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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Y Mar 28. 2016

30살의 나

일상, 사랑 그리고 미래


  "세상에 밤이 가면 아침이 오죠? 아침이 되면 해는 뜨는데 그래도 세상은 어두워."


  창원에서 친구 혜정이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동래행 표를 끊었다.

  해가 길어지긴했지만 새벽 여섯 시도 안된 시각이라 그런지 아직은 어둑어둑했다.


  버스 앞쪽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건너편에 앉은 아저씨에게 동래행 버스가 맞느냐고 물었는데 친절하게 그렇다고 답해주셨다. 이어 아저씨는 동래에 자신의 노모가 살고 있다며 동래가 집이냐고 물으셨다.

 

   "아뇨. 저는 수영에 살아요."


  아저씨가 양손으로 얼굴을 쓸고서 사흘 동안 두 시간정도밖에 못잤다며 자신을 강력계형사라고 소개했다. 그리곤 살인사건 용의자가 창원으로 도주했다는 정보를 얻고 사흘 동안 잠복근무를 하다가 부산으로 가는 거라고 하셨다.


  "거기 알아요? 'ㅅ'동?"

  "네."


  형사님이 그 용의자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셨던 그 'ㅅ'동이 내가 친구를 만났던 장소였다. 나는 흠칫 놀랐다.


  "그 좁은 동네에 유흥업소만 600곳이 넘어요. 그 새끼 잡아야하는데 잡기가 너무 힘들어. 휴- 아가씨도 늦은 밤에 다니지 마요."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싶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리액션을 해서였을까? 형사님은 굵직굵직한 몇몇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다.


  지금 맡고 있는 살인사건, 요즘 뉴스에 크게 보도되는 4살 딸을 암매장한 계부 사건의 비하인드 스토리, 길을 물은 여자를 살해한 사건 그리고 애인을 살해한 남자를 8일 만에 검거한 사건까지 듣게 되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입이 쩍쩍 벌어졌다.


  형사님은 18년간 이 일을 해왔지만 살인사건 현장이나 시신을 보고나면 항상 심적으로 힘들다고 하셨다.


   날이 밝은 줄 몰랐을 정도로 그의 이야기에 빠져있었는데 형사님이 대뜸 차창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세상에 밤이 가면 아침이 오죠? 아침이 되면 해는 뜨는데 그래도 세상은 어두워."


  형사님이 한숨을 내쉬고서 이어 말했다.


  "에휴- 정말 미친 것들이 너무 많아. 밤에도 조심, 낮에도 조심해요."


  형사라는 직업이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지만 것보다 세상의 가장 어두운 면만 보면서 일하는 게 정말 고되겠다 싶었다.


  형사님이 힘 있는 눈동자로 누군가의 뒷덜미를 잡는 시늉을 하면서 말했다.


  "그래도 잡을 땐 엄청 희열을 느껴요. 탁 낚아챌 때 진짜 기분 좋아. 짜릿해!"


  형사님이 20대 두 아들들 사진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하시다가 내 나이를 묻말했다.


  "절대 형사랑 결혼하지 마요. 여자가 힘들어."


  내가 피식 웃자 정말 정색하시면서


  "아, 정말이야! 진짜 힘들어. 박봉인데다 강력계형사는 한 달에 한 번 집에 들어갈까 말까예요."라고 했다.


  나는 어떤 반응을 해야할 지 몰라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형사님조만간 울산 중부경찰서에서 부산 남부경찰서로  이직할 거라고 했다.


  "부산에서 볼 지도 몰라요."

  "나쁜 일로 뵈면 안 될텐데요."

  "에이, 그거야 당연하지!"


  그 말을 들으면서 사실 좋은 일로라도 다시 만날 일이 있을까 싶었다. (첫째 아들의 며느리감으로? 순간 김칫국 살짝 마셨었다.)

  어쨌든 사람 앞일은 모르는 거니까 또 뵐 진 모를 일이지만 정말 나쁜 일로 뵙지만은 않길 바랐다.


  형사님이 노모와 전화통화를 할 때 버스가 동래역에 도착했고, 나는 범인을 꼭 잡길 바란다고 인사했다. 그도 잘 돌아가라는 무언의 눈빛으로 날 바라보며 고개짓을 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길

  형사님이 세상 일이 뉴스에 전부 보도되진 않는다며, 보도되고 알려지는 건 일부일 뿐이라고 한 말이 떠오른다.


  "그래도 그 사건은 범인 잡히면 보도되겠죠?"

  "그렇죠. 잡으면 보도되죠. 꼭 잡아야지!"


   곧 그 뉴스보도를 볼 수 있길 바란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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