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핑계 대지 말고, 그냥 하기
대학시절 우연히 만나 뵙고 인연을 이어온 故장병우 사장님은 나만의 키다리 아저씨이자 인생의 멘토였다. 나의 청춘에 조금이라도 낭만이 있었다면 그분이 문학을 읽으라고, 시를 써보라고 해주신 덕일 것이다. 갑자기 돌아가신 사장님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다.
선생은 평생의 좌우명 두 가지를 말씀해 주셨다. 선내보. 善內寶. 선함 속에 보물이 있다. 우보. 又步. 걷고 또 걷는다. 하나는 가치에 관한 것이고, 하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어디로 갈 것인가. 세상에 이로운 것을 해라. 어떻게 갈 것인가. 한 걸음씩 계속 걸어라.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즉각적인 실행이 몸에 배었다. 그동안 지식 노동자로 살아오며 해왔던 일들은 이렇게 까지 눈에 보이는 성과가 빠르게 보이지 않았다. 막연한 가치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실체에 집중한다. 웃음. 감사. 칭찬. 추천. 즉각적으로 긍정적인 피드백을 얻는다. 그러면 또 힘을 얻어서 다시 얼른 실행을 하고. 빡빡한 스케줄 탓에 어쩔 수 없이 무리를 하고 있기는 하다. 그 때문인지 작은 실수들이 생기기도 했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건 참 다행이다. 서로 잘 막아주고 챙겨줘서 빠르게 수습이 잘 되었다.
클로이가 써주신 숏폼 기획안을 보고 손이 근질근질하다. 잘하는 거야 나중 문제고 일단은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글로 적은 기획안인데 생생하게 눈에 보이는 것 같고 귀에 들리는 것 같다. 멋지다. 그런데 참아야 해. 꼭 해야 할 일부터 먼저 해야 해.
오늘은 한 달여의 시간 동안 프로젝트에 매진하면서 흐린 눈으로 소홀했던 일들을 해냈다. 빨래도 개고, 저녁식사를 차리고, 식기 세척기도 돌렸다. 복동이의 발톱도 깎아줬다. 기술문서도 작성하고, 동창회 기획단 일도 마무리했다. 기부품 경매행사를 위한 문서화도 마치고, 프로필 페이지도 오픈했다. AI덕에 같은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늘었다. 기획 아이디어랑 BI자료만 있으면 기획-디자인-개발-배포가 너무 빠르고 쉽다. 한번 도구에 익숙해지고 나면 다른 일을 할 때 유용하게 잘 쓰는 자산이 된다.
그냥 하는 거지. Just do it. 인간 나이키가 되고 있다. 실행에는 관성이 붙는 걸까. 멈추면 계속 멈추고 움직이면 계속 움직인다. 미뤄두었던 일들도 수월하게 해내고 나니까 기분이 상쾌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지.
도망가지 말자. 잔말 하지 말고. 핑계 대지 말고. 그냥 하자. 오늘은 오늘의 걸음을 걸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