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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0 진실의 순간

자신에게, 카메라너머 누군가에게 얼마나 솔직해질 것인가

by 소피

오늘도 프로젝트는 정신없이 돌아간다. 나는 오전에 빠르게 작업을 쳐내고 오후에는 개인적인 일들을 처리했다. 잠시 숨을 고른다. 문득 생각해 보니 새삼 사치스러운 기분이 든다. 그러고 보면 한동안 먹고사는 문제에서 벗어나질 못 했지. 다른 사람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 얼굴에 담긴 삶을 바라보는 것보다 더한 여유가 있을까. 요즘은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 만에 만나는 분들. 불면증세도 다시 생기고 살도 많이 쪘는데 이상하게 좋아 보인다는 얘기를 듣는다. 마지막 직원분의 퇴직정산을 끝냈다. 사람과 돈을 굴리는 무거운 책임을 거의 다 내려놓았다. 삶과 죽음, 자아와 타자, 시간과 공간, 일과 조직, 사회에 대해 생각해 보는 요즘. 나는 어떤 얼굴인 것일까.


지금까지 49명의 이야기에 자막이 달렸고, 나는 그중 45편을 작업했다. 지금까지 3명이 인터뷰 중 눈물을 보였다. 왜 이렇게 사람들을 울리고 다니냐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존경스럽다. 다 큰 성인들이다. 자기의 길을 잘 걷고 있는 건강한 분들이다.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다가 울컥하신다. 30여 분 남짓한 이 인터뷰가 왜 특별하다고 느끼는지. 뾰족한 설명을 찾지 못했다.


힌트를 준 건 우령님. 040 우령님의 인터뷰를 마치고, 근처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령님도 아나운서로 방송 일을 해보셨고,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인터뷰에 응할 일도 많았다고 하신다. 오늘 알고리즘에 떠서 알았는데 아주 오래전에 봤던 무엇이든 물어보살이라는 예능프로에 나온 귀여운 대학생 친구가 우령님이었다니. 아무튼 우령님의 설명을 들으니 무엇이 다른지, 좀 알 것 같기도 하다.


우령님이 인터뷰를 하다가 음.. 하고 말문이 막힌 건 처음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우령님에게 궁금해하는 것들은 사실 그리 고민스러운 게 없었다고. 직업적으로도 언론인이시니 풍부한 어휘를 갖추고 계셨을 테지.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데에 장벽이 적은 분이다. 그렇게 잠시 말을 멈추는 시간에 고민을 하셨다고 한다. 얼마나 솔직해질 것인가. 그 순간에 진짜 자기 이야기를 꺼내기로 결정하고, 솔직한 대화를 이어갔다고.


30분 간 펼쳐지는 대화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면 이 사람이 얼마나 솔직했는지 알 것도 같다. 좋은 얼굴로, 좋은 말로 적당히 가릴 건 가리고 선택적으로 보여주는지, 아니면 진심으로 마음의 문을 다 열었는지. 다른 사람보다도 본인이 가장 잘 알지 않을까. 시간 내어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이 소중하지만, 특히나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주신 분들, 진실의 순간에 용기를 내주신 분들께 특히 감사하다. 서로의 삶을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세상이 좀 더 살만한 곳이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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