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당착
어떤 사상 체계 주장도 무조건적인 진리는 아니다. 인간의 지식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변화한다. 지금 우리가 진리라고 믿는 것도 새로운 발견 관점에 따라 언제든 재평가되거나 대체될 수 있다. 철학자는 지식의 본질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자신의 주장에 대한 자가당착을 경계하는 것이 필수적인 태도이다.
마르크스는 생산력 발전이 사회 변화의 핵심 동력이라 보았다. 중세 봉건 사회의 소유관계가 생산력 발전으로 무너지고 부르주아 사회가 출현했다. 생산력 극한 발전은 결국 부르주아적 소유관계를 철폐하며 프롤레타리아 사회를 탄생시킬 것이라 주장했다. 이러한 생산 중심적 관점은 자본주의 체제 분석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보드리야르 같은 후대 사상가들에게 비판받았다. 보드리야르는 자본주의를 작동시키는 메커니즘이 '생산'이 아닌 '소비' 즉 유통의 영역에 있다고 보았다. 흥미로운 점은 마르크스 본인도 소비 유통의 영역이 생산 과정을 보장하는 중요 요소임을 이미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가 생산 중심주의적 관점을 강하게 표방했던 사례는 위대한 사상가조차 특정 관점에 몰두하면 다른 중요 측면을 간과할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마르크스의 사례는 모든 인간 주장 한계를 분명히 보여준다. 심오한 통찰을 제공했던 사상가 주장조차 후대 새로운 시각으로 비판 보완된다. 이는 어떤 이론도 절대적 진리가 될 수 없음을 증명한다. 과학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과학은 경험 실험을 통해 객관적 진리를 추구한다. 하지만 새로운 이론 패러다임이 등장하면 기존 진리가 한순간에 뒤집히거나 수정된다. 상대성 이론이 뉴턴 역학을 보완했듯이 과학적 진리도 시간 관찰 기술 발전에 따라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철학을 하는 이는 자신의 논리적 완결성을 추구한다. 동시에 자신의 주장이 결코 최종적인 것이 아님을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인간의 지성은 항상 오류 가능성을 내포한다. 진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탐구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재해석 발견되는 잠정적인 합의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