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로마신화를 읽었다. 프쉬케를 질투한 아프로디테, 아프로디테를 질투한 페르세포네, 레토를 질투한 니오베... 인간 세계보다 더욱 옹졸하고 유치하고 잔인한 신화를 읽으며 '질투'라는 감정을 꺼내어본다.
내 주변에 질투가 너무 심해서 서로 헐뜯고 미워하고 심하게는 사기를 친 사람도 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본인이 인지하지 못한 채 질투라는 감정에 휘둘린다. 사촌이 땅을 사면배가 아픈 걸 넘어서 그들의 노력을 폄하하기 바쁘다. 원래부터 금수 저였다느니, 운이 좋았다느니, 그 땅을 사는데 불법적인 무언가를 했을 거라는 등.. 사실을 빙자한 거짓말은 누가 시작했는지 궁금하기도 전에 신화처럼 멀리 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이슈의 대상이 되길 바란다. SNS를 보다 보면 유독 명품에, 좋은 집에, 비즈니스석 이상의 항공으로 밥 먹듯 해외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을 아주 쉽게 만난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sns 부업"을 하는 사람이 많다. '나 돈 많이 벌어, 나처럼 살고 싶지? 그럼 나만 따라 하면 돼.'라는 방식의 부업, 다단계사업, 인터넷 강의까지.. SNS 마케팅의 기술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결국은 인간본성의 '질투심'을 유발한 마케팅 전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악플이 많이 달리는 것조차 그들에겐 관심이 되고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 SNS의 계정은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게다가 그들의 돈 많고, 예쁘고, 여유롭고 호화스러운 일상의 질투로 시작된 관찰이, 알고리즘에 의해 반복적으로 보다 보면 결국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자기 확신감과 나도 따라 해야지 라는 마음으로 승화되어 마케팅 전략의 전리품이 되고 만다. 그들이 보여주는 일상이 기준이 되어 사회의 다른 일은 시시해 보이기까지 하는 인터넷 좀비들도 많이 양상 되고 있는 것 같다.
평소 비교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에게 질투가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비교를 하지 않으니 나보다 우월한 것에 대해 나 스스로 자괴감을 갖거나 타인을 미워하거나 시기할 일이 없었다. 그렇기에 내가 나보다 우월한 사람에게 가지는 감정은 순수한 부러움이나, 존경심 혹은 본받고자 하는 마음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올해 초, 대만 여행을 갔다 돌아오는 타이베이 공항에서, 퍼스트클래스와 비즈니스 석으로 먼저 입장하는 사람들을 보니 2팀의 나이 지긋한 부부 빼고는 전부 다 20대로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중국인도 있고, 한국인도 있었는데 그날 따라 유독 이코노미석의 긴 줄 사이에 끼여있는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물론 그들이 단순히 좌석 업그레이드 서비스를 이용했을 수 도 있지만 '쟤네들은 뭐 하는 애들이지? 부모가 돈이 많나? 그것도 아니면 무슨 사업을 하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나 이제 비즈니스석 타고 다닐 정도 아니면 해외여행 안 갈래.'라고 마음먹었다. 그 감정을 기점으로 한국에 돌아와서 노동 수익 외에도 부가가치가 있는 파이프라인을 꼭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이 강해졌다. 내가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인 블로그를 시작하고, 글을 쓰고, 작가라는 꿈을 가지게 된 이 지점까지 오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질투'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분명 난 그들이 아니꼬웠고, 나보다 어린데 더 여유 있는 모습에 괜히 화가 났다. 또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니, 블로그에서 잘 만날 수 없었던 글들이 넘쳐난다. 나도 모르게유려한 글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의 글들이 한없이 초라해 보인다. 그들의 글맛에 흠집이라도 낼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한 내 옹졸한 마음은 화살을 나에게 쏟아냈다. 무기력해졌다. 내 심연에 자리 잡고 있는 '질투'라는 감정을 알아챈 순간 더욱 도려내고 싶었다. 실력이 없으면 인성이라도 좋아야 할 텐데, 그 어느 것 하나라도 내세울 수 없는 나 자신이 더욱 비참했다. 내가 자존감이라고 착각했던 자존심이 끝이 보이지도 않는 절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쇼펜하우어는 진짜 행복을 좇으라고 했다. 행복의 무게중심을 외부로부터 내면으로 옮겨야 한다고 말이다. 누가 모르나? 아무리 순간에 집중하고 내면의 행복을 찾으려고 해도 그럴 에너지조차 생기지 않았다. 기분을 전환하려고 책을 보고,음악을 듣고, 힘든 운동을 해보아도 머릿속이 비워지지 않았다. 벗어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더욱더 옭아매는 느낌이 강렬해졌다. 그래서 내가 택한 것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기였다. 카이로스의 시간을 죽이고 크로노스의 시간에 맞긴 채 나 자신을 강하게 인정했다. 초라한 내 모습과, 나약한 정신과, 게으르고 어리석고, 무능력함까지 격렬하게 껴안았다. 그렇게 며칠 크게 몸살을 앓고 나니, 서서히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보였다.나도 모르게 높아진 나의 성공의 기준을 낮추는 것. 황새인 것처럼 쫓아가지 말고, 뱁새다운 하루의 일과를 끝낼 것. 나 자신을 과대평가한 잣대로 스스로 맞추려고 애쓰지 말 것. 그냥 나를 인정하는 것. 꿈꾸는 미래조차 그리지 말 것. 그것이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치료제라 여긴다. 앞으로의 인생에서 또다시 '질투'를 만난다면, 그때는 조금 더 성숙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보다는 조금 더 질투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