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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a p Oct 23. 2020

쉬운 동양 철학 6

양주 VS 한비자

묵자는 ‘겸애’,  보편적인 사랑을 주장했고 몸소 그것을 헌신적으로 실천했던 사람이다. 반면 양주는 이와는 매우 대조적으로, 자신만을 위해야 한다고, 자신의 삶을 지고한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얼핏 보면 양주의 사상이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맹자의 평가를 통해 양주라는 인물이 단순한 이기주의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있다. 양주의 위아주의(爲我主義) 국가체제 혹은 국가 논리를 벗어나려는 논리로 강조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유혈이 낭자했던 전국시대 사람들은  양주 사상에 그토록 환호했던 것일까? 전쟁으로 얼룩진 전국시대를 종결시키는 방법으로 양주가 제안한 것은 표면적으로는 말도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전체 세계에 진정한 평화가 도래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천하를 이롭게 한다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만 한다고 그가 주장했기 때문이다.

대개의 사람들이 전체 사회를 무질서하게 만든 원인이 국가나 국가가 추구하는 이념이 부재했기 때문이라 생각했을 , 오직 양주만은 무질서의 원인이 ‘바람직한 사회를 위해서 삶을 희생하라라고 선동하는 유가 혹은 묵가의 국가 지향적 이념에 놓여있다고 간파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느 이념이든 자신들의 이념을 따르는 사람을 ‘동지라고 규정한다는  있다. 결국 법치주의든, 겸애 주의든 이념 지향적인 사상가들은 자신도 모르게 ‘적과 동지라는 이분법을 강요할 수밖에 없다. (전에 비슷한 개념을 말했던 서양철학자가 떠오르지 않은가? 바로 슈미트다.) 양주는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국가를 위해서 개체의 삶이 존재하는가? 아니면 개체를 위해서 국가가 존재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체를 위해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단서를 하나   것이다. 국가는 구성원들을 보호하는 불가피한 수단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불가피한 수단은 절대적인 수단이 되고, 절대적인 수단은 유일한 수단이기에 바로 절대적인 목적으로 변질된다. 2,000   양주라는 철학자는 정확히  문제점을 통찰하고 있었다. 개체의 삶을 위해 바람직한 국가가 있어야 한다는 모든 주장이, 결국은 강력한  공권력을 독점한 국가에 의해 개체의 삶을 일종의 수단으로 전락시키게  것이라는 점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나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서 개인의 삶이 희생될  있다면, 이런 태도야말로 본말이 전도된 현상이 아니겠는가? 세계의 평화나 안정은 대다수 개체들의 삶이  자체로 긍정될 때에만 도래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양주는 모든 사람이 국가주의적 이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신들의 삶이 무엇으로도 바꿀 수가 없는 절대적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고 역설했던 것이다.

순자는 전에 공부했던, 공권력과 규범의 외재성을 강조하면서 성악설을 주장했던 철학자이다. 하지만 개체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 외적인 강제가 불가피하다면, 전통적인 규범보다는 강력한 공권력이  효과적일 것이다. 순자의 수제자 한비자가 규범을 내세우게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그는 단순히 군주에게 아첨만 했던 인물이 아니라, 전국시대의 핏빛 혼란을 종식시킬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강력한 절대 군주론을 요청했던 것이다. 결국 그가 꿈꾸었던 법치국가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 마련되었던 셈이다. 그러나  대목에서 양주의 비판이 빛을 발한다. 법치국가만이 모든 사람에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절대적인 수단이라면, 법치국가는 어느 순간 한비자의 기대와 달리 절대적인 목적으로 변질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비자의 현실주의적 인간관이다. 공자의 ()이든 묵자의 겸애(兼愛) 사랑의 원리는 인간의 현실적 모습을 직시하지 못한 이상주의적이고 낭만주의적인 정치 이념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한비자는 가족 사이에도 사랑의 원리보다 이익을 ‘계산하는 마음 주목한다. 농경시대 아들은 성장하면   마리의 생산력을 의미했지만, 딸은 아무리 성장해도 식량만 축내지 그런 생산력을 발휘할  없었다. 그래서 아들은 태어나면 기뻐하고 딸은 죽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한비자가 딸에 대한 사랑으로 딸을 죽이지 않은 사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너무 희소하기에, 이를 근거로 사랑의 원리가 이익의 원리보다 보편적이라고 주장해서는  된다.

한비자는 양주의 사상이 ‘외물을 가볍게 여기고 삶을 중시한다 생각했다. 그도 양주가 삶을 최상의 목적으로, 그리고 외물을 단지 수단에 불과할 뿐이라고 사유하는 사실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양주의 사상, 그것은 모든 국가주의를 단번에 날려버릴  있는 다이너마이트였다. 천하보다 정강이에  털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국가가 어떻게 움직일  있다는 말인가? 털은 자라다가 떨어지고, 새로운 털이  자리를 대신한다. 그러니 우리의 , 혹은 생명에게서 털은 가장 가치가 떨어지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 자신의 생명은 얼마나 중요하다는 말인가? 가장  이익인 천하를 준다 해도 그걸 털보다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국가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국가는 그만큼 약해져 마침내 소멸하게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국가 안의 개체로서 살아왔다. 하지만  번이라도 나의 생명이 국가에 우선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명만 희생하면  그룹이 나아질 것이라고 누군가를 배척하려고  적은 없는가? 나는 그동안 국가라는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클라스트르의 인디언 사회에서는 국가가 없다고 했지만 부족 국가로써 존재했기 때문이다. 국가는 존재할  있다. 그러나 천하,  전체를 목적으로 삼는 순간 누구라도 쉽게 전체주의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 만약 이런 사람에게 천하를 맡긴다면,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지키지 못하게  것이다.



한비자의 초상화


참고 서적: 강신주 철학 vs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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