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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스트 Sep 11. 2017

막내동생의 자취방 합류와 헌혈의 추억

이걸로 빵 사 먹을 수 있습니까?

막내동생이 제대했다. 둘째처럼 해병대를 제대했다. 해병 932기. 서해 우도라는 섬에서 근무했던 녀석이 제대 후 둘째와 똑같은 이유로 학교를 때려치우고 우리 자취방으로 합류했다. 적잖이 걱정이 되었다. 둘째 동생과 나만으로도 이렇게 힘든 자취생활을 하고 있는데 입이 하나 더 늘었으니 다 먹여 살릴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또한 곱게만 자라온 막내동생이 이 힘겨운 자취생활을 버틸 수 있을는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건 기우에 불과했다. 우리는 이후 최강 자취팀으로 거듭나게 된다.


막내동생의 합류 후 처음에는 무지하게 힘들었다. 방도 좁은데 세 명이서 잘려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새로 이사한 이 방도 무지하게 더워서 여름에는 밖보다 더 더웠고 겨울에는 밖보다 추웠다. 특히, 여름에는 좁은 방에 삼 형제가 눌러앉아 있다 보면 사우나를 방불케 했다. 늘 방문은 열어두고 살아야 했다.


잘 때는 더 가관이다. 둘째 동생은 이를 갈고 막내는 잠꼬대를 하였다. 난 발작을 했다. 아주 그냥 버라이어티한 취침시간이다. 밥 먹는 것은 또 어떠한가. 음식을 처리하는 속도나 양은 메뚜기떼 같았으며 우리가 사회에 제공하는 효용가치보다 1만 배는 많은 양의 식량을 섭취했다. 아주 효율 떨어지는 인간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금방 식량이 떨어졌다. 그래도 막내동생만큼은 굶기지 말자고 다짐했던 터라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악을 썼고 둘째 동생이 알바를 시작했다.(막내동생은 먹기만 했다.) 그 와중에 다행인 것은 막내가 오면서부터 둘째 동생이 더 이상 외롭지 않게 된 것이었다. 놀아줄 사람이 생긴 것이다.


세 명이서 하는 자취생활이 시작되고 배고픔은 사그라들 줄 몰랐다. 우리는 배고픔을 해결하거나 필요한 문화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헌혈을 많이 했다. 헌혈을 하면 과자하고 음료수를 준다. 그리고 문화상품권을 주거나 영화관람권을 주거나 생활용품을 주기도 했다. 막내동생이 제대하기 훨씬 전부터 둘째 동생과 나는 헌혈을 많이 하고 있었다. 



자취 기간 동안 난 총 20여 회 이상의 헌혈을 했고 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주로 헌혈을 하는 목적이 영화관에 가기 위한 것이었는데(어려서부터 영화를 참 좋아라 했다.) 대학시절 내 돈을 주고 영화를 본 것은 지금의 내 아내와 첫 데이트를 할 때였을 뿐이다.(그때 그 영화가 브래드 피트 주연의 '트로이'였지 아마?) 그 외에는 거의 매달 헌혈을 했고 헌혈의 집에서 주는 과자로 배를 채웠으며 영화관람권을 가지고 동생들과 영화를 보았다.


어느 날 우리 삼 형제가 월례행사였던 헌혈을 끝내고 과자와 음료를 거나하게 들이킨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주는 상품인 <영화관람권>, <문화상품권>, <생활용품>을 선택하는 자리에서 나와 둘째는 주저함 없이 영화관람권을 받았다. 

그런데 마지막 헌혈을 끝낸 막내가 간호사들에게 문화상품권을 달라고 했다. 

우리는 '저 미친놈 영화 봐야 하는디..'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막내동생이 간호사들에게 하는 말, 


"저.. 이걸로 빵사먹을 수 있습니까?"


아... 웃기면서 슬펐다.


비록 문화상품권 3,000원짜리였지만 3천원어치 빵을 사 먹고 싶었던 것이었다. 뭔가 짠함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다행히 간호사님들은 그걸로 빵 사먹을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둘째와 나는 문화상품권을 손에 꼭 쥐고 있는 동생을 데리고 인근 동네빵집에 갔다. 그리고 3천원어치 빵을 샀다. 영화는 포기했고 동생들과 함께 자취방에 들어갔다.


막내동생이 빵이 담긴 봉지를 들고 집에 걸어가는데 표정이 그렇게 해맑을 수 없었다. 

그냥 빵을 먹고 싶었던 것이고 지금 자신의 손에 빵이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던 거 같다.



그때의 기억으로 난 취업을 하고 난 뒤 한동안 동생을 찾아가면 빵을 엄청나게 사주고 왔다.

현 내 아내이자 당시 내 여자 친구도 그런 막내동생에게 빵을 엄청나게 사줬다.

당시 막내동생은 빵 사주는 사람에게는 무한한 애정과 존경을 보냈다.


그로부터 15년이 훌쩍 지난 지금 막내동생은 빵을 끊었다. 살 뺀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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