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중인 청년들에게.
[삶에 대한 고민은 시대를 막론하는 것..!]
아끼고 아낀 책.. 서머싯 몸의 '면도날'은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에서 인기 많은 책중 하나이다. 삶에 대한 실존적 의문을 지니고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꼭 추천하고픈 책이다.
작가인 서머싯 몸은 의사 일을 하며 책을 쓰다 책이 잘 팔리면서는 아예 전업 작가로서 활동한다. 그의 대표작으로서 '달과 6펜스', '인간의 굴레에서', 그리고 '면도날' 등이 있다. 면도날에서는 서머싯 몸이 직접 책의 화자로서 등장하여 책의 사실성을 높혀준다. 그가 살면서 봐온 몇몇 인물들에 대해 1920-1940년대쯤 미국,유럽, 그리고 아시아를 넘나들며 보여준다. 이제 100여년이 지난 시대임에도 극중 나오는 인물들이 어딘가 묘하게 가까이 다가온다는 것은... 정말 정말 잘 쓴 소설이라는 것..
이 책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래리라는 청년을 알게 된 건 엘리엇과의 친분이 시작이었다. 그 시절 사교계의 큰손이었던 엘리엇은 어쩌면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이다. 속물 근성과 사람을 명예와 돈, 지위로 보는 듯 하면서도 그의 베풀기를 좋아하고 부를 좋아하는 그 순수함(?)이 다 늙어 죽기 직전까지 너무 극명해서 나중에는 짠함을 넘어 인간을 너무 좋아하는 애정을 갈구하는 느낌이기도 했던.. 무튼 앨리엇과 화자의 첫만남도 그런 사교계의 친분으로 시작되어 작가인 화자를 앨리엇은 초반엔 무시하지만서도 그의 명성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면모를 보인다. 앨리엇의 조카인 이사벨도 삼촌의 부를 따라 사교계를 누리며 그녀 또하 아름답고 활기차고 솔직하지만서도 부유하고 풍족하며 안정적인 가정을 꾸린 삶을 꿈꾸는 인물로서 그려진다. 그녀가 시카고에 살때에 어린시절의 친구로 등장하는 래리, 그레이, 그리고 소피.
그레이는 아주 쾌활한 호남이었고 증권업계에서 아버지의 손을 물려받아 장차 부유한 청년이 될 누가봐도 1등 신랑감의 사내이다. 그레이는 이사벨을 좋아하지만 이사벨은 래리와 사귄다. 래리는 그레이와 완전히 다른 매력으로 그려진다. 조용하고 차분하지만 그 눈빛은 또렷한 청년이다. 특이하게도 래리는 16살의 나이에 나이를 속이고 전쟁에 조종사로 뛰어든 뒤, 그곳에서 친구의 죽음을 눈으로 목격하고 돌아와 1년간 휴식기를 취하던 모습을 화자는 첫만남으로, 즉 우리 독자도 첫만남으로 보게 된다. 앨리엇을 포함한 그녀의 가족이 당시 미국에서의 건장한 남성이라면 당연 일자리를 찾거나 대학을 가야할 시기에 계속해서 쉬기만하는 래리의 태도를 이상하게 여긴다. 그리고 그들의 친구로서 초반엔 아주 잠깐 등장하는 수줍은 소녀 소피까지. 그들의 젊을 적 모습을 화자는 초반에 마주한다. 그리고 래리는 이사벨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둘은 약혼한 사이임에도 일자리를 이제 받아들여줄 수 없냐는 이사벨 및 그녀의 가족의 청을 완전히 무시하고 그는 계속 책에 빠져들며 그당시 청년들이 보기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묘한 차분함을 보인다. 이게 참.. 매력적인 묘사이다. 요새는 래리의 입장에 공감하는 젊은이들이 꽤 많은 거 같지만, 당시 미국의 전쟁이 막 끝나고 주식시장이 완전히 활기를 뛰는 그 시기에 상류층 출신인 래리의 태도는 보통의 정상으로 묘사되는 인물들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 수 이밖에 없다. 친구의 죽음을 바로 앞에서 목격하며 사람이 죽고나서는 그냥 바람빠진 인형과 같다는 것을 느낀 래리는 인생에서 이미 돈과 지위 그 이상의 어떠한 가치를 좇아야 하는지에 대한 실존적 고민에 빠져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작중 화자는 이후 앨리엇 및 이사벨을 만나며 이사벨이 그레이와 결국 결혼하고 래리는 인도 중국을 비롯한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깨달은 것들에 대해 그들과의 만남 및 대화를 빌어 우리에게 들려준다. 