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의 키스, 그리고 여자의 세 시기
중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빨간 장미꽃이 피기 시작하던 계절 나는 처음으로 어른이 되어가는 몸의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다. 배가 아픈 것은 그렇다 쳐도 붉게 물든 바지는 나를 적잖이 당황하게 만들었다. 여자가 된다는 것이 번잡스럽고 창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우울한 목소리로 엄마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내가 느낀 감정과는 반대로 엄마는 “우리 딸 이제 다 컸네!!”라고 웃는 목소리로 축하해 주셨다. 엄마에게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아빠는 예쁜 목걸이를 선물해 주셨다. 예쁘게 반짝이는 목걸이를 보고 우울해진 기분이 사라지긴 했지만 부모님의 축하가 어리둥절했다. 몸은 어른이 될 준비를 마쳤다지만 아직 혼자서는 목걸이를 목에 거는 것도 쉽지 않고 어색했다. 몸이 자라는 속도를 마음이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어른과 아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혼란스러운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 후 대학생이 되고 나서 비로소 첫 연애를 시작했다. 연애는 중학생 때 겪었던 몸의 변화와는 또 다른 변화를 느끼게 해 주었다. 특히나 첫 키스의 짜릿함은 이성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느낌인지를 알게 해 주었다. 하지만 사랑하면서 생기는 뜨거운 욕망과 그에 따르는 쾌락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아무 준비 없이 빠져든 연애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그때 나는 모든 것을 뜨겁게 태워버릴 듯 한 한여름 뜨거운 뙤약볕 아래 서있었다. 발갛게 피부가 타는 줄도 모르고 그저 뻘뻘 땀을 흘리면서 누구보다 뜨겁게 청춘의 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몇 번의 연애를 거쳐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버진 로드를 밟았다. 주례사가 “00를 남편으로 맞이하여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함께하겠습니까?”라는 말에 씩씩하게 네라고 대답했다. 아마 내 앞에 까만 턱시도를 입고 서 있던 남자가 너무 멋있어 보여서 저절로 용기가 났던 것 같다. 더구나 그때 난 아직 결혼이 뭔지 잘 몰랐다. 웨딩드레스와 신부화장 때문에 나는 누가 봐도 결혼하는 신부였지만 식이 끝날 때 까지도 결혼식 후에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구체적은 그림이 없었다. 그때 내 뱃속에는 4개월 된 아이도 자라고 있었는데도 단지 행복하게 살 거라는 기대만 있을 뿐이었다. 남편도 태어날 아이도 아직 나에게는 미지의 세계였고 그 세계에는 드라마나 소설에 나오는 아름다운 장면들만 있었다. 하지만 막상 내 앞에 닥친 결혼생활은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특히 내 인생 깊숙이 들어온 남편과 아이라는 존재는 여자로서 나를 다시 한번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게 했다. 한 집에 살기 시작하면서 남편과 나는 마치 서로 처음 만난 사람처럼 모르는 게 많았다. 남편은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는데 나는 늦게 자는 대신 아침잠이 많은 것, 나는 작은 기척에도 예민해서 쉽게 잠이 들지 못하는데 남편은 머리만 대면 코를 고는 것, 혼자 쉴 때 남편은 컴퓨터 게임 나는 영화를 보는 걸 좋아하는 것 등등 사소한 습관부터 경제관념이나 육아관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까지 서로 잘 몰랐던 점이 많았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변화시키면서 함께 사는 법을 터득해 갔다. 그렇게 좀 더 깊이 서로의 삶을 공유하면서 헤어지기 아쉬워하던 연애를 할 때와는 결이 다른 사랑을 하는 법을 배웠다. 아이도 내 삶을 많이 바꾸어놓았다. 잠이 많던 내가 아이가 울 때마다 벌떡 일어나 기저귀를 갈고 수유를 하고. 열이 나는 아이를 안고 응급실에 가서 아이를 간호하며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아이를 위한 이런 희생들은 내가 엄마가 아니었다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엄마라고 첫 옹알이를 하던 때. 내 손을 잡고 첫걸음마를 떼던 순간. 그리고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어 처음 학교에 등교한 날. 그리고 처음으로 치른 학급선거에서 부회장이 되어왔다고 자랑하던 모습들. 이런 순간들은 나의 힘듦을 보상해 주고도 남을 큰 기쁨이었다. 그렇게 나의 세계는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이전보다 더 다채로운 이야기로 채워졌다. 그 이야기는 때로는 눈물 콧물 다 쏟게 만드는 비극이 되기도 했고 때로는 배꼽 빠지게 웃고 또 누워서도 생각하며 피식피식 웃음 짓는 희극이 되기도 했다.
