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교복 한 번도 안 입어 봤어요."라고 말하면 다들 갸우뚱한다. 교복 자율화 세대도 아닌데 교복을 어떻게 안 입냐고 궁금해한다.
나는 신기하게 중학교도 사복을 입는 학교, 고등학교도 사복을 입는 학교로 배정을 받았다. 시험 치고 들어간 것도 아니고 뺑뺑이로 배정받아 들어갔으니 내가 사복을 입고 싶어 그 학교를 선택한 것도 아니었다.
남들은 사복을 입는다면 부러워했다. 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기에 획일화된 교복으로 자신의 개성을 뽐내기에는 한계가 있을터. 그래서인지 사복 입는 우리 학교 학생들을 부러워했다.
나도 중학교 때는 딱히 불편함을 모르고 지냈다. 평소에는 꾸미는 것에 딱히 관심이 없던 때고 아직 어려 유행에도 관심이 없었다. 딱 하나! 같이 사는 사촌언니를 보고 배워 앞머리를 한컷 말아 올려 스프레이로 고정하고 다녔었다.
그런데 소풍 때만큼은 전교생이 패션쇼라도 하듯 경쟁적으로 멋은 부리는 날이었다. 그렇다 보니 출발 전 운동장에 학생들을 반별로 줄 세우고 일제히 복장 검사를 했다. 그때 당시 온몸에 핏 하게 입는 원버튼 재킷의 바지 정장과 앞코가 유난히 길었던 구두를 매치하거나 치마를 입으면 웨스턴 부츠와 함께 신는 것이 유행이었다. 무크라는 구드 브랜드가 인기였고 옆구리에 일명 일수가방이라 불렸던 네모난 가방을 끼고 다녔다.
학생들이 교복도 아니고 사복으로 한껏 멋을 부렸으니 선생님들도 혹여나 불미스러운 상황이 생길까 소풍 내내 감시의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예민해 계셨다.
티피오(T.P.O - 시간, 장소, 상황에 따라 옷을 알맞게 착용하는 것)도 모르고 멋 부리기에 바쁜 철없던 우리는 불편한 옷과 발에 맞지 않는 구두를 신고 소풍 장소인 용인 민속촌으로 향했다.
용인 민속촌은 바닥이 온통 울퉁불퉁해서 구두를 신기에는 발이 너무 아팠고, 평일 낮시간에 우리가 멋을 부린 것을 알아봐 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른 학교에서 소풍을 오기는 했지만, 교복도 아니고 어색하게 어른 흉내 낸듯한 사복 차림의 우리들을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았다. 그 뒤로 나와 친구들은 더 이상 소풍 때 멋을 부리지 않았다. 청바지에 편한 운동화를 신는 것이 제일 편하고 예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복 생활 3년의 중학교를 마치면서 학교만은 부디 교복을 입는 곳으로 갔으면 했다.
내가 사는 집에서 배정 가능한 곳에 있는 고등학교는 3곳이었는데 그중 1곳이 사복을 입는다는 소리를 듣고 절대로 그 학교만은 안 가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런데 떡하니 그 학교로 배정을 받게 되자 나는 너무 속상해서 하루 종일 울었다. 나도 교복 입고 싶다고 말이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한 울타리에 5개의 학교가 있었다. 외고, 여고, 남고, 여중, 초등학교. 이 다섯 학교 모두 사복을 입었다. 그런데 유독 여고 애들에게만 '공순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사복을 입지만 학교에 정해진 룰에 따라 옷을 갖춰 입어야 했는데, 그때 당시 유행과 너무 동떨어지기도 했고, 새벽에 우르르 몰려 등교했다가 깜깜한 밤이 돼서야 피곤에 절어 우르르 몰려나오는 모습이 꼭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여공들과 흡사했다.
우리 학교의 복장 규칙은 이랬다.
-바지의 끝단 길이는 복숭아뼈가 보여야 할 것
-양말, 운동화는 무늬가 없는 흰색으로 신을 것
-실내화 주머니는 까만색이어야 하고 필히 한 손에 들고 등교할 것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90년대 후반에는 힙합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거리를 쓸고 다닐 정도로 청바지를 길게 입는 것이 유행이었다. 심지어 허리도 본인 사이즈보다 크게 입었는데 (예를 들면 본인 허리 30이면 바지는 40 사이즈 정도) 무릎 아래까지 늘어뜨리는 긴 벨트로 사이즈를 조절해서 팬티 밴드가 보이게 끔 입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 덕분에 밴드에 로고가 크게 쓰인 팬티를 입는 것도 유행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 규정에 맞게 바지를 짧게 입어야 하니 난감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두 가지 방법을 택했는데 하나는 학교용 사복을 따로 만들어 교복처럼 그 옷만 입거나, 다른 하나는 바지단은 안으로 교묘하게 접어 넣고 바지를 허리 위로 한껏 끌어올려 교문을 통과 후 교실에서 다시 쓸고 다니는 방법이었다.
문제는 첫 번째 방식은 멋을 포기해야 했고, 두 번째 방식은 선생님에게 걸리면 그 자리에서 바지 단이 잘리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나는 처음에는 두 번째 방식을 고수하다 선생님께 안 걸리게 바짓단 접어 넣기, 시침질, 옷핀 등 다양한 스킬로 잘 피했으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했던가, 선생님들은 교문 앞에서 일일이 바짓단에 손을 넣어 살펴보기 시작하셨다. 그 뒤로 나는 학교용 사복을 따로 만들어 입고 다녔다. 바지 두 벌을 학교 규정에 맞게 수선해서 입었는데, 검정 바지는 입을 때마다 흰색 양말과 운동화 덕에 컴퓨터용 수성사인펜이 된 기분이었다. (컴퓨터용 수성사인펜은 몸통은 까맣고 뚜껑은 하얀색이다)
학교용 사복을 입고 다니니 아이들하고 야자 땡땡이치고 놀러 나가는 날이면 여벌 옷을 가방에 챙겨 와야 했다. 옷을 갈아입으며 '교복 입는 아이들과 다를게 뭐람?'하고 생각했던 적이 많았고, 빡빡하게 단속을 하는 선생님들을 보며 차라리 이럴 바에는 교복을 입히지 왜 사복을 입혀서 서로 고생인가 싶었다.
유행이라는 것이 끊임없이 바뀌듯 긴바지 이후에는 발목까지 오는 긴치마가 유행을 했고, 그 후에는 레깅스가 유행했다. 나는 몸매가 썩 좋지 않았던 탓에 치랭스가 나오기 전까지는 레깅스에 도전을 못했지만 이미 유행에 민감한 친구들은 레깅스로 한껏 라인을 뽐냈고, 선생님들은 민망한 패션을 감당하기 어려워하셨다.
중학교는 내가 졸업하고 2년 뒤에 교복으로 전환되었고, 고등학교도 졸업 2년 후에 교복을 입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때는 내가 2년만 어렸어도 교복 입는 건데 하고 아쉬워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교복 입은 친구들이 느끼지 못하는 나만의 색다른 추억을 갖고 있는 것 같아 좋다. 사실 마냥 철없이 지냈던 그때가 그리운 것 같다. 그리운 나의 사복 시절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