특히 그들의 만남의 중심지이자 처음에 래리가 떠나기 시작한 장소가 되었던 파리는 책을 읽으면서 계속 마음이 파리에 있게 하게 할 만큼 당시의 예술가들의 고장이자 상류층계의 고인물적 장소이면서도 유럽의 쇠퇴와 미국의 부흥 당시의 입지를 너무 잘 느끼게 해주어서 파리에 가고싶어지기도 했다. 미국 주식 시장의 몰락으로 인해 그레이는 파산하고 이사벨부부는 앨리엇의 도움을 받아 파리에 오면서 그곳에서 래리도 잠시 머물며 우연히 만나게 되어 작중 인물들이 본격으로 모이는 2부에 소피가 충격적인 술집 여자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녀와 결혼을 결심하는 래리에게 질투를 느낀 이사벨과 이후 결혼 직전 없어져버린 소피, 또 래리 및 작가인 화자와도 아는 사이인 낭만주의파 여성인 수잔의 등장까지, 그들 모두의 대화에 등장하며 손에 잡힐듯 잡히지 않는 래리와 작가의 본격적 대화가 6장에서 나오는데 6장의 시작에서 작가는 "이 장은 내용 이해에는넘어가도 큰 어려움이 없으니 넘어가도 좋다"는 식으로 나오지만 6장이 이 책의 핵심이었음을... 진짜 짜릿한 소설.. 아니, 소설이라고 믿기 싫은 너무 사실적이었던 책이었다. 6장에서 래리는 세계를 떠돌며 왜 자신이 돈과 명성을 좇을 수 있는 자리에서도 절대 좇지 않고 일반적인 삶을 살지 않는지에 대해 나온다.
래리는 전쟁중 목격한 친구의 죽음을 시작으로 존재에 대한 고민에 빠져 세상의 책들을 읽는데에 몰두한다. 그리고 육체노동을 하며 얻은 깨달음과 인도 사원에 들어가서 겪은 윤회 및 신에 대한 꺠달음을 화자에게 들려준다. 여기서 정말 인상깊었던 것은 윤회를 겪었다는 래리는 어떠한 신이 과연 자신에게 아부하는 이들에게만 베풀려고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다는 부분에서 작가와 이야기하고 싶어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이렇게 단순한 종교적 믿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실존 그 자체에 대한 고민과 통찰을 오랫동안 한 사람을 발견했을 때의 짜릿함...
작가는 극중 나온 인물들의 마지막까지 꽤나 명쾌하게 보여줘서 마지막까지 찝찝함으로 남지 않는 책이었다. 결국은 각자가 원하는 것은 모두 이루지 않았는가. 비록 래리의 경우 추측이지만 그와의 대화에서 그가 말해준 계획을 반드시 실행할 성격이란 건 우리도 모두 믿으니까. 그는 뉴욕 어디선가 여전히 청년의 눈빛과 인자한 미소를 간직한채 택시를 몰고 있을지.
가끔 혼자 있을 때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믿을 수 없으면서도 이미 다 겪어본 것 같은 기시감에 빠질 때가 있다. MBIT 극N... 특히 죽음을 간접적으로 일찍 경험할 수록 삶의 이유와 존재의 가치 및 실존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뗄 수 없는 관계이니까 삶과죽음은. 극중 래리는 무한한 윤회릐 굴레를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부분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결국 래리가 책을 4년간 읽고 읽으며 찾아다니고 세상을 떠돌고 순례자들과 만나며 얻은 통찰의 과정 자체는 현대사회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청년들에게 그 과정 자체만으로도 만족감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랬다. 어디론가 가치를 찾아 훌쩍 떠나고픈 그 마음, 그걸 실제로 실천했던 100년전의 인물 자체만으로 이 책은 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그가 계속해서 나아갈 삶의 지표는 그런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이사벨의 말마따나 오랫동안 철학자들이 고민했지만 답은 없던 질문을 여전히 고민하는 우리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본성에 특히나 고통받는 청춘들에게 위안이 된다. 이사벨처럼 실리를 좇아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너무나도 부러우면서도 래리까지는 갈 수 없는 자신임에도 결국 나는 이사벨이었나 래리었나- 혹은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화자인가-고민해보게 되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