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탄다. 정류소에 버스가 멈춘다. 차창 너머로 보이던 어떤 사람이 버스에 올라타 내 옆에 선다.
그러면 창밖의 '저 사람'이 내 옆의 '이 사람'이 된다. 이 별것 아닌 상황에 나는 생각을 한다. 'this'와 'that '의 관계를.
내가 사랑하던 '이 것'이 싫어지는 '저 것'이 될 수도 있고, 함께 있는 '이 공간'이 그리워지는 '저 공간'이 될 수도 있다. 물리적 거리일 수도, 마음의 거리 일 수도 있는 이 사소한 지시형용사에 '인연'이란 단어가 연결된다.
결국 나와 관계를 맺는 인연이 있어야 'this'가 될 수도, 'that'이 될 수도 있는 것. 'this'는 가깝고 'that'은 멀다가 아닌 나와 연결고리가 있는 카테고리로 들어오는 순간 모든 것이 다 유의미해진다.
마흔을 넘기면서 점점 좋고 싫음에 대한 기준이 명확해진다.
물건은 물론이거니와 사람도 나와 비슷한 영역의 사람들은 좋은 사람, 다른 영역에 있어서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은 싫은 사람으로 설정한다. 내가 싫어하고 불편해하는 사람들 혹은 나와 섞이지 않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굳이 소중한 에너지를 쓰기 싫은 마음이 가장 크다. 그럴 시간에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사람들만 만나며 좋은 시너지를 얻는 데에 나의 귀중한 시간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한다고 내가 불편해하는 사람들과의 인연이 끊기는 것도 아닌데, 내가 그렇게 싫어할 정도로 그들이 나에게 큰 잘못을 했나? 또, 나의 기준으로 그들을 평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이런 생각이 동시에 든다. 구분 짓는 마음이 굳이 필요한가? 나와 인연이 있는 것만으로도 소중히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버스를 탄 내내 내 머릿속의 정류장을 스쳐간다. 자유롭다. 내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흘러간다.
내 일상의 흔한 유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