뺄 건 빼고 채울 건 채우고

곤도마리에의 '정리의 기술'

by Sophie

30대 이전 나의 삶은 많은 것을 경험하는 것에 집중했던 삶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경영학과에 입학해서 영문학과를 복수 전공하고 영어강사로 일했다. 그러다 20대 중반 뒤늦게 유학을 가서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유치원 선생님으로 일했다. 그렇게 커리어를 쌓아 가는 중간에 시간 날 때마다 판매업과 서비스 관련 일도 했고, 지금은 중소기업에서 관리직으로 일하고 있으니 내가 가지고 있는 학위로 할 수 있는 제법 다양한 일을 한 것 같다. 그러면서 인간관계의 폭도 넓어졌다. 다양한 분야에서 대학생활과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만나는 사람의 폭이 넓어서, 어린아이부터 시작해 60대 어른까지도 친구였다. 게다가 국적도 한국을 비롯하여 인도 중국 일본에서부터 파파뉴기니까지 참 다양했다.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 여권에 찍힌 도장의 개수도 늘어갔다. 방랑벽이 있어서 국내도 많이 다녔지만 특히 해외여행은 가고 싶은 나라와 도시들을 버켓리스트에 적어놓고 하나씩 다녀보는 것을 목표로 삼았을 정도이다. 그중에는 아직도 가보지 못한 나라들이 많지만 일본 홍콩 태국 싱가포르 등 많은 나라들을 다녔다.


서른 살이 되고서는 결혼해서 내 집이 생겼고 그 집을 채우고 가꾸는데 많은 돈과 시간을 들였다. 혼자 살 때는 옷 몇 벌과 신발 3켤레 책 몇 가지 정도로 5평짜리 내 방을 채우는 것이 전부였다면 결혼 후에는 그것의 스케일이 소파 티비 세탁기 등으로 커졌고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식구가 늘면서 집안 살림 또한 몇 배로 늘어났다. 조그만 신생아에게 뭐 그렇게 필요한 게 많은지 유모차며, 아기침대, 분유포트 모빌 등 아이의 용품이 집을 가득 채웠고, 그것들은 아이가 자라는 속도만큼이나 금방 버려지고 다른 새로운 것들로 채워졌다. 게다가 육아를 하는 동안 받는 스트레스를 쇼핑으로 풀기 시작하면서 하루에도 몇 개씩 오는 자질구레한 택배들은 급기야 방을 창고로 만들었다. 심각성을 자각해서 자제하려고 노력하기도 했지만, 무언가 필요하거나 갖고 싶다고 생각되는 물건을 바로바로 사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가끔 내가 스마트폰의 저주에 걸린 건 아닌가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그래서인지 아이러니하게도 버는 돈의 액수도 늘어났지만 그만큼 소비하는 것으로 쓰는 액수도 커져서 통장에 잔고는 그리 늘지 않았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늘어났으면 하는 통장 잔고 대신 체중게이 찍히는 내 몸무게의 숫자는 늘어만 갔다. 하루 종일 몸도 마음도 분주하게 움직이다 겨우 아이를 재우고 나면 그때서야 참았던 식욕이 폭발했다 그러면 참지 못하고 떡볶이며 닭발 같은 자극적인 야식으로 하루의 스트레스와 허기를 풀어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살이 쪄서 맞는 옷이 없어지자 즐겨 입던 원피스나 미니스커트 대신 허리가 잘 늘어나는 밴딩 바지에 품이 넉넉한 티셔츠로 옷장을 채워갔다. 거울을 볼 때마다 풍선처럼 부푼 배 때문에 불만이 쌓여갔고, 그러면 또 쇼핑과 먹는 걸로 주린 마음을 채우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이혼은 지금껏 채우려고 애쓰며 살았던 이런 나의 삶에 제동을 걸었다.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 그랬다. 남편으로 채워졌던 시간과 공간은 생각보다 내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남편이 떠나고 집을 정리하면서 나는 남편이 서재로 썼던 턴 빈 방을 보는 것이 힘들었다. 그리고 남편과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야식을 먹고 영화를 보던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댔다. 특히 아이가 잠들고 나서 혼자 유난히 넓어 보이는 거실에 앉아 빨래를 개다 보면 조용한 적막이 너무 싫어서 티비라도 틀어놓아야 마음이 편했다. 허전함이 커지면서 남편이 떠난 자리를 무엇으로든 채우고 싶어졌다. 그래서 남편이 서재로 쓰던 방에 고양이를 들이고 캣 타워를 설치했다. 세상에 고양이 방이라니! 지금도 우리 집에 가끔 놀러 오는 지인들은 이 집 고양이 팔자가 상팔자라고 다시 태어나면 이 집 고양이로 태어나고 싶다고 농담 아닌 농담을 한다. 법적으로 싱글이 된 후에는 이런저런 모임에 나가보기도 했다.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도 딱히 다른 엄마들과 가깝게 교류하며 지내지 않았다. 그런데 이혼하고 갑자기 밀려오는 외로움에 나와 비슷한 처지에 사람들과 교류를 하면서 그것을 통해 위로를 받으려고 했다.


