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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a p Oct 18. 2020

쉬운 동양 철학 1

공자 VS 묵자

공자는 인간을 가리키는  종류의 개념을 별도로 사용했다. 하나는 ‘애인 ‘()’이고  다른 하나는 ‘사민 때의 ‘()’이다. ‘애인이란 표현은 ‘사람을 사랑한다 뜻이고 ‘사민 ‘백성을 부린다 의미가 된다. 공자의 차별적 인간관은 그가 살았던 춘추시대의 문헌을 살펴보면 너무도 당연했던 것임을   있다. 주나라 제후들이 황제에게 반역하다 춘추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어쩔  없었던 것이다. 지배층이었던 국인들은 제후들을 필두로 해서 국가의 군사, 제사, 외교 등을 장악했고, 아울러  국가의 민과 토지 등을 모두 지배하고 있었다. 이처럼  제후국은 ‘ ‘ 지배하는 차별적 정치구조를 분명한 형태로 실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논어>> <학이> 편에 등장하는 구절,  “쓰는 것을 절약하여 애인해야 하며, 사민  때는 철에 맞게 해야 한다라는 말은 다음과 같이 번역할  있다. “쓰는 것을 절약하여 국인들을 사랑해야 하며, 민중을 부릴 때에는 철에 맞게 해야 한다결국 공자가 강조했던 ‘애인이란 우리가 예상하는 ‘인간에 대한 보편적 사랑 의미했던 것이 아니라는    있다. 그가 강조했던 것은 ‘지배층 내부에만 국한되는 특수한 형태의 사랑 불과했기 때문이다. 사실  점은 ()이라는 글자의 부수로 귀족계급을 상징하는 ()이라는 글자가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되는 것이다. 한편인() 함께 공자사상의 핵심인  다른 개념,  ()라는 개념에도 귀족계급을 편애하는 공자의 속내가 유사하게 반영되어 있다.

공자가 숭배했던 () 나라는 단순히 예만으로 사회질서를 유지했던 것은 아니었다. 주나라에는 수많은 형벌도 함께 존재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예가 지배 귀족 사이의 위계질서를 유지하고 통치자들 내부의 분열을 막기 위해 사용된 것이었다면, 형벌은 평민을 비롯해 피지배계층을 통치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형벌은 육체적인 것이었는데 죄의 경중에 따라 얼굴에 문신을 새기는 , 코를 자르는 , 생식기를 자르는 , 발뒤꿈치를 잘라내는 , 사지를 찢어 죽이는 것 등 온갖 종류의 가혹한 형벌이 동원되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어떤 귀족이 예를 어겼을 경우 그에 대한 처벌은 단지 정신적 형벌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말이 형벌이지 사실상 동료 귀족들의 나쁜 평판, 그리고 그에 수반하는 수치심을 느끼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한마디로 ‘ 어기는 경우 귀족에게는 처벌이랄 것도 없는 경고와 개인 반성 정도의 조치가 취해졌던 것이다.

그런데 특정 계급에 한정된  사랑이란 것을 계급 구별을 넘어 모든 인간에게 확장시킬  없을까? 우리가 살펴볼 묵자라는 철학자의 속내는 바로 이것에 있었다. 그가 ‘()’ ‘()’라는 글자를 수없이 반복해서 사용했던 이유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고   있다. 묵자는 모든 전란, 찬탈, 원한이 발생하는 이유를 ‘서로 사랑하지 않는’ 상태에서 찾으려고 했던 사상가이다. 바로  대목에서 묵자 철학을 상징하는 ‘겸애라는 개념이 의미심장하게 대두된다. <겸애> 상편을 보면 겸애를 외치는 묵자의 절절한 목소리를 확인할  있다. “만약 세상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여 남을 자기 몸처럼 아낀다면 어찌 불효자가 있을  있으며... (중략) 어찌 자비롭지 못한 자가 있겠는가? 남을  몸처럼 본다면 누가 (또한) 절도를  것인가?... (중략) 따라서 도적이 없을 것이고, 또한 귀족이 남의 봉토를 침입하고 제후가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일이 있겠는가? 남의 봉토를  봉토처럼 여기면 누가 침입할 것인가. 남의 나라를  나라로 보면 누가 공격을 하겠는가?”

결국 묵자가 강조한 겸애는 다른 것을  것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간단한 원리로 정리할  있겠다. 그래서 몇몇 학자들이 묵자의 사랑을 “원수마저 사랑하라"라는 예수의 사랑과 종종 비교했던 것도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그에게 ‘겸애라는 표현은 표면적으로   ‘차별이 없는 사랑혹은 ‘상호 간의 사랑 의미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가 기독교적 사랑과 유사한 ‘평등 박애 주장했다고 속단해서는  된다. 묵자는 공자와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가족제도나 정치질서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따라서 묵자가 주장했던 ‘ 단지 ‘ ‘ 차별을 없애자는 것이지, 부모, 집안, 도읍, 국가라는 정치적 단계나 구별을 없애자는 말은 아니었다. 묵자의 사랑과 관련해서  가지  주목해볼 점은, 그가 말한 사랑이 정서적 유대감을 넘어 물질적인 상호부조로까지 확장되었다는 점이다. 참혹한 살육으로 점철된 전국시대 민중의 삶이 고통  자체였으리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있다.

당시 군주들이 민중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 것으로 그쳐서는  되었다. 반드시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어야 하고, 추운 자에게는 옷을 주어야 하며, 노동이나 병역으로 지친 자에게 휴식을 제공해야만 백성을 아까는 군주라는 말을 들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묵자는 지배계급에게만 한정되어 있던 공자의 () 개념을 겸애로 확장하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 가능한 정서적 유대의 원칙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묵자가 보편적 사랑이나 이익의 공유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위계적 정치제도  자체에 대해선  이상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묵자의 독재론이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겸애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된다. 묵자가 독재 군주가 겸애의 이념을 저버릴 경우를 고민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가령 독재 군주가 보편적인 사랑이나 이익공유 등의 정책을 실현하지 않을 경우, 묵자는 상제라고 불리는 하늘과 귀신의 의지를 긍정하는 초월적 종교론을 펼치게  것이다. 다시 말해 하늘과 귀신은 사랑의 철학을 실천하는 군주를 돕고, 그렇지 않은 군주에게는 재앙을 내린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묵자는 춘추전국시대의 살풍경이 발생한 진정한 원인이 국가라는 형식 자체에 있음을 간과했던 것이다.

나는  둘이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평등에 초점을 맞춰 보려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사랑이 차별적 사랑이기 때문이다. 국가라는 체제 자체가 평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국가라는  안에서는 절대 평등할 수가 없다. 국가라는 메커니즘 자체가 자본가 계급을 옹호하고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신 세금을 많이 내고 사회적인 일을 하면서 자신들의 부를 정당화하려고  것이다. 가난한 자들은 출발점 자체가 다르면 자신과 남을 비교하면서 자신을 자책하게  것이다. 그리하여 출발점이 다르지 않게 출발할  있도록 농어촌 전형 또는 국가 장학금 제도 같은 것을 시행한다. 그런데 자신은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평등은 타인도 나처럼 가난해야지, 타인도 나처럼 공부 못해야지 하면서 환경 탓을 하며 타인과 자신을 하향평준화해나갈 뿐이다. 이런 자들에게는  기회조차 아까울 뿐이다.


공자의 초상화


참고 서적: 강신주 철학 vs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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