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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Y Apr 02. 2016

30살의 나

일상, 사랑 그리고 미래


  미워도 싫어도 한명밖에 없는 아빠니까. 


  나는 아침마다 종종 LBC Radio를 듣곤한다.(대충 알아듣는 수준이지만 앞으로를 위해 공부하는 중이다.)


  중년의 여자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남편의 뇌에 문제가 생겨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던 상황을 이야기하며 슬픔을 토로하고 있었다.


  부인이 남편의 병으로 슬퍼하고 있었다.


  아이패드 볼륨을 줄였는데 또렷하게 두 번째 사연이 들렸다.

 

  한 여자의 사연이었다. 그녀의 아빠에게 몇 년 전부터 뇌에 원인 모를 문제가 생겼고 치료약이 없어 그녀의 아빠는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많은 돈을 들였지만 병에는 별 효과가 없다고 했다.


   그의 딸은 처음엔 슬퍼했다고 했다. 가슴에 멍이 드는 느낌이 무슨 느낌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아팠다고했다. TV드라마에서 종종 나오는 장면처럼 샤워기 물을 틀고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고 했다.

  기적을 바라며 기도했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갈수록 가슴 속의 아픔은 점점 무뎌지고 그 자리에 원망이 대신했다고 했다.


  사실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아빠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니, 미워하고 싫어했다고 했다. 그에게만은 사춘기가 끝나지 않은 사람처럼 행동했다고 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그는 가엾은 엄마를 밀어내려 했었고, 괴팍하면서도 변덕스런 성격 탓에 딸은 그를 대할 때마다 불안했던 적이 많았다고 했다.


  딸과 그녀의 엄마는 그가 병 때문에 조금은 변할 거라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길 바랐다고 했다.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는 여전했다고 했다. 아니, 전보다 더했고 했다.


  사실 딸은 자신의 엄마가 왜 아빠란 사람과 결혼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녀의 엄마는 부유하게 자라왔고 자신의 부모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온 사람이지만, 그녀의 아빠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그의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이었으니까.


  어느 날 딸은 이렇게 결론내렸다. 자신의 엄마가 본래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 사랑받지 못한 사람을 가엾게 여겼던 거라고. 동정과 연민을 사랑으로 착각한 거라고. 그러니까 일종의 실수였다고.


  그가(그의 과오들) 그녀에게 슬퍼할 기회조차 제대로 주지 는, 그런 결과만 봐도 실수를 부정할 수 없을 거라고 했다. 부인이 남편의 병에 슬퍼하는 그런 정상적인 상황 말이다.


  딸은 그 둘을 보며 결심했다고 했다.  '엄마 같은 삶을 살지 않을 거고 아빠같은 남자를 만나지 않을 거야.'


  어느 날, 딸이 엄마에게 말했다.


  "난 엄마 같이 안 살 거고, 아빠 같은 남자 절대 안 만날 거야."


  그녀의 엄마가 말했다.


  "나한테 남은 희망이 바로 그거다. 네가 행복하게 사는 거."


  딸은 그렇게 말하고 또 거기에 동의하는 말을 들었음에도 마음이 더 무겁고 먹먹했다고 했다.


  딸은 부디 자신의 아빠가 남은 생을 잘 마무리해주길 바라고 있다고 했다. 벌써 도망쳐도 도망쳤을 상황에서도 그의 곁을 지켜주는 엄마를 위해서 그가 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의 최선을 다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했다.

  어쩌면 딸은 더 이상 자신의 아빠를 미워하지 않길 바라는 거겠지......

  미워도 싫어도 한명밖에 없는 아빠니까.


  나는 아이패드 볼륨을 키웠다. 알아듣기에 너무 빠른 영어가 들렸다. 곧 아이패드를 끄고 직장에 갈 준비를 했다.

  그렇게 변함없이 하루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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