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 주는 사랑과 위로

- 심야식당-

by Sophie

나는 먹을 복이 많은 사람이다. 요리를 잘하시는 엄마 덕분에, 상차림이나 설거지 정도만 해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 후에는 요리를 배우려고 노력해 보았다. 하지만 친절한 룸메이트는 당근을 썰고 있던 나의 서투른 칼질을 보고 부엌 출입 금지령을 내렸다. 덕분에 그녀와 살았던 반년동안, 장을 보고 부엌을 정리하는 수고만으로도 여전히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나에게, 혼자 끼니를 챙겨야 할 때가 오고야 말았다. 요리하는 모습이 엄마를 닮았던 그녀는 “너는 꼭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랑 결혼해!”라고 웃지 못할 조언을 남기고 이사를 갔다. 하지만 나는 요리를 잘하는 사람을 찾는 대신, 맛있기로 유명한 태국 음식점에 일하기로 했다. 일은 힘들었지만 직원에게 다양한 종류의 테이크어웨이 음식을 제공해 주는 것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일이 익숙해질 무렵부터는 맛있게 먹던 그 음식을 더 이상 먹지 않았다. 차가워진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혼자 꾸역꾸역 먹는 일이 노동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대신 잠을 더 잤다. 그 편이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됐다. 하지만 따듯한 밥을 나눠먹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커져만 갔다. 배고픔을 외면하고 잠을 청할 때면, 내가 한 밥을 맛있게 먹어줄 가족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배고픔보다 감정적 허기짐이 컸던 시절이었다.


영화 ‘심야식당’에는 이와 비슷한 감정적 허기짐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식당이 운영되는 시간은 밤 12시부터 오전 7시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다. 그 시간, 한 여자가 식당으로 들어와 나폴리 탄을 주문한다. 주문을 받은 마스터가 요리를 하는 동안 여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녀는 결혼한 남자의 애인이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본처에게 모든 재산을 남기고 죽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내연녀 딱지만 붙여놓고 떠난 그 남자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마스터는 이 모든 이야기를 조용히 들으며, 나폴리 탄을 요리해 그녀 앞에 내놓는다. 그녀는 나폴리 탄을 먹으면서 이 음식이야 말로 자신의 허영심을 채울 적당한 요리라고 생각한다. 자신과 잘 어울리는 그 음식을 먹으며 그녀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릇을 비운 그녀가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떠나고 다른 손님이 들어온다. 마스터는 그녀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다른 손님을 위해 또 다른 요리를 한다. 야심한 시각임에도 이 식당에는 자신을 위로해 줄 음식을 먹기 위한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그들이 계속해서 이 식당을 찾는 것은, 자신만을 위한 요리를 해주는 마스터가 엄마 같은 존재였기 때문일 것이다. 나 또한 엄마가 해준 음식을 먹고 마음을 키웠던 때가 많았다. 시험을 잘 보지 못했을 때, 친구와 싸우고 집에 돌아올 때면 나는 엄마부터 찾았다. 내가 잔뜩 억양 된 목소리로 속상하고 화난 마음을 풀어놓으면, 엄마는 맛있게 끓인 김치찌개를 국그릇에 담아주며 많이 먹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김치찌개 밥을 배불리 먹고 나면 시험점수가 나쁜 것도, 친구에게 놀림받은 일도 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어떻게 이렇게 새콤달콤한 맛으로 내 입맛도 마음도 녹이는지 신기하기도 했다. 성인이 된 지금도 나는 세상이 두렵고 힘에 부칠 때마다 엄마가 해 준 밥을 먹으러 간다.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서, 엄마가 해준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어리광을 부리다 보면 다시 세상을 살아갈 힘이 생긴다.