그렇게 일 년 정도 방황을 계속하다가 혼자서는 안정을 찾기 힘들겠다는 생각에 결국 부모님 집 옆으로 이사를 결정했다. 이사 준비를 하면서 나는 나를 채우고 있던 수많은 물건들을 보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리를 잘하지 않았음에도 냉장고에는 유통기한이 지난 각종 소스들과 과일 등등이 많이 나왔다. 옷장에는 출산 전에 입었던, 이제는 너무 작아 입을 수도 없던 옷들이 한 무더기였다. 거기다 책 욕심은 변하지 않아서 거실 벽 한 켠을 채우고도 모자랄 정도로 많았다. 이걸 다 이고 지고 이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제야 비로소 내 삶에 더하기가 아닌 빼기를 잘해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그때 마침 나는 이혼하면서 받은 여윳돈도 생겼던 참이었다. 어차피 오래 가지고 있고 싶지도 않았던 돈이라 나는 그 돈을 내 인생을 정리하는데 쓰기로 마음먹었다. 난생처음 정리업체를 불러 남편이 쓰던 침대며 책상 같은 걸 빼고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책장 한자리만 차지하고 몇 년을 보지 않았던 책은 버리거나 중고서점에 팔았고 입지 않는 옷도 기부하거나 중고장터에 팔거나 했다. 그렇게 물건들을 정리하고 새로 이사 갈 집에 리모델링도 시작했다. 나는 집 리모델링을 담당하는 소장님께 최대한 심플하게를 외쳐댔다. 그렇게 탄생한 우리 집은 들어왔을 때 넓어 보이고 단조로워 보인다. 다소 심심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쉽게 질릴 것 같진 않아서, 10년이 지난 데도 따로 보수하는 것 아닌 이상은 따로 리모델링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가구도 기본적인 식탁 소파 싱글침대 2개 아이책상과 내 책상 하나 딱 이렇게만 배치했다.


이사 온 집에서의 삶은 나에게 시간적 공간적인 여유를 안겨주었다. 부모님 집 바로 옆으로 이사해서 퇴근하고 부모님 집으로 가서 식사를 하는 횟수도 훨씬 늘어나면서 주방에 있던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고 부모님을 보러 따로 시간을 낼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그리고 집안일도 훨씬 수월해졌다. 물건의 양을 줄이고 나니 물건을 찾는 시간도 줄어들었고 정리하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물론 초등학교 아이를 키우기 때문에 아직 완전한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이전에 비하면 꼭 필요한 물건만 쓰기 편한 자리에 놓고 쓸 수 있게 된 편이다. 그러고 나니 운동하는 시간도 생겨서 틈 날 때마다 운동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욕심을 부려서 드라마틱한 체중감량을 하기를 바랐지만, 그렇게 하는 다이어트는 오래가지 못해서 할 수 있는 만큼 천천히 꾸준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도 작은 노력으로 예전보다 잠을 푹 자서 피로감이 줄어들었고 아침에 좀 더 가볍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큰 수확이다. 이런 것들 말고 가장 큰 변화는 내 삶을 많은 것들로 채우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좋아하던 책을 읽을 시간 글을 쓸 시간이 생기기 시작하고 그런 시간들로 나를 채워가면서, 굳이 사람들을 만나서 위로를 받으려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혼자 있는 시간이 고통스러웠던 마음은 조금씩 편안해졌고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은 그래서 더욱 즐거웠다. 더불어 내가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서 다른 잡다한 것들에 대한 욕망이 사라지고 정말 해야 할 것들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빼기와 미니멀리즘을 시작하면서 곤도 마리에의 정리의 기술이라는 책을 보았다. 일본에서 유난히 미니멀리즘과 정리의 기술이 각광을 받았던 이유가 지진 같은 자연해해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다. 지진 한 번에 소유하던 많은 것들을 잃는 경험에서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정리의 테크닉적인 면뿐 아니라 정리가 인간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정리라는 것이 단순히 물건을 제자리에 둔다는 개념이 아니라 자신이 소유하던 것들 중에 버릴 건 버리고 필요한 물건들을 골라 그것이 있어야 할 공간에 배치함으로써 자신 안에 있는 수많은 욕망을 들여다보고 정리하는 과정이라는 메시지는 새삼 정리가 삶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행위인지를 깨닫게 해 준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여권들 수많은 책들 졸업장들 자격증들 그리고 옷가지들 아이를 위해 사들인 수많은 물건 등을 정리하면서 나의 욕망을 들여다보았다. 어디서 주입됐는지 모를 이상적인 여성으로서 엄마로서의 모습을 살기 위해 부단히 도 노력했던 내 모습이 조금은 안쓰럽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원했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채워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정말 원했던 것이 맞는지 궁금해졌다. 또한 내가 그런 물건들 지식들 경험들을 소유할 깜냥은 되었던 사람이었는지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라캉은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라고 했다. 생각해 보면 나도 음식뿐 아니라 삶의 전반적인 면에서 타인의 욕망을 과식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멋지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삶을 따라 살고 싶어서, 내게 필요한 것이 아닌 것까지도 소유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과욕이 종종 내 삶을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나이 마흔 나는 인테리어 소장님께 주문했던 것처럼 스스로에게 심플하고 단순하게를 살기를 주문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들로만 내 삶을 채우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그걸 깨달아 가면서 뺄 건 빼고 그 자리에 내가 정말 채우고 싶은 것들로 채워가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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