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영주권을 갖게 되다
앤드류 솔로몬 (이 작가를 너무x100000 좋아한다) 의 책 <경험 수집가의 여행> 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원한다면 영원히 머물 수도 있는 다른 나라를 이제 삶에 추가하게 됐다. 지지부진하던 캐나다 영주권 심사가 드디어 완료되었다는 소식이 당도했다. 내달 12일 이면 이곳에 온 지 4년 차다. 평균적으로 나와 같이 2년제 전문학교 졸업 후 취업 이민을 하는 사람들이 일 년의 관련 분야에서의 근무경력을 바탕으로 적정한 수준의 영어점수, 본국에서의 관련 경험, 나이, 혼인 여부 등을 점수로 환산하여 이민 신청을 하는 평균 기간과 얼추 맞아떨어지니, 절대 늦은 획득은 아니다.
나는 코로나의 수혜자다. 일하는 분야가 코로나 시국에 일손이 많이 부족했던 의료 관련 분야고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훔치며 떠났을지 모를 레저나 관광산업과는 무관하게 구인과 구직이 활발했다. 게다가 판데믹으로 인한 노동인력 감소를 우려한 캐나다 정부는 이례적으로 낮은 점수로 초대장을 발부하기 시작했고 (원래 450점 대에서 당락이 좌지우지되는데 400점대 초반까지, 초반에는 이벤트 성으로 70점대에 사람들에게 초대장을 날렸다;), 급기야는, 졸업대상자-필수인력-의료인력 등에게 점수와 상관없이 관련 증명만 되면 초대장을 주는 코로나 특별전형(?)까지 실행하기 시작했다.
딸린 식구도 없고 고민 끝에 졸업대상자가 아닌 좀 더 빠른 심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의료분야에서 일한 경력으로 신청한 나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꽤나 늦은 타임라인으로 심사를 통과하게 됐다. 주변에는 같은 전형으로 신청 2-3개월 만에 받았다는 기혼자가 속출했는데, 신청 일 년 여가 넘어서야 서류를 오픈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무래도 뭔가 누락된 건 아닐까 찝찝하고 불쾌했지만, 비자기간이 이미 2023년 10월까지로 비교적 긴 편이라 아주 초조하지는 않았다. 느린 프로세싱으로 눈물을 흘리거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사람들하고 얘기를 하다 보면 내가 다 스트레스를 받는 기분이라 적당한 선에서 끊고는 했다. 홍콩사태, 우크라이나 사태 등의 발발로 관련 난민들이 증가하면서 혹여나 자기 자리가 좁아질까 걱정하며 난민들을 받아들이는 캐나다 정부를 욕하는 한국인들을 보고 있지면…아 주여 저들을 용서하십시오. 저들은 저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모릅니다… 라는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외마디 비명 같은 기도가 떠올랐다.
어렸을 적, 비행기를 타고 전세계를 누비게 될 거라는 예언(?)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영험한 사람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기회는 일찍 오지 않았고 27살이 되어서야 겨우 호주, 밖으로 한 발자국을 디뎠다. 그전까지 반도 밖을 벗어나는 비행기는 제주행이 유일했는데 갑자기, 한꺼번에 일 년을 예정하고 밖으로 나가게 됐다. 그리고 그 여행이 대체 끝나는 기미가 없이 거진 3-4년을 끊기고 이어지고를 반복하며 계속되다가, 4년 전부터 캐나다에 영주권을 목적으로 머물게 됐다.
왜 캐나다였는지는 누군가 물어보면 커리어 적으로 좋은 선택이었지만, 날씨를 볼 때는 바보 같은 선택이었다고 말하곤 한다. 캐나다의 겨울은 혹독하다. 그냥 혹독한 게 아니라 너무나 길다. 내가 오랜 시간을 보낸 나라들은 거의 여름의 나라들이었고 덕분에 겨울 없이 여러 해를 났어서한국에서 지독한 계절성 우울증에 이따금 시달리곤 했다. 그냥 계절성 우울증은 아니었지만 시작은 어쨌거나 그랬기에 캐나다에 겨울의 시작에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곤 한다. 이번엔 어떻게 잘 날 수 있을까.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도 적응 안 된다는 추위는 마음속도 얼리기 십상이다.
캐나다는 살기 비교적 괜찮은 나라의 목록에 노출된 나라 중 이민의 문이 좀 크게 열린 나라였다. 원하는 교육이 나쁘지 않은 수준의 비용으로 가능한 나라기도 했다. 오랜 시간을 머무른 기억이 있었던 호주도 선택지 안에 있었지만, 아무래도 호주는 그 십여 년 전에도 문을 조금씩 좁혀가는 중이었고, 내가 경험한 호주는 너무나 좋은 환경과 자연에 비해서 조금은 거칠고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가 있었다. 내 나라라는 느낌이 안 든다. 고 당시 생각했는데 그 마음이 맞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후반에는 좀 지쳤던 것 같기도 해서. 억지로 그 나라에 남고자 하면 남을 수 있는 수단(?)이 갖춰졌었는데도 뿌리치고 떠난 마음이 지금 돌이켜 봐도 같았으리라는 막연한 생각뿐이다. 그냥 그렇게 보이려고 애쓰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외부로 보이는 이민자-난민 정책에 포용적인 인상만큼이나 캐나다 내부의 사람들도 호주보다 오히려 더 다정하고 푸근한 분위기로 서로를 대한다는 인상이다. 미국인에 비해서도 약간 촌스럽고 수더분한 북미인이랄까.
