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결혼 전 나는 선생님으로 불렸다. 칠판 앞에 서면 아이들이 뿜어내는 에너지에 없던 힘도 생겨서 좋았고 거기에서 내 삶의 의미를 찾았다. 선생님이라는 모범적이고 학구적인 이미지도 좋았다. 그래서 밤늦게 까지 수업이 있어도, 시험기간에는 주말까지 반납해야 해도 일에 푹 빠져 일 중독자처럼 지냈다. 그럼에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당연히 결혼해도 일은 계속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결혼 준비 중에 아이가 생겼다. 임신한 줄도 모르고 힘든 걸 참아가며 무리해서 일하다가 배가 뭉치고 출혈이 생겨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 후 뜻하지 않게 전업주부가 되어 가르치는 일 대신 집안 살림을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빨래며 밥이며 청소 같은 건 거의 대부분 엄마가 해주셨고 내가 집안일을 했던 건 시간 나서 집에 있을 때뿐이었기 때문에 결혼 전까지 내가 했던 건 청소기를 돌리고 바닥을 닦는 가장 쉽고 기본적인 것들 뿐이었다. 유학생활 중에는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살았지만 쉐어 하우스에서 살거나 홈스테이를 했었기 때문에 청소도 내 방 하나 하면 되었고, 식사는 일하던 레스토랑에서 제공되는 음식을 먹었다. 그도 안 되면 집 앞만 나가도 맛있는 것들을 사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요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혼자 사는 것이 그리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 살림을 시작한 나는 삼인 가족의 단출한 살림이었음에도 시시때때로 우렁각시가 좀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우렁각시 대신 빨래는 세탁기와 건조기 설거지는 식기세척기 청소는 청소기의 도움을 받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나마 세탁기 버튼 한번 안 눌러보고 결혼했던 친구가 처음 해본 집안일들이 힘들다고 하소연하면 나는 그이보다는 조금 낫다고 혼자 속으로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그 정도로 집안일의 세계는 내가 알던 것보다 그 범위가 무궁무진했다. 아이가 신생아 때는 수시로 모유수유를 하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또 목욕시키고 옷도 갈아입혀줘야 했고, 조금씩 크기 시작하면서는 이유식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주방에서 2~3시간을 있어야 하는 적도 있었다. 쉽게 더러워지는 내 옷과 아이 옷들 때문에 빨래를 거의 매일 하다시피 했고 아이가 기어 다니기 때문에 바닥도 수시로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질을 해야 했다. 또 정수기도 없어서 페트병의 물을 사 먹고 종종 배달음식도 먹다 보니 분리수거 한번 하는 것도 그 양이 많았다. 욕실청소는 제일 하기 싫어서 항상 제일 미루다 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변기 뚜껑의 노란 얼룩에 나도 모르게 헛구역질까지 하며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욕실청소를 했다. 그러면서 문득 내가 결국 이런 거 하려고 그렇게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머리 아프게 공부했었나 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지금까지 나열된 것들은 그나마 제대로 집안일했다고 말할만한 일들만 얘기한 것이지만, 집안일을 해본 사람들은 해도 티도 안 나면서 안 하면 집안꼴이 이게 뭔가 싶게 하는 자질구레한 집안일들이 얼마나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지 알 것이다. 그래도 전업주부인 나에게 집안일이 내 직업이나 마찬가지니 하기 싫어도, 힘들어도, 잘하지 못해도 그저 열심히 했다. 힘들다 느껴질 때는 아이가 커가는 것을 보면서 엄마로서의 보람을 느끼려고 노력했고 깔끔하게 청소된 집을 보면서 내 스스로에게 청소하느라 수고했다고 집이 너무 깨끗해졌다고 스스로에게 칭찬도 해보았다.
