연락처에 전화번호가 100개가 넘게 있어도 마음이 외로울 때 연락할 곳이 없다는 건 너무 슬픈 거거든. 엄마는 산후조리원에서 나와서 산후 우울증이 왔나 봐. 그냥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당연히 자연분만을 하고 모유수유를 할 거라고, 제왕절개와 분유 수유를 못난 것으로 취급하며 지냈었는데 그걸 내가 한다고 생각하니 더 참을 수가 없었나 봐.
출산이라는 게 목숨을 걸고 하는 거라 당연한 거는 없는 건데, 그걸 가볍게 본거지.
수유 방식도 분유를 먹을 수도 있고, 젖을 물릴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 다른 건데 엄마는 모유수유를 너무 신성시하며 분유 수유를 하찮게 생각했나 봐.
그래서 우울한 마음에 그냥 네가 울면 안아주고, 기저귀 갈아주고, 먹이고, 재우고, 그것만으로도 너무 벅차서 네가 눈을 마주치고 생긋생긋 웃었을 때도 엄마는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도 몰랐지만 놀아줘야 할 힘이 없었어.
그래서 지금도 네가 엄마한테 매일 놀아달라고 하는 걸까 생각해.
첫 어린이집에 가서 선생님이 네가 눈을 마주 치치 않고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그때 덜컥 겁이 났어. 생각해보니 엄마가 너에게 눈 마주치고 이야기한 기억이 없는 거야, 그래서 네가 말이 늦었고, 너는 상당히 예민한 아이였다는 걸 그제야 알았어.
둘째야, 늘 형보다 너를 더 혼내서 미안해
형을 한 번 키워 봐서인지, 네가 태어나고 나서는 마음의 여유가 좀 생기더라고, 우울증을 극복하려고 노력도 했어. 우울한 기분이 들면 가족들에게 손을 내밀었거든. 그런데 니 형이 너무 힘들어하더라고. 그래서 처음에는 너는 응애응애 울고, 형은 엄마한테 안아달라고 울고, 엄마는 어쩔 줄 몰라 셋이 부둥켜안고 울었어.
형은 예민한 성격이라 무딘 엄마 성격에 형을 맞춰주려고 신경을 쓰다 보니 순둥순둥 한 너는 덜 신경을 쓰게 되더라고, 그런데 네가 돌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의사표현을 강하게 하는 거야. 엄마가 바로바로 대응해줬다면 안 그랬을 텐데, 네가 강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들어주지 않으니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너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매일 한 번씩 울게 된 걸까? 형처럼 순순히 엄마 말을 듣지 않고 막무가내로 때를 쓰는 너를 빠르게 진정시키려면 엄마가 소리 지르는 방법밖에 생각이 안 났어. 처음이 어렵지 한번 소리지르기 시작하니까 계속하게 되더라. 엄마가 고함쟁이 엄마로 변하고, 늘 형과 똑같이 하고 싶어 욕심내는 너를 이해하지 못하고 혼내기만 해서 미안해.
근데.. 엄마도 첫째로 자라서 그런가, 사실 둘째인 너의 마음을 이해는 못하겠어. 그래서 형편을 더 들게 되나 봐. 엄마는 첫째여서 너무 피곤했거든. 지금도 형하고 늘 똑같이, 형보다 더 가지려고 안 되는 걸 애쓰는 너를 보며 엄마는 안타깝기도 하고, 그런 너를 마음으로 더 안아주고 위로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는 이제 고함쟁이 엄마가 돼버렸나 봐.
아이들아, 엄마가 늦잠을 자서 미안해
주말이 되면 일어나지 않는 엄마 때문에 배고프다고 했지
엄마도 평일에는 열심히 너희 돌보고, 집안일도 했으니 쉬고 싶었어, 그뿐이야.
그리고 주말에는 아빠도 있으니까, 아빠가 너희 아침 정도는 간단하게 해결해 줄 거라고 기대했는데, 너희 아빠도 회사 다니다 주말에만 쉬니까 일어나기가 싫은가 봐.
엄마가 늦잠 자서 너희를 배고프게 해서 미안해. 그런데 너희 엄마 기다리면서 하루치 간식을 다 먹어치웠더라.
그럴 때 밥을 차려주는 게 맞는지 고민될 때도 있어. 이미 너희는 많이 먹었거든.
아이들아, 엄마가 고함쟁이 엄마라 미안해
엄마가 <고함쟁이 엄마>라는 책을 봤어, 엄마가 소리 지르니까 아이가 온몸이 산산이 부서져 버린 거야.
엄마는 그 장면을 보고 너무 놀랐어. 너희도 그런 마음이겠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지.
그래서 반성을 하고 내일부터는 소리 지르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을 했어. 그런데... 너희도 혹시 느꼈을지 모르겠는데 엄마가 부모교육받고 오면 1~2일만 자상한 엄마가 되는 거...
결국에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또 소리를 지르고 있더라고. 그래서 부모교육 약발이 오래오래 갔으면 해서 엄마가 계속 육아서도 읽고 하면서 노력하고 있어. 그러니 엄마 책 읽어서 놀아주지 못한다고 너무 속상해하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어. 엄마도 더 소리 지르지 않도록 노력할게.
엄마가 너희들한테 소리 지르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아도 되는데 자꾸 그럴까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었어
엄마 마음에 문제가 좀 있더라고, 그래서 요즘 엄마 마음을 보살피고 있는 중이야.
아이들아,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자라줘서 엄마는 너무 고마워
엄마는 항상 너희들에게 미안하지만 그만큼 너희들을 너무 사랑해
넘치게 주지는 못해도, 부족함은 없이 주고 싶어 하는 엄마라는 걸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
오늘 이렇게 반성을 하고 돌아서서도 너희가 투닥거리고 싸우는 걸 보면 또 소리 지르고 화낼지도 몰라.
그래서 엄마가 늘 부족하다고 생각을 하나 봐.
우리 귀염둥이들 멋지게 잘 자랄 수 있도록 엄마가 더 노력할게.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