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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윤 Sep 04. 2024

통증이 주는 고마움


올해 2월부터 시작된  나의 오른쪽 어깨 통증의 치료가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정형외과 소견으로는 나의 회전근개에 석회가 있고 그로 인한 염증으로 통증이 동반되고 있기 때문에 물리치료와 체외 충격파 치료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세 군대의 정형외과를 다니다 마침내 한 군데 정형외과에 정착하게 되었고, 그 병원에서만 4개월 정도의 치료를 했었다. 이 병원 저 병원 다녀보아도 딱히 다른 처방이 있지 않았기에 꾸준함이 답인가 보다 하고 지속적인 치료를 받아왔으나, 통증의 범위만 달라지고  딱히 치유가 된다는 느낌이 없어서 결국 한방병원 치료로 바꾸게 되었다.  


너무 다행인 것은 한의원의 단 세 차례 치료로 통증의 반 이상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아직 완치된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의 통증의 완화의 속도와는 완전 차원이 달라서 이곳에서 치료를 조금 더 하면 완벽히 나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 동시에 그동안 체외충격파의 강력한 아픔을 이 질병을 낫기 위해서 참아왔는데, 결국 낫지도 못하고 내가 시간낭비, 돈 낭비, 체력낭비를 했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 어깨에서 시작된 통증이 승모근을 타고 머리까지 신경이 눌려 매일  두통에 시달렸고,  가슴근육, 등근육까지 오른쪽 상반신 전체가 아팠기에 삶 자체가 무기력해졌다. 오른팔로 가방 들기는커녕 핸들을 돌리는 것도 힘들 정도로 활동에 제약이 많았는데, 무의식적으로 팔을 쓰게 될 때마다 통증이 신경을 계속 괴롭혔고, 그러다 보니 사소한 것에도 원래 예민한 성격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이렇게 계속 병원에 다녀봐야 몸이 낫질 않겠다는 생각에,  믿져야 본전이다 하는 마음으로 한의원을 방문한 것이었다. 첫날 침을 맞고 추나요법에 운동치료까지 하고 온 후 온몸이 무겁고 특히 어깨 쪽이 열감이 많이 나고 아파서 '이거 큰일 났다'는 공포가 몰려왔다. 저녁에 있었던 수업을 모두 취소하고 억지로 누워서 잠을 청했다. 안 맞던 침을 맞아서인지 아니면 약침의 효과가 커서인지 생각보다 금방 잠이 들었고 새벽녘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데 전날 저녁만큼 아프진 없었지만 역시나 별 차도가 없었다. 한의원 원장님이 3일 연속으로 병원에 오라고 하셨기에 '그래, 너 말 대로 안되면 너도 아웃이야!'라는 마음의 오기로 다시 한의원에 오전 일찍 방문했다. 첫날과 똑같은 치료를 받고 나왔는데, '어라?' 나도 모르게 오른팔로 가방을 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 신기해서 가방을 든 채로 팔을 올려보았는데, 역시나 얼마 못 올리고 통증이 있었지만 분명 엄청난 치료의 효과를 느낄 수 있었다. 그날 저녁은 전날처럼 온몸에 열감이나 몸살 같은 증상도 없었고 어깨가 훨씬 가벼워졌으며 매일밤 괴롭히던 두통도 찾아오지 않았다.

3일째 되는 날, 난 이 병원의 예찬론자가 되었다. 단 세 번만으로 내 오른팔의 활용성을 50% 이상 올려준 병원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원장님이 물론 실력이 있으셔서 나의 통증이 호전되어 그렇겠지만, 간호사들, 운동치료사들의 서비스 자체도 아주 만족감을 주었기에 더욱 치료를 적극적으로 받고 싶어졌다. 


아픈 팔이 나을수록 생활에 활기가 돌기 시작한다. 아침에 눈뜨면 일어날 때부터 통증의 압박으로 침대에 더 누워있기 일쑤였는데, 우선 아프지 않으니 다시 하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그동안 게을리했던 아침운동도 다시 하고,  미뤄놓았던 창고정리도 하면서 원래의 루틴대로 다시 돌아오는 중이다.  그동안 하지 못해 미뤄둔 일을 눈으로 보는 스트레스도 줄어들고  나의 일상을 맞이하면서 다시 감사를 느끼게 된다. 무기력한 생활이 없었더라면 이런 사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내가 깨달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새삼스레 그간의 '통증'에 고마움이 생긴다. 그래서 인생의 고난은 행복이 오기 전에 거치는 것인가 보다. 매일 행복함만 반복된다면 우리는 그 행복의 단어를 무기력으로 다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더 인플루언서'라는 콘텐츠를 보면서  무플이나 무관심보다는 '악플이나 싫어요'를 차라리 받는 것이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것이다라는 그들의 프로의식을 새삼 높이 평가하게 된다. 내 삶 속에서 '좋아요'만 신경 쓰며 추구하는 삶은 살지는 않았는지? '나빠요'보다는 차라리 '무관심'에 그냥 일상을 가볍게 여기지는 않는지? 내 인생의 '싫어요'를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더욱 내 삶에 깊이 관여하는 삶이 오히려 더욱 내 인생에 영향력을 주는 스스로의 인플루언서가 되는 길이라는 진리를 보게 되었다. 나의 몸 또한 '통증'이 있기 전 내 몸에 감사하는 법을 몰랐던 나에게, 아픔이 다녀감으로써 더욱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것처럼 , '통증'과 '아픔'은 누구에게나 성장과 통찰을 깨우치게 하는 큰 고마움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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