그날도 주말이라 늦은 아침식사를 마치고 빨래는 돌리려 하고 있을 때였다. 빨래가 되는 동안에는 청소기도 돌리고 나서 오랜만에 아이를 놀이터에 데려가 모래놀이도 하고 놀다가 들어와서 점심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머릿속에 해야 할 일들의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남편이 친구 좀 만나고 오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데 갑자기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 나가면 다시 들어오지 마!” 하고 소리를 지르며 씩씩거렸다. 남편이 일이 바쁘거나 회사 사람들과 회식을 한다고 밤늦게 들어오는 건 오히려 안쓰럽고 살짝 고마운 마음도 들었지만 이건 아니었다. 힘든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이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 동안 나는 상사 대신 아이의 요구를 하루 종일 들어주느라 녹초가 되었고, 고기에 술을 마시면서 회식 자리를 지키는 동안 나는 저녁을 제대로 챙겨 먹을 시간도 없어서 냉동만두를 튀겨 먹었다. 그런데 유일하게 그나마 내가 좀 숨을 쉴 수 있는 주말에 아이와 단 둘이 집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갑자기 참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단순히 육아와 집안일이 힘들어서 친구를 만나러 나가는 남편이 미운 문제가 아니었다. 딸만 둘을 낳은 나의 엄마는 너는 엄마처럼 솥뚜껑 운전사는 되지 말아라 하면서 공부하는 것에는 아낌없이 투자해 주셨다. 그렇게 귀한 딸로 배울 만큼 배운 내가 단지 여자이고 엄마라는 이유로 밥순이로 전락하고 집이나 지키며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는 여자가 되었다는 것이 못내 억울했다. 더구나 열심히 공부해서 멋지게 니 삶을 살아보라고 했던 엄마조차 가끔 집에 들러 부족한 내 살림솜씨를 보면서 결혼했는데 찌개 하나 제대로 끓이는 게 없다고 걱정 아닌 걱정을 하시고, 나보다 나이가 어린 남편조차 아이는 당연히 엄마 키워야 하고 남자는 돈을 버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이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알지 못했던 여자를 대하는 남편의 모습은 계속되었고, 잠자리를 거부하는 것도 이혼사유가 된다는 말로, 여자는 남편이 요구하면 원하지 않아도 잠자리 요구를 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피력함으로써 나를 경악하게 했다.
나는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면서, 엄마로서 어자로써의 삶이 어떠해야 할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는 여자이고 엄마이니까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해야 한다는 게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엄마가 아이의 주 양육자가 되어야 아이가 바르게 자란다고 생각하는 인식은 그다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스타 셰프 중에는 남자가 많지만 아직도 식구의 저녁메뉴를 걱정하는 것은 대부분이 여자의 몫이고 학원 앞에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대부분 여성이다. 동시에 집에서 살림하고 육아하는 여자를 보는 시선 또한 곱지 않다. 고학력의 여성이 많아져서인지 결혼한 여성이 남편의 수입에만 의존하고 있으면 능력 없는 여자로 치부된다. 그렇다면 차라리 슈퍼우먼이 돼야 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기관에 맡기고 일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악착같이 세탁기를 돌리고 청소를 했다. 그러는 동안 분노는 차곡차곡 쌓였다. 쌓여있는 빨래더미를 노려보며 김지영 씨처럼 빨래는 세탁기에 저절로 들어가지 않는다고 외치고 싶었다. 물론 주위를 둘러보면 일하는 아내 위해 먼저 퇴근한 남편이 저녁상을 차리고, 주말이면 아내는 대학원 공부를 하고 대신 남편이 아이의 육아를 도맡아 하는 집도 점점 많이 보이고는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워킹 맘들에게 그런 얘기는 남의 집 이야기일 뿐이다. 회사에 어떤 직장동료가 그런 꿈같은 이야기를 하면 부러워하며 집에 와서 괜히 남편이게 신경질을 내고는 일을 그만두고 살림만 할까 고민한다. 나 역시 결혼 후 하던 일을 그만두고 그렇게 싫어하던 부엌에 서서 잘하지도 못하는 칼질을 하느라 하루를 보내면서는 일하는 여자들이 부러워했다. 하지만 일을 하고 나서는 일과 살림 육아까지 병행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집안일이 힘들어서 살림만 하는 여자들을 부러워했다. 그렇게 끊임없이 다른 여자들을 부러워해야 했고 그것은 남편에 대한 불만과 원망으로 이어졌었다. 그럼 내 딸은 끊임없이 다른 여자들의 삶을 부러워만 했던 내 삶을 그대로 이어받지 않게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하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내로서의 삶이 사라지고 워킹맘으로 싱글맘으로써 삶을 살아가는 내가 딸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야 딸도 한 인간으로서의 삶과 여자로서 혹은 엄마가 된다면 엄마로서의 삶을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고민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