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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a p Feb 12. 2021

[에세이] 알고 있지만, 모르고 있었다.

치과에 가려고 상가로 들어가 계단을 오르려던 중

폐지를 가득 담은 박스를 힘겹게 끌고 내려오시던

한 할머니와 마주쳤다. 

할머니께서는 나를 쳐다보시더니

마치 '당신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라는 것을 확인시키려는 듯

하던 행동을 멈추며 폐지 박스를 밀고는

"어서 올라가요, 이쪽으로."

라고 말을 걸었다. 

그 말에도 반응하지 않고 무심코 두세 걸음 계단을 오르다

문득 뒤돌아보니 

'내 뒤에는 사회적 약자인 노인이 있었고

그 노인은 무거운 짐을 옮기고 있었고

노인의 힘은 부족하여 그 짐을 옮기는 것을 버거워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할머니께 마치 교과서 같은 어투로

"제가 도와드릴게요."라고 말한 후 박스를 들어 할머니의 리어카에 실었다. 

그에 대한 할머니의 반응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더 격한 것이었다. 

마치 이런 호의는 처음 받아본다는 듯 연신 칭찬을 하며

아가씨는 마음씨가 고와 시집을 잘 가겠다는 등

아이를 낳으면 착하고 총명할 것이라는 등

온갖 축복의 말들을 내려주셨다. 

그러나 내가 박스를 옮긴 거리는 길어봐야 고작

계단 1층에 해당하는 정도였다 

할머니는 얼마나 많은 무관심들을 거리에서 마주쳤던 것일까. 

그리고 내 눈에는 왜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던 걸까. 

나는 왜

교과서에서 배운 당연한 것들을

그리고 나 역시 당연히 말하며 아이들에게 가르쳤을 것들을

관심 없이 지나쳐가며 지키지 못했던 것일까. 

분명 알고 있었지만,

나는 보지 못하고, 그래서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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