클림트는 여자로서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이런 이야기를 그림 두 점으로 인상 깊게 보여준 작가이다. 그래서 우리 집 거실 벽 한 면에는 내가 좋아하는 두 작품인 키스와 엄마와 아기라는 작품이 걸려있다. ‘키스’라는 작품은 우리에게 너무 잘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눈부실만큼 화려한 황금색 색채를 써서, 환상적이면서도 기묘한 두 남녀의 키스 장면을 그리고 있다. 특히나 기이한 모양으로 두 사람의 몸이 하나처럼 표현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눈을 감은 여자의 표정과 그 여자의 얼굴에 감춰져 있지만 그 얼굴을 감싸고 있는 손끝에서 느껴지는 남자의 욕망은, 키스하는 장면 하나로도 여느 노골적인 성적 묘사 못지않은 에로틱함을 느끼게 해 준다. 나는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 황홀했던 첫 키스의 전율이 떠올랐다. 세상은 멈춘 것 같고 오직 내 앞에 있는 그 사람만 내 눈 안에 가득 들어왔다. 그리고 마침내 입술이 닿았을 때 느껴졌던 짜릿한 전율과 뜨거움이 작품 속에 녹아들어 있었다. 키스의 순간 뿜어져 나오는 젊음의 열정과 광기는 화폭 속에서도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듯했다.
여자의 세 시기라는 그림은 키스에 비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그림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그림은 그림의 일부인 엄마와 아기인데, 산후조리원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그림이기도 하다. 클림트는 어머니의 죽음과 정신질환에 시달리던 누이를 보고 여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고민 끝에 탄생한 그림이 이 그림이다. 이 그림에는 세 명의 여자가 차례로 등장한다. 그림의 제일 오른쪽에 어린 여자아이를 시작으로 중간에 그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가 있고 마지막에 늙은 여자가 서 있다. 그런데 노인을 제외한 아이와 여자의 부분만 보면 아이가 엄마에게 안겨있는 모습이기 때문에 이 부분만 놓고 보면 마치 성모 마리아와 아기예수 그림처럼 신비롭고 따듯한 그림으로 보인다. 아마 여자로서, 화려하진 않지만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이런 그림이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여자의 가슴은 에로틱하다기보다는 성스러운 느낌이 들고, 그 여자의 품에 안겨있는 아이 때문인지 몰라도 나체임에도 따듯함이 느껴진다. 나는 이 벽에 걸린 이 그림을 볼 때면 아이에 대한 사랑이 가슴에 몽글몽글 피어나는 것 같아서, 가끔 육아에 지칠 때마다 그림을 보곤 했다. 하지만 제일 왼쪽에 그려진 노인이 된 여자의 나체를 그린 부분만 따로 놓고 보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깡마른 손과 발, 휜 허리, 축 처져있는 가슴 그리고 볼록 나온 배로 표현된 여자의 나체는 늙음을 다소 잔인하게 바라보고 있는 듯 한 작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나이 40이 되고 혼자된 나는 이 나이 든 여자의 그림에서 공포를 느꼈다. 임신과 출산을 하고 나이가 들면서 볼록 나온 배 그리고 이제는 안티에이징 제품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은 눈가의 주름, 흰머리가 중간중간 보이는 푸석한 머리카락은 거울 앞에 나를 종종 슬프게 했다. 지금도 이런데 조금 더 늙으면 그 충격은 어떨까 생각하며 이 그림을 보니 눈물이 날 것 같다. 아직 늙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 같다.
사랑과 결혼 그리고 임신과 출산을 하면서 여자의 세 시기의 그림 중 일부의 삶을 살아냈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아제 곧 10대의 문턱을 들어설 딸을 키워야 하고, 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나는 아직 채워가야 할 이야기가 많다. 그래서 내가 여자로서 풀어내야 할 이야기가 조금은 더 아름다운 모습이었으면 하는 욕심이 든다. 그렇게 최대한 천천히 늙어가며 아름답게 살다가, 마침내 마지막 시기가 왔을 때 그 아름다움이 다 하더라도 조금은 편안한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볼록 나온 배도 하얗게 샌 머리와 쭈글쭈글해진 피부도 세월이 준 아름다운 훈장으로 여길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