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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40 경청

넘겨짚지 말고 흘려듣지 말고 있는 그대로 귀 기울이기

by 소피

습관처럼 영상을 틀어두곤 한다. 듣는 것도 보는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 대충 흘려들으면 방금 나온 내용도 기억을 못 한다. 어, 이거 어디서 들어본 말 같은데? 몇 개월 간격을 두고 같은 영상을 두 번 본 적도 있다.


당신은 소리를 내라. 그러거나 말거나. 어차피 제대로 안 들을 거면서 왜 틀어놨지 싶을 때도 있다. 영상 속 화자와의 관계는 일방적이다. 내 멋대로 군다.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과, 듣고 싶은 말만 듣는 사람.


영상을 휙휙 넘기는 일도 많다. 서론이 길거나 전개가 느리다 싶으면 5초 10초씩 뛰어넘으며 타임라인을 질주한다. 정보의 밀도가 높은데 영상이 길면 배속을 올리기도 한다.


FDS 프로젝트를 하면서 내가 그동안 얼마나 제대로 "들었는지" 반성한다. 평소에는 이렇게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을 하는 것도 참 드문 일이다. 딴생각하지 않고 섣불리 짐작해도 안 되고 중간에 간섭도 못 한다. 둘의 대화를 온전히 곱씹으며 그들이 지나간 시간과 생각의 자취를 되짚는다.


자막 작업을 할 때는 영상에서 추출한 음성 파일로만 목소리를 따라간다. 가끔 어떤 단어인지 헷갈리면 그제야 입모양을 찾아본다. 목소리만으로 화자가 불확실할 때도 주인공의 입을 살펴서 구분한다. 그렇게 빠르게 탁탁 텍스트 편집을 해나가다가 뜻밖의 순간을 만났다.


울컥하네요.


30분 남짓의 대화에서 불쑥 튀어나온 묵직한 진심. 토독토독 자판을 두드리며 말덩어리를 오려 붙이던 기계적인 움직임을 멈췄다. 화면 너머에서 붉어진 눈시울을 바라본다. 나까지 코가 시큰해진다.


한 사람을, 그의 세상을 나는 얼마나 진심으로 바라보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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