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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스트 Sep 12. 2017

김치도 썩는다.

그냥 볶아먹자

대학교 4학년 여름.. 새로들어온 자취방은 유난히 더웠다. 물론 그 해 여름 날씨가 참으로 덥기도 했지만 작은 방에 장정 3명이서 살려고 하니 흡사 찜질방에서 생활하는 기분이였다. 물론 이때만해도 난 찜질방이란 곳을 가본적이 없다. 그해 겨울에서야 찜질방이란 곳을 처음 가보았으니 그때 자취방에 비하면 찜질방은 심하게 과장해서 알라스카 같았으니 얼마나 자취방이 더웠는지 굳이 더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다. 거의 방문을 열고 모기장을 문에 설치하고 살았다. (모기도 참 많았다. 아디다스 모기들...)


날씨가 이렇게 덥다보니 아무리 냉장고에 있는 음식이라도 버텨내질 못했다. 막내동생까지 합류한 대가족 자취족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반찬은 김치하고 여전히 줄지 않는 마법의 반찬인 마른 반찬이 전부였다.


어느날 여름 동생들하고 점심을 먹기 위해 자취방에 들어왔다. 막내동생이 온 이후에 식사당번은 거의 막내와 둘째의 차지였다. 나는 거의 주방에 드나들지 않게 되었다. 나→둘째동생→막내동생으로 이어지는 권력이동에 따른 짬당번 선정에 따른 것이다. 주방에 들어간 막내동생이 갑자기 비명을 지른다. 그리고 쿠헤헤 웃는다. 우리는 영문을 몰라 그 좁은 주방으로 들어가 무슨일인지 살펴보았다. 


사건의 주범은 바로 김치였다. 

지독히도 더운 여름날씨와 이미 수명을 다해 쿨럭거리는 냉장고가 만든 합작품. 동생이 기겁을 했던 이유는 김치를 덮고 있는 두께 1센티미터의 곰팡이 때문이었다. 그 자취방의 위생상태가 그닥 좋지 않아(늘 습하고 어두웠다.) 안그래도 음식들이 자주 쉬었다. 


자취 초반에는 쌀통에 쌀벌레가 서식을 하여 싱싱한 쌀을 부어놓기만 하면 하루가 채 되지 않아 어디서 나온지도 알 수 없는 쌀벌레들이 쌀통을 열어본 나를 향해 환호를 하였다.

그래도 처음에는 쌀을 씻으면서 쌀벌레를 걸러내었지만 나중에는 쌀벌레를 반찬삼아 밥을 했었어야 할 정도로 많았다.(나중에 안사실이지만 이 쌀벌레를 죽이는 것에는 통마늘을 몇 조각 넣어놓으면 쌀벌레가 없어진다.) 


그러나 그 김치에는 이젠 벌레도 아닌 균류들이 엄청난 번식을 하고 있었다. 우리 형제는 그 김치를 두텁게 코팅하고 있는 곰팡이를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더니 막내동생이 그 곰팡이를 살짝 걷어내더니 말한다.

막내동생 : 볶아먹자.

나, 둘째동생 : 그러자


곰팡이의 색깔을 보니 몸에 좋은 곰팡이다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며 볶아 먹었다. 하긴 페니실린도 곰팡이에서 발견되지 않았던가. 아직까지 잘 살아 있는 것을 보면 분명 몸에 좋은 곰팡이였을 것이다.


이렇듯, 막내동생의 등장으로 굶주림의 굴래는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막내동생은 나와 둘째가 했던 자취생활에 비하면 그마나 호강을 했던 것이다. 이유는 이후 우리가 적극적인 돈벌이에 나서게 되었기 때문이다. 앞 편에서 말했듯이 헌혈로 생활용품과 문화생활을 했고 나의 학원강의 알바와 가끔씩 했던 프리랜서로서의 일거리가 꾸준히 있어서이다. 물론 둘째도 돈을 벌기 시작했다. 다음에는 그 둘째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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