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오전 출근의 삶이 주어졌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내 직업이기에 나의 업무는 아이들이 학교를 끝난 후부터 시작되므로 오전은 항상 루틴이 정해져 있었다. 사전에 준비된 생각 없이 빠른 추진력으로 시작된 새로운 회사의 출근으로 인해 나의 정교했던 오전루틴이 사라졌다. 어수선한 일주일을 보낸 후 내가 느낀 건, 시간을 알뜰히 사용하기 위해 만든 루틴들에 의해 오히려 내가 통제를 당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행위를 하지 않은 것 자체만으로 내 하루가 몹시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 루틴들은 하루를 보내는 데에 필요한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단순히 그 행동을 반복하면서 혼자만이 느끼는 만족감과 안도감이 아주 큰 부분을 차지했다. 그리고 그 행동들은 의식을 거치지 않고 그냥 하루를 내가 살기 위한 정신적 만족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시간이 줄어들었으니 그 루틴들을 24시간 안에 차곡차곡 넣어두려다 든 생각은, 의식하지 않는 행동에 대한 반성이었다. 파워 J인 성격에 30분 정도 틈이 있으면 무얼 자꾸 채워 넣으려는 성향이 강한데 더 이상 물리적인 시간에 반응하는 습관을 버려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하는 독서는 '왜?' 하는지, 만보 걷기는 '왜?' 하는지, 글쓰기는 '왜?'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하기가 힘들었다. 그냥 나는 책을 읽는 사람이고, 글을 쓰는 사람이고, 만보 걷기를 하면서 '멍'을 때리는 사람이다. 그런데, 글을 쓰는 것을 제외하고는 책 또한 '멍'하게 읽고 있는 나를 간간히 발견한다. 의식하지 않는 다독의 나쁜 습관이 아주 어릴 때부터 몸에 배어있다. 그걸 '활자중독'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진짜 내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부터 고민하게 된다. 하루 중 상당 부분 차지하는 나의 '독서시간'을 과감히 줄여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책을 단순히 많이 읽는 것에 대한 자기 만족감과 1년간 읽은 책의 리스트를 보며 혼자 열심히 살았다는 명분으로 '독서'가 희생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이어트를 결심하면서 의식하지 않고 음식을 먹는 나의 습관을 고치기 위해 먹는 것을 통제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의식'하지 않고 행동하는 모든 습관들을 함께 의식하게 되었다. 음식도 하나하나 식감을 음미하고 맛과 향 모든 것을 의식적으로 느끼며 먹게 되면, 천천히 먹게 되면서 몸도 더 많은 것을 흡수한다. 그러다 보면 적은 양으로도 포만감을 느끼게 되고 그런 몸에 집중할수록 자연스레 폭식을 벗어난다. 밥 먹는 시간조차 아깝다고 생각하여 혼자 밥 먹을 땐 책을 읽으면서 밥을 먹는 내 모습이 마치 수업시간엔 자고 자율학습시간에 인강을 보는 미련한 역행자의 삶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렇듯 내가 시간을 아껴 쓴다고 행동한 것들이 오히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한 원인이 되었다. 시간이 많을 땐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을 시간에 강박이 생기니 문제점들이 보인다. 그래서 일을 열심히 잘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인가 보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의식'을 하고 하는 행위에는 더 큰 에너지가 실리게 마련이다. 아이들과 놀아줄 때에도 '그 순간만큼은 몰입하자'하고 의식을 가지고 놀아주면 10분 정도의 짧은 시간에도 아이들이 느끼는 행복의 차이는 매우 크다. 동물도 마찬가지이다. 눈을 맞추고 집중해서 놀아주면 강아지의 눈빛이 달라진다. 결국 의식은 에너지이다. 같은 양의 시간을 쓰더라도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그것을 의식하느냐 안 하느냐부터 시작된다. 내가 하는 행동의 당위성을 갖는 것. 단순히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한 시간배분을 넘어서 짧은 시간을 하더라도 온 에너지를 모아서 해내는 행동 하나가 나의 발전에 더욱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감시간에 쫓겨 일을 하게 되면 평소의 능력보다 많이 쏟아내게 되는 것처럼 어느 정도의 시간의 강박도 때로는 필요한 게 인생일 것이다. 느림과 빠름의 속도 또한 우리의 인생 안에서 반복되듯이 어떤 속도에서도 흔들림 없는 자기만의 컨트롤 방법을 갖추는 것. 지금 나에게 필요한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