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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윤 Aug 14. 2024

하루동안의 자유

쓰지 못할 하루




새벽 출근하는 남편을 보내고, 매일 아침 줌으로 만나는 독서모임 식구들. 한 시간여 한바탕 웃고 떠들고 나면 그 시간 동안 잘 참아준 나의 반려견 꽃별이와 한참을 부비부비 애정을 나눈다. 저녁까지 혼자 있어야 하는 과업이 주어진 그녀를 달래려 오늘은 조금 긴 산책로를 택했다. 좋아하는 토끼풀에 뒹굴뒹굴.... 땅냄새, 바람냄새, 방치된 자전거냄새, 재활용 쓰레기통 냄새까지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 꽃구멍에 마음껏 숨결을 집어넣는다. 


오늘은 나의 자유의 날이다. 퇴근 후 남편이 소란스럽지 않을 정도로만 간단히 청소를 끝내고 남 보기 창피하지 않을 정도의 차림새로 편안한 운동화를 신는다.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라 몸이 불편하면 오롯이 즐기기 힘들 것 같다. 출근시간을 살짝 비켜난 시간에 지하철을 탄다.  


첫 번째 목적지는 국립현대미술관. 머리를 비우기도, 다시 채우기도 참 좋은 공간. 난해한 작품이 쉽게 보이기도 하고, 간결한 메시지를 주는 작품 같아 보이는 것이 한없이 어렵게 해석되는.. 작품을 보고 작가의 뜻을 읽으면 읽히는 대로 반갑고, 이해가 안 되면 작가의 놀라운 맥락에 감탄하며 그들의 세상과 교감하는 시간.시각적 영양분을 충분히 흡수한 나의 생각들이  무한한 생명의 씨앗들로 탄생할 때, 설령 그것들을 놓칠세라 나의 노트에 옮겨 심는다.  조금 늦은 브런치와 함께. 


그 다음 목적지는, 내 발길이 닿는 대로 걷는 것이다. 의식할 겨를도 없이 대학로 쪽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 가다가 잠시 쉬어갈 작은 벤치를 만나면 잠시 쉬었다가, 서점이 나오면 책구경도 하고, 시간과 공간에 제약받지 않은 나의 자유를 온전히 만끽하는 순간순간을 내 콧구멍으로 들이킨다. 소중한 나의 콧바람. 대학로는 언제 가도 젊음이 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는 그때, 나의 20대가 살짝 다가왔다. 내 안의 그녀가, 호객하는 예쁜 언니의 손에 이끌려 연극표를 산다. 평소에 보고 싶었던 연극은 이게 아닌데.. 하며 40대의 나라면 보지 않았을 작품을 본다. 하지만 세상에는 늘 반전이 있는 법. 이 연극을 선택한 그녀의 탁월함에 놀라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간. 이제 어디 갈까? 내 스무 살 정서의 설렘을 뒤로하고, 정처 없이 걷는다. 버스킹을 구경하다 '아, 배가 고프다.'는 생각. 지나가는 예쁜 연인들을 보며 정처 없이 걷다 계속 만지작거리는 나의 핸드폰. "여보~ 나 데리러 오지 않을래? 우리 와인 마시자! " 한나절을 겨우 넘긴 나의 일탈은, "그래~내가 그럴 줄 알았어. 오빠가 있어야 재밌지? " 하며 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그의 웃음소리와 함께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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