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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윤 Aug 20. 2024

사유하는 것에 대한 사유 ; 활자중독

나의 습관

눈을 뜬다. 눈을 뜨자마자 찾는 것. 나의 활자들. 5분 정도 침대에서 흐린 활자가 선명해질 때까지 눈을 맞춘 뒤에 비로소 기지개를 켜고 양치질을 한다. 결혼 초반에 남편이 항상 이상하게 생각했다."너 눈 뜨자마자 책이 읽어져?" , "응 잠 깨려고 보는 건데. 왜?" 책을 보며 머리를 깨우는 의식을 치러야 비로소 몸이 움직여지는 걸 어쩌랴.


우리 집은 곳곳에 책이 놓여 있다. 침대에도, 식탁에도, 소파에도, 책상에도 심지어 나의 두발인 자동차에도. 늘 2~3권의 책을 동시에 보는 내가 남편은 늘 신기한 듯 물어봤었다. "자기야, 한 주 동안 드라마도 보고, 예능도 보고, 뉴스도 보지 않아?  난 티브이 보면서 유튜브도 보는 당신이 더 신기한데?"라고 답한 뒤로는 더 이상 그 질문은 하지 않는다.


내가 책을 보기 시작한 건.. 책이 많았던 가정환경 탓이 클 것이다. 주말이면 아빠는 늘 본인이 젤 좋아하는 간식인 마른오징어를 드시며 책을 봤었고, 엄마는 클래식을 틀어놓고 책을 보시거나 뜨개질을 하셨다. 어쩌면 책과 음악을 좋아하게 된 것은 순전히 그것 외의 취미가 없으셨던 부모님 때문이 아닐까.

난 특히나 아빠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같은 책을 읽어도 남다른 혜안을 가진 아빠가 늘 존경스러웠고 간혹 신선한 나의 발언으로 아빠를 이길(?) 때면 그 생각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새로운 책을 또 찾아 나섰다. 그렇게 나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내는 재미에 빠졌고 그 수단이 책이 되었다.


그런 오랜 나의 습관으로 생각하는 힘은 길러졌을지 모르나 나는 심각하게 시지각 능력이 떨어진다. 미래의 문맹은 글을 모르는 게 아니라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능력으로 구분된다는데 그런 면에서 난 시각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느리다. 어떤 이미지를 보며 천천히 함축적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힘들지 않으나, 빠르게 변하는 영상 속에서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순발력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알기에 시작도 하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글자를 찾는다. 만화책을 볼 때에도 글만 보는 나였으니 오죽할까.


간혹 드라마를 볼 때도 여주인공의 대사를 들으면서 저 주옥같은 문자를 뱉어낼 때의 마음과 심리상태를 생각해 본다. 그러다 보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날아다니고, 드라마는 이런 나의 유희의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드라마에는 영상과 음악이 어우러진, 배우의 손 끝에 떨어지는  찰나의 시선 같은 표현의 미도 읽어내어야 감정이 더 풍부해질 터인데, 난 늘 잿밥에 관심이 더 많으니 드라마에 몰입되기가 힘들다. 즉, 내가 노는 사유의 세상과 영상의 속도가 늘 다르다. 그래서 난 영상보다는 책이 좋다. 눈에 보이는 선명함에서 느끼는 즐거움 보다 내 마음의 필터를 거친 상상의 즐거움이 더 크기도 하고 활자를 읽어야 밥을 꼭꼭 씹어 먹듯 나의 사유가 체하지 않는 느낌이 들기도 해서다.



그런 내가 요즘 습관이 하나 더 생겼다. 나의 어여쁜 생각들을 기록하는 것. 떠다니는 활자를 내 사유의 법칙으로 붙잡는 것이 읽기의 영역이었다면, 내 안의 잉태된 나의 글자를 분만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꺼내놓는 것이 쓰기의 영역. 참 이상하게도 , 내 멋있는 사유가 활자로 바뀌면 왜 초라해지는 건지 억울함조차 내 사유에게 물어본다. 이 사유의 물음은 언제쯤 끝이 날까? 그렇게 매일 사냥하듯 활자를 낚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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