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창업 6개월 차가 지났다. 그동안 가장 어려웠고 여전히 어려운 건 바로 "잘 거절당하기"이다. 일단 거절을 당하면 툭툭 잘 털어야 한다. 또 다른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딛고, 계속 나아가야 한다.
거절의 방식은 다양하다. 어떤 이는 미안하다며 부드럽게 거절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둘러둘러 길게 말해서 거절인 듯 아닌 듯 애매하지만 사실상 원하는 걸 얻지 못하는 거절도 있다. 아예 대놓고 면박을 주기도 하고, 네가 뭘 잘 모르고 경험이 없다고 무시를 하기도 한다. 그런 상황을 직면한 후 그래, 당신 생각은 그렇군요, 하고 인정해 심리적인 거리를 둔다. 그제야 나의 제안을 들어주고, 검토해 준 걸 감사할 여유가 조금씩 생긴다.
사실 거절당하지 않는 것이 더 놀랍고 귀한 일이다. 누군가가 나의 부탁을 귀담아주고, 실제로 그에 응해서 도움을 주기까지 한다면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사람의 선택들이 일견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포장되곤 하지만 깊숙한 속내는 또 그렇지만도 않아서,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 가장 어렵다는 걸 매번 느낀다.
입시를 치르고, 취업이나 이직 같은 중요한 시점에나 몇 년에 한 번쯤 지원자의 신분이 되어 다른 이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까 말까 했다. 그 외에는 주어진 맥락을 파악하고, 반응하고, 요청하고, 조율하는 일련의 과정이었지 단호하게 "아니", "안 돼"라는 부정적인 반응을 마주할 일이 드물었다. 거절을 당할 일이 흔치 않다는 걸 못 느낄 정도로 빈도가 낮았다.
처음 알을 깨기 시작한 것은 무식하게 현장에서 부딪치면서다. 건물주를 만나기도 힘들고, 소개를 받고 또 받아야 협조를 얻어 겨우 지하 7층, 지하 3층 이런 깊숙한 곳에 있는 관제실에 들어가 볼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는 의사결정에 필요한 데이터가 턱없이 부족했다. 어쩔 수 없이 무작위로 아무 건물이나 들어가서 부탁하기 시작했다.
뜻밖의 친절을 베풀어 주시는 분도 있었고, 잡상인 취급을 받으며 쫓겨나는 일도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의 거절을 당하면서 첫마디, 첫 단어가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언젠가 들어봤을 법한 익숙한 단어를 먼저 던져 경계심을 푼다. 선생님, 저희는 KAIST 출신 창업팀인데요~ 라며 운을 뗀다. 나는 가르침을 얻으러 온 사람이고 그저 한번 살펴보는 것 외에는 바라는 게 없다고 안심을 시키고 나서야 마음의 빗장이 조금씩 풀렸다. 가끔 구질구질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불필요한 감정을 오래 붙잡을 이유는 또 없었다. 부드러운 미소와 평온한 눈매를 장착하고 고개와 허리를 숙여야 한다. 위협을 가할 때는 몸집을 크게 부풀리고, 방어할 때는 몸을 낮추는 야생의 본능처럼, 낮고 작아 보이려 노력했다. 차라리 가엾은 것이 나았다. 신원이 확실하다는 것을 즉시 밝히기 위해 명함을 손에 쥐고 있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주머니를 뒤적이며 허둥대다가는 설득의 타이밍을 놓치기에 십상이다.
메시지만큼이나 메신저도 중요했다. 그렇게 깊숙한 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낯선 이를 응대하는 업무를, 그것도 면대면으로 처리할 일이 거의 없으시다. 그래서 첫 포인트는 가급적 안내데스크가 좋다. 그다음 관리사무소, 그리고 기계팀장님, 마지막이 관제실 기사님이다. 안내데스크에 계신 분들은 찾아온 사람을 건물의 누군가에게 넘겨주는 것이 역할이다. 그렇게 한 번 내부인의 연결 고리를 타기 시작하면 상대적으로 매끄럽게, 내가 원하는 깊이까지도 도전해볼 수 있었다. 물론 변수도 있다. 누가 자리에 없다던가, 전화를 안 받아 구멍이 생기면 모든 노력이 허사다. 하루는 1탄까지 깨고 하루는 3탄까지 깨고 하루는 공치는 날도 온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 전혀 몰랐을 소중한 경험이 쌓이고 쌓인다.
삼진을 당하고 난 직후는 또 휘두르기가 두렵다. 하지만 다시 타석에 오르고, 계속 공을 보고, 또 휘둘러본다. 그러다 보면 유난히 공의 실밥까지 잘 보이는 순간이 있는데, 그제야 안타도 나오고 가끔 홈런도 때린다.
지금까지 당한 거절보다 앞으로 당할 거절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아마 더 혹독할 것이다. 하지만 딱히 손해는 아니다. 원래 아무것도 없었고, 거절당해서 얻지 못해도 제자리로 돌아온 것일 뿐이고, 혹시 잘 되면 플러스라고 어느 선배가 조언해주셨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실제로 가졌던 것은 그저 기대뿐이라서, 그 기대가 없어져도 잃을 것이 없다.
감사하게도 주변에 훌륭하신 분들이 많다. 기회가 있으면 돕고 또 신세를 지면서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나간다. 게다가 내 뒤에는 나를 응원해주는 우리 팀도 있다. 가까이 또는 조금 멀리에도 지지해주시는 분들이 계신다. 마음속 단단히 뿌리내린 곳에는 나보다 나를 믿어주는 가족도 있다.
거절은 여전히 낯설다. 하는 것도 받는 것도 어렵다. 그래도 다 지나갈 테니, 얼어서 멈춰버릴 필요는 없어 보인다. 한 걸음 한 걸음, 어설픈 걸음을 계속 내디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