나에게 엄마는 부엌에 있으면 무엇이든 만들어 내는 분이셨다. 기쁨도 슬픔도 삶의 희망도 모두 엄마의 요리 안에서 나와서 우리 가족을 살게 했다. 그런 엄마가 좋아서 나도 결혼하면 가족을 위해 따듯한 요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가 부린 요리의 마법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칼질은 아무리 노력해도 부엌금지령을 받았던 그때보다 나아지지 않았다. 음식에 맛을 내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레시피만 보고서는 고춧가루며 소금, 다양한 종류의 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한 꼬집 의 기준 또한 미스터리해서, 요리의 세계는 나에게 넘을 수 없는 커다란 산처럼 느껴졌다. 그런데도 나는 아이의 이유식만큼은 직접 만들었다. 블로그를 뒤져가며 온갖 레시피를 수집했고, 매일같이 장을 보러 다녔다. 그리고 서툰 칼질로 하루에 몇 시간을 부엌에 서서 야채와 고기를 다지고 볶았다. 펜으로 글씨를 쓸 줄 만 알았던 내가 프라이팬으로 요리를 하다니!. 나도 부엌에 서 있는 내 모습이 어색했으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놀랄 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엄마라면 딸을 위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만든 이유식을 먹어야만 아이가 내 작은 키를 물려받지 않을 수 있고, 아프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마음으로 아이가 이유식을 마칠 때까지 성실한 엄마가 되어 그 일을 계속했다. 힘들었지만, 아이가 그 작은 입으로 내가 만든 이유식을 한 입 두 입 받아먹을 때 정말 기뻤다. 어른들이 ‘내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고 하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렇게 고생해서 밥 해 먹여 키운 딸이, 벌써 엄마의 키를 따라잡은 커다란 초등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먹지 않아도 배부른 엄마로 살면서, 딸에게 먹일 음식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결혼생활 동안 남편의 밥을 챙겨준 기억이 별로 없다. 딸이 좋아하는 카레나 오므라이스 내가 좋아하는 김치찌개 같은 요리는 가끔씩 했지만, 남편만을 위한 요리는 거의 하지 않았다. 아마 생일날 미역국을 끓여준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변명을 하자면 남편은 퇴근시간이 늦었다. 아이와 내가 저녁을 다 먹고 치우고 나서야 집에 들어왔기 때문에 함께 저녁을 먹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남편은 대부분 혼자서 밥을 챙겨 먹었다. 어떨 때는 냉장고에 남은 재료들로 정채불명의 음식을 만들어먹기도 하고, 라면도 자주 먹었다. 아침도 마찬가지였다. 아침잠이 유난히 많은 나는 출근하는 남편의 아침상을 차릴 정도로 부지런하지 못했다. 내가 “아침밥 차려줄까?” 물으면 원래 아침을 안 먹는다고 해서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런데 이혼하고서야 남편은 아침밥을 먹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와 아이가 깨지 않게 조용히 바나나나 토스트에 우유를 먹고 가거나,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을 사 먹기도 했다는 것을 같이 살 때는 몰랐다. 결혼하면 밥은 꼭 여자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남편의 식사에 대해 무심했다는 사실은 아직도 미안함과 후회로 남아있다.


음식에 무심했던 우리 부부에게는 그것에 대한 추억이 별로 없다. 그래도 떡볶이와 순대만큼은 함께 먹은 기억이 많다. 나는 입덧으로 음식을 잘 못 먹을 때도 떡볶이와 순대는 많이 먹었다. 그래서 남편은 수시로 나를 위해 그것들을 사다 날랐다. 그런 그가 있어 나는 여왕이 되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갓난쟁이를 키울 때도 내가 저녁도 제대로 못 먹었다고 하면 떡볶이와 순대를 사가지고 퇴근했다. 남편과 함께 매콤 달콤한 떡볶이와 빨간 국물에 순대를 찍어먹던 순간에는, 혼자 아이와 씨름하며 생긴 우울감이 다 사라지는 듯했다. 그 잠깐의 시간이, 정신없이 바쁘게만 살았던 우리가 잠시나마 사랑을 나눌 수 있던 순간이었다. 그래서 이혼한 지금도 그런 순간들은 행복했던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떡볶이와 순대를 함께 먹을 사람이 내 곁에 없다. 이걸 받아들이기까지는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아직도 떡볶이와 순대는 차마 혼자 먹을 용기가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 시간이 흐르면 나만의 심야식당을 발견할 것이다. 그때가 오면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은 당연히 떡볶이와 순대이다. 그것들을 먹으며 사람들에게 내 지난 결혼생활의 이야기와 , 그때 먹었던 떡볶이와 순대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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