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 -안녕 달-
우리 집의 취침시간은 밤 9시. 그 시간이 되면 잘 준비를 마친 아이는 무드 등을 켜놓은 침대에 눕는다. 나는 브람스 자장가를 틀어놓고 누워있는 아이의 다리를 주물러준다. 마사지를 해주는 동안 아이는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재잘거린다. 오늘 하루 감사했던 일까지 이야기를 마치고 나면, 아이를 안고 “ 00아 사랑해 잘 자”라고 하고 뽀뽀를 해준다. 아이는 그 후 몇 분을 더 내 품에 꼭 안겨 있다가 스르르 잠이 든다. 하루의 끝을 마무리하는 가장 달콤한 시간이다. 하지만 요즘은 이 시간이 마냥 행복하진 않다. 아이가 쉽게 잠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잠이 올 때 재우고 싶지만 그러면 12시를 넘기는 것이 다반사라서, 어쩔 수 없이 아이가 잠들 때까지 곁에 누워 수행에 시간을 보낸다. 그 시간이 나쁘지 않을 때도 있지만, 빨리 재우고 처리해야 할 일이 있는 날이면 슬며시 올라오는 짜증은 어쩔 수 없다. 어떤 날은 너무 힘들어서 잠을 들지 못하는 아이를 향해 화를 내고 혼자서 자책하기도 했다. 평화로웠던 잠자리가 전쟁터로 변하는 순간이다. 사실 아이가 처음부터 이렇게 잠들기 힘들어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갓난아이 때부터 수면교육에 공을 들인 덕분에, 다크 서클 없이 아이를 키웠다. 그런데 그렇게 잘 자던 아이가 잠들기 힘들어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이혼 후 얼마동안 내 마음은 안개가 뿌옇게 낀 것 같았다. 기분전환을 위해 집 청소도 하고 예능프로를 보면서 상념을 없애려고 해 보았지만 잠시뿐이었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답답해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아이를 재워놓고 밤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초가을, 뜨거웠던 밤공기가 제법 선선해서 걷기 좋은 날씨였다. 물 흐르는 소리와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걷고 있으면 마음도 편해지고 복잡했던 머릿속도 좀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도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걷고 오면 그나마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마음이 좀 풀릴 때까지 무작정 걷다가 집에 들어갔는데 집 앞 현관에서부터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허겁지겁 신발을 벗어던지고 들어갔더니 화장실 앞은 오줌으로 흥건했고 아이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어있었다.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엄마까지 없어진 줄 알았다며 더욱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를 안고 “괜찮아 , 괜찮아"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울지 않으려고 애썼다. 공포에 떨고 있었을 아이 앞에서 엄마가 눈물을 보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보다는 울고 있는 아이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 먼저였다. 절대로 너를 혼자 두는 일이 없을 거란 약속으로 겨우 아이를 재우고, 뜬눈으로 밤새 그 곁을 지켰다. 하지만 그날 이후 아이는 자다가도 수시로 더듬거리며 내가 옆에 있는지 확인했고, 거실로 나가는 문소리만 들려도 잠에서 깨서 ”엄마 어디가? “라고 묻기 시작했다. 아무리 현실이 무섭고 앞날이 막막해도 그런 아이를 두고 더 이상은 혼자서 밖으로 도망칠 수 없었다. 결국 걷기를 그만두고 아이와 함께 상담도 받고 여행도 다니며 헤어짐을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그 덕분에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지만 이별은 여전히 쉽게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로 남아 우리를 쉽게 잠들지 못하게 했다. 그때 집어든 책이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였다.
윤여림이 쓰고 안녕 달이 그린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는 이별에 아픈 우리들을 위한 처방전 같은 동화이다. 이 책의 화자는 헤어짐을 불안해하는 아이에게 잠깐 서로를 못 본다 하더라도 아무 일 없이 꼭 만난다고, 아무리 오랫동안 서로를 보지 못한다 해도 언젠가 우리는 꼭 만난다고 반복적으로 알려준다. 나는 이 이야기를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으면서 사람과 사랑에 대한 믿음이 삶에서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았다. 내가 엄마 품을 나와 진정한 독립했던 때는 공부하기 위해 호주로 떠났던 20대 초반이었다. 처음으로 엄마의 품을 떠나 혼자되었다는 두려움에, 울먹이며 보고 싶다고 전화한 딸에게, 엄마는 건강하게 공부 잘하고 방학 때 한국 오면 같이 여행 가자고 나를 다독여주셨다. 수화기 너머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는 바로 곁에서 나를 위로해 주는 것처럼 힘이 되었다. 아이를 떠나보내고 상심해 있을 때에도 엄마는 매일같이 찾아와 나를 살펴주셨다. 이혼한 후에도 나는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엄마를 찾았다. 그때마다 엄마는 반찬을 한가득 해서 오셨고, 집 청소까지 깨끗하게 해 주고 나서야 돌아가셨다. 이것 말고도 생각해 보면 필요할 때마다 엄마는 항상 내 곁에 계셨다. 온갖 세상풍파를 겪으며 비틀거릴 때마다 나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신 엄마가 있어서 나는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이제는 엄마에게 받았던 사랑을 딸에게 전해줄 차례이다. 딸과 나란히 침대에 누워 책을 읽어주면서 나의 목소리와 따듯한 글 그리고 예쁜 그림이 딸의 불안한 마음을 다독여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갑자기 자신을 떠나버린 아빠에 대한 원망, 엄마까지 자신을 떠나면 혼자가 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이 글로 위로받았으면 했다.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난다고 몇 번이고 아이에게 말해주는 글의 화자처럼 딸의 곁에는 언제나 내가 있다는 믿음을 주고 싶었다. 비록 내가 아이의 모든 시간을 함께 해 주지 못하더라도, 엄마가 나에게 그랬듯, 딸이 세상 밖에서 고되고 힘들 때 안전지대가 되어 주겠다고 약속해주고 싶었다. 이런 내 마음이 잘 전달돼서 딸이 안심하고 편하게 잠이 들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해서 이 책을 읽어줄 것 같다. 그리고 너는 언제나 엄마를 만날 수 있다는 걸 꼭 기억하라고 말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