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11시, 카카오톡 방장 봇의 부름에 그림책 이야기를 하고 12시가 되면 신데렐라처럼 사라져 버리는 그녀들. 이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각자 고른 책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등장한 책이, < 날 좀 그냥 내버려 둬!> <알레나의 채소밭><가드를 올리고>였다. <날 좀 그냥 내버려 둬!>는 작은 마을에 작고 아담한 집에 30명이 넘는 대가족과 사는 할머니가 겨울을 맞이해서 털실로 스웨터를 짜려고 하는데 아이들에게 방해를 받자 "날 좀 그냥 내버려 둬!"라고 외치며 집을 나선다. 할머니는 숲으로 산으로 심지어 달나라까지 떠나 조용히 스웨터를 짜고 싶은데 계속 방해를 받자 그만 웜홀로 들어가 버린다. 웜홀은 아무 소리도 없고, 깜깜하기만 했는데 그곳에서 할머니는 자기가 하고 싶었던 스웨터 짜기에 집중해서 옷을 만들고 차 한잔을 마신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알레나의 채소밭>은 한 아이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자기가 매일 다니는 길에 있는 채소밭의 변화를 보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분들에 대한 고마움과 평범한 일상인 듯하지만 채소밭을 정성껏 가꾸는 일상을 함께 보여주며 일상의 소중함을 함께 알 수 있는 책이다.
논쟁의 도화선이 된 두 책
대부분의 멤버들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다 보니, 양육에 대한 스트레스와 코로나로 인해 1년 가까이 가정보육을 하면서 지쳐있는 마음을 <날 좀 그냥 내버려 둬!>의 웜홀을 보며 나만의 웜홀을 갖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알레나의 채소밭>처럼 정성을 다해 가꾸는 일상을 두고 갈 수는 없다는 의견과 함께, "웜홀이 먼저? 채소밭이 먼저?"라는 토론으로 이어졌다.
나의 웜홀은 어디?
웜홀은 나의 현실을 버리고 떠나는 곳이 아니다. 그저 바쁜 일상에서 빠져나와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힐링 공간이다. 그렇기에 할머니도 자신만의 시간을 가진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현재 나의 웜홀은 집 앞에 잠깐 커피 한 잔 사러 나오는 시간이다. 하루 종일 집콕하며 아이들과 생활하다 보니 오히려 집에는 내가 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없다. 아이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는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늦은 시간에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하기에는 체력적으로도 시간상으로도 제약이 많다. 오히려 집 밖이 웜홀이라는 아이러니함도 있지만 그 잠깐의 시간에 힘을 얻어 나머지 하루를 활기차게 보낼 수 있다면 그것 또한 행복한 일 아닐까?
나의 소중한 채소밭!!
나는 무엇을 정성 들여 가꾸고 있을까를 생각해본다.
궂은날도 있고, 때로는 내가 지쳐 쉬어야가 할 때도 있지만, 언제가 풍성한 수확을 거두기 위해 매일 정성을 다하는 것. 나의 일상에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육아! 내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다.
아이를 임신하고 낳아 키우고, 유치원을 가고 초등학교를 갈 때까지 키우면서 혹시나 부족하진 않을까,
이미 사랑을 주고 있음에도 넘치게 주고 싶은 마음에 내 사랑이 부족해서 모자라진 않을까를 항상 걱정한다.
엄마로서의 삶은 나를 포기해야 하는 시간들이 분명 있지만, 나는 이 삶을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은 없다,
나는 이 나라를 이끌어나갈 또 하나의 훌륭한 인재를 키우고 있는 중이니까.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밝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랄 수 있게 하는 것이 나의 일인 것 같다.
알레나 아줌마가 채소밭에서 수확을 하고 시장에 내다 팔고, 자기의 길을 따라 다시 가듯이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세상에 나아가면 나 또한 내가 계획하던 나의 길을 묵묵히 갈 것이다.
"웜홀이 먼저? 채소밭이 먼저?"라고 토론하는 중에 등장한 <가드를 올리고>
<가드를 올리고>는 권투선수가 맞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통해 인생이 때론 넘어지고, 다시 정상을 향에 가기에도 힘에 붙이지만, 용기를 내서 다시 일어나라는 의미를 통해 우리의 인생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위로를 받는 책이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인생의 위기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에 힘들었어도 막상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니었던 순간들이 있다. 때로는 이미 한번 파도에 맞아 부서지고 나면 더 큰 파도가 와도 오히려 담담하게 지나가는 순간들도 있다.
나의 부모님은 IMF가 터지기 2년 전에 하시던 사업이 부도가 났다. 대기업에서 잘 나가는 과장님이셨던 아버지가 직장을 박차고 나와 차린 사업장이 었는데, 나름 사업이 잘되다 보니 욕심에 규모를 키워보다가 구멍이 났다고 했다. 그 작은 구멍이 사업의 부도로 이어졌는데,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 수도 있는 위기의 상황이었다. 내가 아끼던 피아노에 압류 딱지가 붙던 날이 기억난다. 부모님은 우리가 걱정할까 봐 애써 내색하시지 않고 중학생이던 나에게만 상황을 귀띔해 주셨었고, 철이 없는 나는 피아노를 잃는다는 생각에 펑펑 울었었다. 다행히도 채권자들이 양해를 해주어 우리 가족은 흩어지지 않고 살던 곳에서 살 수 있게 되었고, 부모님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공터에다 판자로 사무실을 지어 다시 시작하셨다. 2년 뒤 IMF가 터져 온 국민이 위기에 빠졌었지만, 이미 바닥을 한번 쳤던 상황이라 오히려 담담하게 잘 이겨내셨고 결국 재기에 성공하셨다.
"다시, 가드를 올리고"
평범한 듯 하지만 누구에게나 소중한 채소밭이 있다. 누군가는 그것을 하찮게 여길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채소밭 덕분에 풍요로운 행복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상에 너무 지치고 힘들어 훌쩍 떠나고 싶을 때는 놓아 버리 말고 잠시 웜홀에 가서 쉬어도 된다. 영영 떠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하는 나만의 쉼터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나의 채소밭이 망가져 버리는 날도 있다. 그럴 때는 너무 슬퍼하지 말고 다시 가드를 올리고 일어설 준비를 하면 된다. 마흔을 앞두고 바라본 인생은 그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