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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 Feb 26. 2024

책이라는 세상

가장  아끼는  책갈피. 아마도 누군가의 선물이었음이 확실한 귀중한 것.


책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도 없던 사람이 있다. 심심하면 서점에 가거나 도서관에 가는 사람, 책에 빠져 몇 시간이고 활자를 읽어내려가는 일로 스트레스를 풀던 사람이 있다. 내 얘기다. 


책을 좋아하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 최초의 기억이라 부를 만한 장면에는 여러 권의 책이 등장한다. 그 책장들을 넘기며 느꼈던 감정까지 기억할 수 있다. 정말로 새로운 세상을 만났던 그날의 기억들이 밀려온다. 지금 내 세상엔 없는 물질과 아름다움들을 처음 만나 알게 되고 눈을 뜨기 시작했던 환희의 순간들이 어렴풋하다. 좋아하는 책을 줄줄 외우거나 스스로 이야기꾼이 되어 동네 친구들에게 신나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것도 기억에 남아 있다. 


문학 외의 예술을 만난 것도 책을 통해서였다. 거침없이 온갖 예술 장르를 경험하려 덤볐던 모든 계기는 책이 만들어준 것이었다. 미처 알지 못했던 모든 세상이 책에 있었고, 책과 가까이할 때 내 인생의 시간들이 반짝일 수 있었다. 


출판사별 시선집. 이사 후 미진한 정리  탓탓에  서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책과 가장 멀어졌던 시기는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할 텐데, 중학교부터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교 때까지 시간이었다. 인생의 암흑기라고 부를 만큼 무미건조했던 시간. '대입'이라는 맹목적 사명에 원치도 않게 모든 의지와 에너지를 갖다 받쳐야 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이 시기가 좋을 리 없었지만, 책을 읽을 수 없었기에 더더욱 암담했으리라. 


대학에서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게 됐다. 책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과를 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로서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던 것 같다. 대학에 가서도 원하는 만큼 책을 읽는 일은 쉽게 주어지지 못했다. 다만 중고등학교 때와 달랐던 점은, 내가 원하는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었던 기쁨이 있었기에 그 시간들은 버티는 시간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쩌면 전공과 교양 공부의 기반이 새로운 책들을 만나는 시간이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요즘은 책을 읽는 일이 쉽지 않다. 자발적으로 책을 완전히 손에 놓은 지 꽤 시간이 흘렀기 때문일 것이다. 책이 싫어서는 당연히 아니지만, 책이 지긋지긋해서라는 말은 할 수 있겠다. 그 시절 나는 책이라는 말 자체를 내 입에 올리는 일 자체가 끔찍하게 느껴졌다. 책은 나를 불행에 빠뜨렸으니까. 이렇게 된 게 다 책 때문이니까. 


당시 나는 책을 만들던 편집자였고, 책을 만드는 시간들이 점차 버거워지다 못해 고통으로 치달아가던 때를 보내고 있었다. 정확히는 책을 만드는 환경으로부터 겪어야 했던 일로부터 얻게 된 괴로움이었지만. 책 같은 걸 좋아해서 내 인생이 망하는 구나. 책은 아무런 잘못도 없었지만, 나는 쏟아낼 대상이 필요했기에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책에게 분풀이하기 좋았다. 던지거나 찢지도 않았으니 외상을 입히지도 않았기에 책에게 미안하지 않았다. 


책을 완전히 손에서 좋으니 그 자리를 스마트폰이 차지했다. 도파민 중독을 일으킨다는 온갖 자극적인 숏폼 콘텐츠들은 처음엔 싫었지만 아주 쉽게 익숙해지는 성질의 것이었기에 30년을 훌쩍 넘도록 최애로 자리했던 책은 쉽게 자기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그러나 이내 이 콘텐츠들의 무익함에 진절머리가 나번 나머지 다시금 책으로 돌아가고 싶어졌을 때, 책은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 나를 밀쳐냈다. 자기 이야기 안으로 나를 받아들여주지 않았고, 배신감에 치를 떨 듯 단 한 페이지를 읽어내려는 내 노력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절로 울화가 치밀었지만, 나는 책으로밖에는 돌아올 곳이 없었다.


성인이 되어 책과 멀어진 기간은 약 2년 남짓의 세월이다. 평생 책을 읽어온 시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짦은 시간이다. 그러나 이 찰나 같은 시간은 내 평생 최대의 데미지를 입혔다. 책 같은 걸 좋아해서 더없는 고통에만 빠져 사는구나. 나로서는 자연스러운 불평이자 간절함이자 애원이기까지 한 한탄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와 장 폴 사르트르가 잠든 곳.


책을 다시금 잘 읽어내고 싶다. 정말로. 아무리 어려운 책이어도 거침없이 읽어나갔던 예전의 그때를 회복하고 싶다. 요즘은 엉겁결에 시작해버린 책 한 권과 씨름 중에 있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이다. 두 권짜리 완역본을 아주 오래전에 읽은 터였는데, 오역을 바로잡은 새 완역본이 나와 다시금 읽기 시작했다. 계기는 좀 더 선명한 것인데, 그 에피소드는 제법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이니 따로 한 편의 글로 이야기하고 싶다. 


이 책은 어렵기로 악명이 높지만, 이 명성이 이 정도였나 싶을 정도로 진도를 빼는 일이 쉽지 않다. 애초에 완전한 이해를 기대하고 책장을 넘긴 것도 아닌데 정말 자존심이 상한다. 필시 내 독서 능력이 망가져서 그럴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허덕일 수가 있나. 그런데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는 이 책을 빨리 다 읽어야만 할 것 같다. 그래야 올해가 안전할 것만 같다. 이 책을 어떻게든 읽어내야만 독서 능력의 일부가 회복될 것 같아서다. 간절하게 원하는 만큼, 하루 속히 <제2의 성>의 마지막 페이지로 향하고 싶다. 


인스타그램 쇼츠 따위가 주는 도파민과는 질적으로 비교도 할 수 없는 숭고한 카타르시스에 다시금 중독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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