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부모님의 품을 떠나 기숙사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기말고사를 마치면 삼삼오오 모여서 택시를 타고 부산역으로, 김해공항으로 떠났다. 다들 기숙사에서 짐을 챙기는 어수선한 귀가일. 나는 조용히 선배들의 자습실을 돌았다.
늦은 오후. 빈 자습실은 고요했다. 쓰레기통 옆에 버려지는 책들이 쌓여있었다. 전공과목을 원서로 공부하는 학교. 벽돌 같은 책은 무거운 만큼이나 비쌌다. 운이 좋으면 비싼 전공과목 책을 얻었다. 물리나 화학, 수학 같은 과목의 책들. 인문과목은 담당 선생님 재량이 컸다. 내년에도 교과서가 바뀌지 않기를 바라며 세계사, 윤리 책을 미리 챙겼다.
책의 윗면, 얇은 종이가 겹쳐 만들어 낸 좁은 면. 매직으로 다른 이의 이름이 쓰여있었다. 내 이름도 적을까 고민하다 그냥 두었다. 선배가 버린 책을 들고 다니다가 책 주인과 마주치면 어쩌지 걱정도 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걸까. 알고도 모르는 척해줬던 걸까. "그거 내 책 아니야?" 하는 질문은 받지 않고 학교를 마쳤다.
같은 동네에서 비슷한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더 넓은 세상을 마주한 20년 전. 이미 조금씩 상속이 시작되고 격차는 벌어지고 있었다. 비교와 비하를 멈추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관찰과 분석이었다. 막연한 부러움과 시샘을 떨치려면 욕구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좋아 보이는 것. 무엇이, 어떻게, 왜 좋은지 충분히 살펴본다. 나에게도 의미가 있다면 노력하고 배팅하고 얻어낸다.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선명하게 선을 긋고 오 그렇구나, 하고 말았다. 경제적 풍요와 정서적 풍요가 다르다는 것도 차츰 알았다. 가진 것과 갖고 싶은 것, 상관없는 것을 점점 정교하게 구분한다.
시원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과거의 공간을 찾았다. 익숙한 건물의 실루엣과 공간감. 반갑고 다정한 얼굴들이 가득. 따뜻한 인사와 정겨운 억양. 그 와중에 상대적으로 풍족하지 않았던 미묘한 감각. 그 불편함을 털어내려 애써온 순간들이 스쳐갔다.
전공, 배우자, 직장, 투자, 해외 이주. 인생의 선택을 내리던 그 모든 순간. 자유의지를 가진 나다운 선택으로 여겼지만 어쩌면 그저 20년 동안 하나의 콤플렉스를 해소하는 과정이었을지도.
어른이 된 지금, 교과서를 파밍 하러 다니던 상황을 다시 본다. 선배들에게 책을 기부받아 후배들에게 나누거나 팔면 어떨까. 같이 운영한 친구들은 봉사시간을 받고 수익금은 어린이 재단에 기부해도 좋겠다. 1인칭이 아니라 2인칭, 3인칭으로 문제가 입체적으로 보인다.
팬데믹을 지나면서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단다. 가까운 동아리 선후배들에게 연락을 돌렸더니 순식간에 50만 원이 모였다. 맛있는 거 많이 사 먹고, 생일정도는 꼭 챙겨주라고 잔소리를 해본다. 전역하고 놀러 왔던 대학생 선배들이 기억난다. 겨우 스물한둘이었을 텐데. 양손 가득 맛있는 걸 들고 와준 고마운 마음.
받은 사랑을 기억하고 또 나누어 본다. 지적 활동으로 벌어들인 나의 사유재산. 내 친구의 사유재산. 발전기금으로 천만 원이 넘게 모였다. 잠시 이름표가 붙은 이 돈. 세상에 나와서 다시 이름이 없어지고 세상의 이곳저곳을 흐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