같은 책의 서문에는 이런 문단도 있다. 무릎을 탁 치며 동의했다. 처음 나라 밖으로 발을 내딛는 데는 오랫동안 해외를 떠돌며 산 경험이 있던 당시의 캐나다 이민자 출신(!) 남자 친구의 한마디가 주효했다. 그는 나를 붙잡는 대신 응원하며 이런 말을 했다. “네가 태어난 나라에 굳이 살 필요는 없어”. 태어나 자라난 땅에 오랫동안 적응을 못한 상태라는 것을 눈치챈 그가 내 안에 깊이 잠자던 역마살을 깨워버린 꼴이었다. 온갖 곳을 떠돌며 그곳에 오래 머문다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호주 말고도 자주 했다.
예컨대, 독일. 나쁘지 않았을 거다. 영어도 완벽하게 구사 못하는데 독일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과 어쩐지 그곳 사람들에게 정이 안 간다는 것만 빼면, 기후도 환경도 너무나 괜찮아 보였다. 태국도 고려해봤다. 인도의 학교에서 같은 학교를 쓴 자매 같은 태국 룸메이트와 방콕 근교에서 같이 요가원을 운영하면 어떨까라는 구상을 해봤다. 태국은 멋진 곳이었고 음식도 맛있었지만 그 나라에 오래 살면 내 안에 어느 정도의 탄력을 유지해야 할 고무줄이 녹아 흐물흐물해질 것 같다는 생각을 들어 멈칫하게 되긴 했다. 아. 인도도 있었다. 너무 사랑하고 너무 미워하는 그곳의 모순을 다 껴안고 살기에는, 내 안의 모순도 너무 버거웠다. 그런 저런 나라들.
하타요가 수행자가 어떤 환경에서 수행해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어느 책에는 다정한 이웃들 부족하고 어려운 이를 돕는 손길이 있는 정부가 있는 곳에 살 것을 권한다. 가끔 그 구절을 돌이켜 볼 때, 지금 캐나다의 모습이 그래도 그런 국가의 모습과 가장 닮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한다. 솔로몬의 저 문단과는 다른 논리라고 언뜻 보일지는 몰라도, 어떤 면에서 국가에 대한 개념이 희미하기에 가질 수 있는 생각이기도 하다. 충성을 바라거나 국가에 대한 거대한 개념을 갖고 있지 않아서, 개개인에게 친절한 국가가 내가 깃든 곳이었으면 싶은 것이다.
아직도 캐나다가 최종 목적지인가에 대한 확신은 없다. 다만 미친듯한 방랑벽이 가라앉은 지금은 이 나라가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을, 무슨 불편함이라도 그냥 시큰둥하게 고개 끄덕이며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을 안다. 어떤 나라던 부족함도 있고 배울 점도 있다. 그냥 단순히 나의 이때가 캐나다에서의 머무는 시기와 맞아떨어져 어영부영 엉덩이를 무겁게 가라앉히고 주저앉을 기세 인지도 모른다.
영주권이 결정 났을 때, 어떤 친구는 마치 그동안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울컥했었다 했고 어떤 친구는 별 감각이 없었다 했고 어떤 친구는 시간이 지나니 모든 것이 다 허무했다. 는 얘기를 했다. 내가 느낄 감정을 어느 정도 예상했다. 자랑스러웠다. 이뤄낸 어떤 성과로써 자랑스러웠다. 호주에서 대놓고 혹은 뒤에서 수군거리며 결혼 등의 쉬운 길로 영주권을 따낼 생각이냐고 질문이나 부추김을 당했을 때 너무 당혹스러웠다. 애정 없는 결혼을 단지 어딘가에 살 수 있는 권리를 갖고자 할 생각은 지금도 그때도 추후도 없었다. 외국인들을 볼 때 간혹 선진국에서 살 수 있는 비자 프리패스처럼 대하는 인도인들을 볼 때 당혹스러웠고 영주권을 딸 수 있을까에 대해 확신이 없을 때 선뜻 도와줄 수 있다고 나선 한국 밖으로 나를 밀어냈던(?) 옛 남자 친구의 말이 고맙지만 당혹스러웠다.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고 싶었다. 마치 앤드류 솔로몬이 만일을 대비해 어딘가 갈 수 있는 곳을 만들어 갖고 싶다. 고 욕망했듯. 내가 서 있는 땅을 내 발로 다지고 싶었다. 이렇게 얘기하다 보니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비난처럼 들릴까 우려스럽기도 한데, 사실은 내가 그 정도로 꽉 막힌 사람이어서 그렇다. 스스로 얻어낸 것이 아니면 잘 움켜쥐기 힘들어하는, 그런 사람이어서 그렇다.
이제 또 앞으로 어떤 삶을 꾸려나가게 될는지 잘은 모르지만, 희뿌옇게 잘 안 보이는 가운데 이 책의 헌사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