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에 가려고 상가로 들어가 계단을 오르려던 중
폐지를 가득 담은 박스를 힘겹게 끌고 내려오시던
한 할머니와 마주쳤다.
할머니께서는 나를 쳐다보시더니
마치 '당신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라는 것을 확인시키려는 듯
하던 행동을 멈추며 폐지 박스를 밀고는
"어서 올라가요, 이쪽으로."
라고 말을 걸었다.
그 말에도 반응하지 않고 무심코 두세 걸음 계단을 오르다
문득 뒤돌아보니
'내 뒤에는 사회적 약자인 노인이 있었고
그 노인은 무거운 짐을 옮기고 있었고
노인의 힘은 부족하여 그 짐을 옮기는 것을 버거워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할머니께 마치 교과서 같은 어투로
"제가 도와드릴게요."라고 말한 후 박스를 들어 할머니의 리어카에 실었다.
그에 대한 할머니의 반응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더 격한 것이었다.
마치 이런 호의는 처음 받아본다는 듯 연신 칭찬을 하며
아가씨는 마음씨가 고와 시집을 잘 가겠다는 등
아이를 낳으면 착하고 총명할 것이라는 등
온갖 축복의 말들을 내려주셨다.
그러나 내가 박스를 옮긴 거리는 길어봐야 고작
계단 1층에 해당하는 정도였다
할머니는 얼마나 많은 무관심들을 거리에서 마주쳤던 것일까.
그리고 내 눈에는 왜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던 걸까.
나는 왜
교과서에서 배운 당연한 것들을
그리고 나 역시 당연히 말하며 아이들에게 가르쳤을 것들을
관심 없이 지나쳐가며 지키지 못했던 것일까.
분명 알고 있었지만,
나는 보지 못하고, 그래서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