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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윤 Aug 06. 2024

어떤 날의 하루



새벽 5시, 나와 첫눈을 마주친 

내 하얀 스타벅스 스텐컵. 

의식인지 무의식인지 모를 

내 하얀 손이 그를 어루만진다. 

뜨거운 물 반컵에 차가운 물 반컵을 따른 후, 

누군가는 음양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그 순간에 바로 마시라고 하지만 

난 음양의 대류현상을 눈으로 볼 기세로 

컵 안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식탁 위 조명이 컵 안에 뚜렷이 비칠 때쯤 

한 모금 입안을 적신다. 

오늘 해야 할 일이 

매직아이처럼 식탁 위에 떠오른다. 

그럼 다시 한 모금 더, 

오늘 스케줄과 해야 할 일들의 연결고리가 

무한 생성됨을 중단시키려 꿀꺽. 

이제 더 이상 물러설 시간이 없는 

마지막 한 모금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작고 앙증맞은 턱을 방석 위에 걸치고, 

나의 움직임에 따라 구슬 같은 눈동자만 달랑거린다. 

행여나 나의 두 손이 잠깐 쉬는 것 같으면 

얼른 일어나 꼬리를 흔들며 앉았다가, 

내가 눈길을 안 주면 다시 방석으로 가서 

턱을 괴고 엎드린다.  

그렇게 하기를 수차례.. 

드디어 나의 눈빛이 유리 같은 눈망울에 닿으면 

꼬리가 떨어져라 달려든다. 

떼를 쓰지도 않고 잠자코 기다리는 

이 눈치 빠른 작고 하얀 솜뭉치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으랴. 

그렇게 나는 너에게 물들어가고  

아직 다가오려면 아마득한, 

너 없는 세상은 벌써 상상조차 하기 싫은 

나는 꽃별이 엄마. 







오후 12시, 검은색에 금색 테두리를 입힌 

고급스러운 깡통을 열면 

콜롬비아에서부터 날아와 

의정부 어딘가에서 고초를 겪어  

검게 그을린 그것들이 구릿빛 향기를 뿜어낸다. 

나의 굳어진 전두엽은 뚜껑을 연 순간 

환각의 상태로 도치되고 

흥분된 두 손은 튼튼한 나의 마약 제조기로 

그것들을 탈탈 털어 넣는다. 

왜앵, 30여 초의 금기의 시간이 지나면 

드디어 쇼타임! 

몽롱한 수증기와 함께 떨어지는 

수프리모의 혈액들. 

산미 하나 없는 진한 향을 맡으며 

급하게 수혈하는 나의 정오.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는다. 

연필대신 컴퓨터에 두 손을 올리고 

왕년에 피아노를 날아다니던 내 손이 

맞나 싶을 정도로 탁. 타닥....

소리가 계속 끊긴다. 

피아노 연주하듯이 

글을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서재는 밤새워 연습하던 

연습실의 공기와 너무 똑같다. 

물리적 시간과 내적 갈등이 싸우는 공간이자, 

끊임없이 내 안의 다른 화자를 부르는 공간. 

분명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사랑한다고 했는데, 

오늘은 그것들에 처절히 패배한 

내 뒷모습이 안쓰럽다. 






하늘이 파랗다가, 회색빛이었다가, 

또 하얗다가 다시 어두워진다. 

이제 장마라고 했는데, 

어제 워밍업을 마친 후 

오늘은 숨 고르기를 하나보다. 

얼마나 달리려고? 

아무리 지금이 

온 대지를 적시고 싶은 때라도 

하루 왔다, 하루 쉬면 안 되겠니? 

그래, 내가 큰맘 먹고 3일은 봐줄게. 

일주일에 2번은 쉬면서 달려주지 않을래?








한 시간이 멀다 하고 네가 생각나. 

궁금하다 못해 그리워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움은 불안함이 된다. 

세상에, 내가 이토록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있던가?  

하긴, 온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너를 

내가 무슨 수로? 

하지만,  내 차에 유기된 너를 

저녁까지 찾지 않을 테다. 

나의 스마트폰.







오늘 저녁은 무얼 먹지? 

조용히 사색하던 냉장고를 

예고 없이 흔들 어깨 운다. 

하얀 불빛 안에 잠들어 있는 흙 묻은 당근과 

지난주부터 먹을 거라고 손질해 놓은 

양배추가 화가 난 듯 앉아있다. 

기다림에 지친 청양고추는 꼭지가 말라가고, 

어제 막 입성한 돼지고기가 

건강한 붉은빛으로 유혹하고 있다.

오늘부터 다이어트하기로 했지?  

기다림의 순서대로 꺼내는 일과를 무시하고 

싱싱한 케일과 고기를 꺼낸다. 

그래, 오늘 저녁은 탄수화물 없이 

스테이크와 케일주스만 먹자. 









윙윙~싹싹, 돌리고 돌린다. 

요즘은 자동으로 슈웅~하면 

깎이는 것도 많지만, 

난 돌돌 돌리며 한올씩 벗긴다. 

몇 번 쓰면 금방 뭉툭해지는 연필이 

짧아지면 짧아질수록 

정서적인 만족감은 커진다. 

아직도 수학 문제를 풀 땐 

연필로 푸는 버릇이 있다. 

어릴 때 연필로 연습장 한 권을 

다 메꾸고 나면 

그냥 버리기 아쉬워 

두 번째는 빨간색 볼펜으로 

덧입혀 풀곤 했는데, 

그때의 기억이 

연필이 사각거릴 때마다 떠오른다. 

한여름의 아스팔트의 냄새가 

기억되는 것처럼, 

연필이 그리고 간 흔적은 

나의 전투력이 최고조였던 

그때를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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