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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스트 Sep 13. 2017

울지마~ 칼라 병아리

병아리도 울고, 나도 울고, 박스도 울었다. 도매상놈 잡히기만 해봐라.

때는 1998년 4월. 학교를 휴학하고 9월에 예정된 군입대를 앞두고 있을 때였다. 군입대 전에 그냥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보낼 수 없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휴학을 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물론 휴학할 당시에는 무엇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막상 휴학하고 나니 여러 가지 상황이 나의 계획을 훼방하고 있었다.

당시 자취를 하고 있을 때였으므로(최초의 자취 시절, '이틀간의 굶주림이 낳은 추억' 이 이야기가 있던 때) 일단 돈을 벌자는 생각에 구인광고를 뒤적였다. 그 시절은 IMF가 터지고 얼마 안 될 때여서 일자리 자체가 희귀했다. 대학 1학년 때 난 보통 식당(고깃집)에서 알바를 했었다. 역시나 그런 종류를 찾고 있었으나 자리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는 중에 한 구인광고를 보게 된다. 

'칼라 병아리 파실 분'


오호 이거 끌렸다. 일단 노력하는 바대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과 더 이상 식당 알바로 인해 망가진 무릎을 더 이상 학대하지 않아도 좋을 것만 같았다. 바로 전화를 했다. 상대방이 흔쾌히 수락하여 그분이 일러준 곳으로 버스를 타고 도착했다.


그곳은 허름한 한옥집이었고 방 가운데를 파내어 병아리 수백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일명 '총판'이다. 어렸을 적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 장수를 많이 봤었고 나 또한 여러 마리의 병아리를 구입했던 기억이 있어서 설렘이 앞서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렸을 때와 다른 점은 노란 병아리가 아니고 칼라 병아리였다. 참 신기했다. 병아리를 보니 몸체 색깔이 각양각색이었고 몸과 날개의 색깔도 서로 달랐다.


<이런 느낌의 병아리들이었다. 내가 판 것은 날개색도 몸통과 달랐다.>


난 그분께 이게 뭐냐고 물었다. 


그분은 이 칼라 병아리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신다.

DNA 조작기술로 만들어낸 신개념의 병아리란다. 그러면서 뭘 나한테 가져다주신다. 얼마 전에 개봉했던 폭망 했던 영화 'DNA'의 포스터였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는 박스를 잘라서 막카로 쓴 'DNA의 혁명, 칼라 병아리' 종이를 주신다.

<이런 영화였던 거 같다.>


나도 당시는 참 순진했던 모양이다. 그분의 말씀을 다 믿었다. 또한 이런 아이템이라면 충분히 상품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분이 지역 총판이었기 때문에 나 같은 판매자에게 병아리 몇 판을 팔고 구역을 지정해준다. 난 일단 첫날 두 판을 들고 다른 지역의 대학교 근처 시장으로 갔다. 지금도 기억하건대 농협 앞이었다. 그리고 당시는 휴일이었기 때문에 농협은 문이 닫혀 있어서 그 앞에서 병아리 두 판을 놓고 우측에는 영화 'DNA' 포스터를 좌측에는 'DNA의 혁명, 칼라 병아리'를 놓았다. 일단 몸은 편하다. 그냥 앉아있으면 되었기 때문이다.

 

병아리 한 마리는 1,500원이었다. 내가 총판으로부터 구입하는 금액은 1,000원.

모이는 한 봉지에 1,000원이었다. 내가 총판으로부터 구입하는 금액은 40kg 한 포대에 10,000원


그렇다!! 여기에 장사의 묘미가 있는 것이다. 병아리를 팔면서 병아리로 돈 버는 게 절대 아니다.

병아리를 팔면서 끼워 파는 손가락 한마디만 한 모이로부터 돈을 버는 것이다. 모이 한 포대면 1,000원짜리 모이가 수백 개가 아니 셀 수 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아리 장수들이 그렇게 모이를 구매하길 권유하는 것이었다. 정말로는 그것을 팔아야 돈이 되는 것이다. 병아리 팔아봐야 마리당 500원 벌지만 모이를 팔면 90% 이상의 마진이 남는 것이다. 거기다 모이를 두 개를 구입하게도 할 수 있다면 엄청난 이득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장사였고 이것을 알게 된 나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시장에 엄마를 따라나선 아이들이 병아리를 보더니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근데 불행하게도 당시는 3월이었다. 아직 꽃샘추위가 다 지나지 않을 때여서 그런지 유독 그날은 추웠다. 모든 병아리들이 추위를 느끼는지 박스 한 곳에 종기 종기 모여 눈을 감고 삐약대고 있었다. 


멀리서 아이들이 병아리를 보고 자기 엄마의 손을 끌고 내쪽으로 오면 난 은근슬쩍 박스를 발로 툭 찬다.


그럼 잠자고 있던 병아리들이 일제히 잠에서 깨어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삐약 삐약'대면서 막 돌아다닌다.

그리고 모든 고객(엄마)은 나에게 묻는다.


"이거 염색한 거 아니에요?"


그럼 난 자신 있게 말한다.


"아니에요~ 이거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낸 병아리입니다."


정말 난 그렇게 믿고 있었다. 정말이었다.


모든 우리네 어머니들이 그렇듯이 자신의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후하게 사주시질 않는다.

참 팔아먹기 힘들 때, 다른 아이와 어머니가 나를 향해 빠르게 오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손에 칼라 병아리를 들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오기 전 다른 사람으로부터(전에 이 구역을 담당했던) 구입했던 것 같다. 나를 보더니 


"아저씨, 이거 염색한 거 아네요? 여기 털 아래 보니까 노란색이던데요?"


그리고 병아리 털을 뒤집어보니 정말이었다. 안에는 노란색 털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것 같았다. 장사 첫날이었지만 나 또한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보다 우선적으로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든 경우의 수가 머릿속에서 작동되고 있었다.


"하.. 하.. 아주머니 이건요~ 신개념의 병아리예요.. 이게 자라면서 여기 털처럼 주황색으로 변하는 것이랍니다.^^"


내가 말해놓고도 내가 왜 이런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 당최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나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근데 이 아주머니 수긍한다........


이때부터 장사가 되지 않는다. 총 6마리와 모이 5 봉지를 팔고 접어야 했다. 해가 진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더 이상 손님이 없었고 무엇보다 내가 의욕을 잃었다. 철석같이 믿었던 유전자 개발의 뉴 아이템 칼라 병아리가 염색을 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후부터..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난 이제 집로 돌아가야 한다. 그 총판 새끼는 데리러 오지 않는다고 했다. 알아서 오라고 했다. 난 병아리 두 박스를 들고 시외버스터미널로 갔다. 도저히 좌석에 들고 탈 수가 없어서 버스 옆에 짐 놓는 곳에 병아리를 두었다.

시외버스를 타고 돌아오고 있는데 버스가 커브를 돌 때마다 아래에서 병아리들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삐~~~ 약!!!!, 삐~~~ 약!!"


병아리도 울고

나도 울고

박스 종이도 울었다.


<날아라 칼라병아리>


돈 쉽게 버는거 아니더라... 그 총판 놈에게 한소리 못한 내가 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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