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습관
눈을 뜬다. 눈을 뜨자마자 찾는 것. 나의 활자들. 5분 정도 침대에서 흐린 활자가 선명해질 때까지 눈을 맞춘 뒤에 비로소 기지개를 켜고 양치질을 한다. 결혼 초반에 남편이 항상 이상하게 생각했다."너 눈 뜨자마자 책이 읽어져?" , "응 잠 깨려고 보는 건데. 왜?" 책을 보며 머리를 깨우는 의식을 치러야 비로소 몸이 움직여지는 걸 어쩌랴.
우리 집은 곳곳에 책이 놓여 있다. 침대에도, 식탁에도, 소파에도, 책상에도 심지어 나의 두발인 자동차에도. 늘 2~3권의 책을 동시에 보는 내가 남편은 늘 신기한 듯 물어봤었다. "자기야, 한 주 동안 드라마도 보고, 예능도 보고, 뉴스도 보지 않아? 난 티브이 보면서 유튜브도 보는 당신이 더 신기한데?"라고 답한 뒤로는 더 이상 그 질문은 하지 않는다.
내가 책을 보기 시작한 건.. 책이 많았던 가정환경 탓이 클 것이다. 주말이면 아빠는 늘 본인이 젤 좋아하는 간식인 마른오징어를 드시며 책을 봤었고, 엄마는 클래식을 틀어놓고 책을 보시거나 뜨개질을 하셨다. 어쩌면 책과 음악을 좋아하게 된 것은 순전히 그것 외의 취미가 없으셨던 부모님 때문이 아닐까.
난 특히나 아빠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같은 책을 읽어도 남다른 혜안을 가진 아빠가 늘 존경스러웠고 간혹 신선한 나의 발언으로 아빠를 이길(?) 때면 그 생각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새로운 책을 또 찾아 나섰다. 그렇게 나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내는 재미에 빠졌고 그 수단이 책이 되었다.
그런 오랜 나의 습관으로 생각하는 힘은 길러졌을지 모르나 나는 심각하게 시지각 능력이 떨어진다. 미래의 문맹은 글을 모르는 게 아니라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능력으로 구분된다는데 그런 면에서 난 시각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느리다. 어떤 이미지를 보며 천천히 함축적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힘들지 않으나, 빠르게 변하는 영상 속에서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순발력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알기에 시작도 하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글자를 찾는다. 만화책을 볼 때에도 글만 보는 나였으니 오죽할까.
간혹 드라마를 볼 때도 여주인공의 대사를 들으면서 저 주옥같은 문자를 뱉어낼 때의 마음과 심리상태를 생각해 본다. 그러다 보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날아다니고, 드라마는 이런 나의 유희의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드라마에는 영상과 음악이 어우러진, 배우의 손 끝에 떨어지는 찰나의 시선 같은 표현의 미도 읽어내어야 감정이 더 풍부해질 터인데, 난 늘 잿밥에 관심이 더 많으니 드라마에 몰입되기가 힘들다. 즉, 내가 노는 사유의 세상과 영상의 속도가 늘 다르다. 그래서 난 영상보다는 책이 좋다. 눈에 보이는 선명함에서 느끼는 즐거움 보다 내 마음의 필터를 거친 상상의 즐거움이 더 크기도 하고 활자를 읽어야 밥을 꼭꼭 씹어 먹듯 나의 사유가 체하지 않는 느낌이 들기도 해서다.
그런 내가 요즘 습관이 하나 더 생겼다. 나의 어여쁜 생각들을 기록하는 것. 떠다니는 활자를 내 사유의 법칙으로 붙잡는 것이 읽기의 영역이었다면, 내 안의 잉태된 나의 글자를 분만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꺼내놓는 것이 쓰기의 영역. 참 이상하게도 , 내 멋있는 사유가 활자로 바뀌면 왜 초라해지는 건지 억울함조차 내 사유에게 물어본다. 이 사유의 물음은 언제쯤 끝이 날까? 그렇게 매일 사냥하듯 활자를 낚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