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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a p Feb 09. 2021

[에세이] 트라우마

트라우마(trauma)는 일반적인 의학용어로는 '외상(外傷)'을 뜻하나, 심리학에서는 '정신적 외상', '(영구적인 정신 장애를 남기는) 충격'을 말하며, 보통 후자의 경우에 한정되는 용례가 많다.



트라우마는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를 동반하는 일이 극히 많으며 이러한 이미지는 장기 기억되는데, 트라우마의 예로는 사고로 인한 외상이나 정신적인 충격 때문에 사고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 되었을 때 불안해지는 것을 들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트라우마 [trauma]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어제 심장이 아파 병원을 찾았다. 인공심장박동기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이유도 있었고... 작년부터 올해에 이르기까지 가슴에 통증이 심해 몇 번을 쓰러졌기 때문이었다. 내 주변 사람들은 몇 번이고 이야기를 들었을 테지만.. 아직 인공심장은 상용화되지 않았고 개발단계이며, 그 이전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인공심박동기이고, 그 이외의 수술은 심장 이식뿐이다. 나는 인공심박동기를 삽입한 페이스메이커 환자다.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 인공심박동기의 생체리듬을 조절해야 하는데.. 어제 병원에 진료받으러 가는 김에 인공심박동기 조절도 신청했었다. 진료 며칠 전 조절을 신청하면 내 인공심박동기를 생산한 메디컬 회사에서 출장을 나와 배에 자석 같은 기계를 대고 원격으로 조절을 돕는다. 첫 번째 수술을 한지 벌써 13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그 사이에 새 기계와 배터리를 한번 교체하는 수술을 받았었다. 그동안 병원의 풍경도 많이 달라지고 진료실의 위치도 바뀌었지만, 나를 담당하는 의사 선생님, 홀터실 선생님, 인공심박동기 메디컬 회사의 직원분들은 하나도 바뀌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그래서 그분들의 눈에는 난 아직 어린 17살 꼬맹이의 모습이었다.


"오랜만이네요! 그동안 잘 지냈어요?"


홀터실에 들어서자 메디컬 회사의 직원분이 얼굴을 기억한다며 아는 체를 하신다. 나도 반갑게 아는 체를 하며 그간 어떻게 지내셨느냐고 안부를 건네었다. 그러자 그분이 내 어릴 때의 일을 기억하신다며 장난스럽게 말을 꺼내셨다.


"이제 예민한 것은 괜찮아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눈물이 펑펑 나오는 것이었다. 17살, 처음 수술을 받았을 때 나는 길을 가다가도 공부를 하다가도 주저앉아야 했다. 뱃속에 들어있는 인공심박동기에서 전기가 탁탁 튀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었다. 몸속에 전기가 튀는 느낌.. 그 이물감이랄까, 이질감이랄까. 곧 감전이라도 되어 죽을 것 같은 그 느낌을 설명조차 할 수 없어 많이 힘들었다. 그래도 평소에 느끼는 정도는 그렇게 못 참을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박동기를 조절해야 하는 날에는 굉장히 힘들게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원격 조절장치를 배에 대고 버튼을 누르는 순간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그 전기충격을 고스란히 맛봐야 했으니까.


그때마다 홀터실의 담당 선생님과 기계회사 직원은 내게 예민하다며 다른 사람들은 잘 느끼지도 못하는 것을 내가 더 유달리 많이 느끼는 것이라 했었다. 나는 정말 힘들고 싫어서 도움을 요청하는데 모두들 그 원인을 모르니.... 그때마다 그냥 '학생이 예민한 거다. 엄살이 심하네.' 하고 넘겼던 거다.


그리고 그 전기 튐 현상의 원인을 알게 된 것은, 첫 번째 수술 후 육 년 뒤, 기계와 배터리를 교체하는 두 번째 수술 때였다.


수술을 앞두고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던 흉부외과 의사가 나를 진찰하러 왔을 때, 나는 내가 힘들어하는 현상에 대해 말했다. 그랬더니 내 수술부위를 보던 그 의사가 짧게 외쳤다. "이 수술 누가 했어?"


'네가 하셨는데요.' 그 말이 머리 끝까지 차올랐고, 너무도 극심하게 화가 났다.  수술만 앞두고 있지 않았다면 그 의사의 뺨을 갈겼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선택진료를 통해 그 의사의 이름으로 수술을 받은 거였다. 우리 엄마 아빠는 수술을 무사히 끝내주셔서 감사하다며 백만 원에 호가하는 양주를 그 의사에게 육 년 반 전에 선물했던 터였고. 그런데. 알고 보니 수술은 잘못되어 내 기계는 내 얇은 뱃가죽 한 꺼풀 뒤, 겉으로 만져질 정도로 얕은 곳에 삽입되어있었던 것이었다. 당연히 전기가 느껴질 수밖에.


그 의사 놈은 누구에게 대신 수술을 맡긴 거였을까.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신의 양심을 걸고 돈은 돈대로 받으며 수술을 그렇게 대충 마무리해두고. 환자를 육 년 반 동안이나 고통스럽게 놔두었던 것일까. 왜 그 육 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그냥 예민하고 엄살이 심한 아이로 방치되어있었던 것일까.


트라우마. 트라우마였구나.


두 번째 수술은 잘 마무리되어 기계는 근육 안쪽 깊은 곳으로 다시 삽입되었다. 더 이상 만져지지도 않았고, 전기 튐을 느끼는 일도 거의 없었다. 그렇게 별 탈 없이 잘 지냈기 때문에 그때 그 일들을 잊은 줄 알았었다. 아니 가끔 생각이 나도 슬프고 힘들 정도는 아니었는데. 눈물이 나다니..


한참을 펑펑 울고 하소연을 하자 홀터실 의사 선생님이 웃으며 한마디 하신다.


"울보네. 그때도 울더니 아직도 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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