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phie Jun 04. 2022

내 사랑 노팅힐

나는 왜 항상 노팅힐일까


누군가가 좋아하는 영화를 물어 보면 아직도 모르겠다. 얼버무리다가 결국에는 엉뚱한 타이틀들만 나열하다가 결국 흐지부지 말꼬리를 흐리기를 여러 번. 최근에 내린 결론으로는, 기분과 상태와 인생의 풍경에 따라 좋아하는 현재형의 영화들이 있다는 것. 최근에는 이런 영화가 내 삶에 더 깊숙이 들어오고, 또 언제든 다른 영화일 수 있다는 것. 결국 그때그때 꽂히는 영화들이 있다는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도돌이표처럼 돌아와서 안착하는 영화는 있었다. 그리고 내게 그 영화는 <노팅힐>. 언제나 어떤 순간에도 위안을 건네고 웃음을 짓게 하는 이 영화.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곱씹고 왜 자신과 그 대상이 연결되는가를 고심하는 일은 나로 하여금 더 나 자신을 잘 알게 한다. 단순히 '좋아한다'에서 그치지 않고 그 선호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싶은 게 요즘이다. 좋아하는 것들이 점점 희귀해지고 좋아하는 마음에서 오는 에너지가 간절해서, 더더욱 그 마음을 붙잡고 늘어지게 된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좋아했던 <노팅힐>의 사랑스러움은, 이 영화가 놓치지 않는 세심함에 있다. 영화는 등장하는 인물 하나하나에 생명을 불어놓고 있어서 주인공 두 남녀의 사랑과 별개로 그들을 둘러싼 모든 인간군상들에게 애정이 샘솟게 한다. 몸이 불편한 벨라와 그의 남편. 훼방꾼인 듯 결정적인 순간에 영웅이 되는 스파이크, 모두가 아는 그 여배우를 몰라보는 무심한 친구 마틴 등이 극의 한 축을 단단하게 받치고 관객으로 하여금 이 영화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 영화가 구축한 이 푸근한 관계의 망은 너무나 단단하고 푸근해서 윌리엄에게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그가 결국에는 괜찮을 거라는 안심마저 들게 만든다.

반대로 그 관계들을 바라보는 애나의 간절함은 갖지 못한 자들의 분신으로 기능하면서 그녀가, 혹은 우리가 갖지 못한 이 충격흡수장에 대한 부러움 내지는 갈망을 더욱 크게 만드는 효과를 낸다.


이번에 두어 번 다시 반복해서 감상하면서는 내 공감의 자리가 윌리엄에서 애나로 옮겨왔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오히려 애나의 자리로 오니 윌리엄이 얼마나 애나에게 완벽한 조각이었는지, 애나의 목마름을 충족해주는 한 모금이었는지가 더 자세히 보였다.


윌리엄에게 애나는 참 나쁜 여자였다. 단순히 그녀가 유명인 이어서가 아니었다. 망설이고 조심스러워 소중한 사람을 더 일찍이 귀히 여기지 못한 탓에 세 번, 네 번 상처 주고 마는 타이밍이 이번에 더 또렷이 보였다. 장하게도 윌리엄은 매번 그런 그녀에게 기회를 주고 또 줬다. '이렇게 많이?'라고 느낄 만큼이나 너그럽게 베풀었다.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윌리엄이 그녀의 마음을 받아주지 못했던 것에 대한 의아함이 지금은 당연히 그랬을 수밖에 없었지.라는 마음으로 변해 그를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애나에게 사랑은 어려운 일이었다. 어쩌면 윌리엄보다 훨씬 일찍 그에 대한 스스로의 마음을 알았음에도.

'웁시 데이지'라는 대사로 몇 번이나 나를 웃게 만든 그 장면에서 개인 사유지로 담을 넘어가는 그 장면을 분명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새로운 지점이 보였다. 마침내 그들이 담을 넘어갔을 때, 애나는 사유지 구석에 누군가들의 소중한 기억이 새겨진 나무벤치를 발견한다. '이 정원을 사랑했던 준을 위해 항상 그녀 바로 곁에 앉았던 조셉이'라는 헌사가 바쳐진 나무벤치 한쪽 끝에 조용히 앉은 그녀는 한참 말이 없다. 그런 그녀 곁을 멋쩍은 듯이 멀찍이 서서 차마 함께 앉지 못하는 윌리엄을 카메라는 한참 멀리 떨어져서 조감으로 응시하다. 이 순간에 오히려 조심성이 지나친 것은 윌리엄처럼 보인다. 결국 애나는 "이리 와서 나랑 같이 앉아요"라고 말을 건네고, 이 말은 이제 보니 이미 한참 이른 타이밍에 고백한 그녀의 진심이었다.

별처럼 다가와서 사그라져간 그녀의 모든 지난 사랑들처럼, 아니 그 자신이 세상 누구보다 반짝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 사라질 신기루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기에 더 현실에 단단히 발 붙이고 신실한 마음으로 사랑해나갈 사람을 원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다시 윌리엄 앞에선 애나는 자신이 그저 평범한 한 여자일 뿐이라고 울먹이며 고백한다. 그녀가 다시 자신의 마음을 할퀴고 가면 온 사방에서 그녀를 발견할 자신이 너무 힘들다고 말하는 윌리엄을 다시 붙잡지도 못하는 채로.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결국 스치듯 지나쳐 가는 관계들과 내 못남과 삐뚤어짐에도 굳건히 곁에 남아 줄 관계들을 생각할 때 <노팅힐>과 애나를 떠올린다. 그녀의 상처가 지은 성과 갖지 못했던 촘촘한 관계의 망을 가진 윌리엄과 그가 가진 놀라운 신뢰를 떠올린다. 그 관계들로 인한 단단함으로 그는 많은 기회를 그녀에게 줄 수 있었고 계속해서 회복하고 일어설 수 있었다. 심지어는 마지막의 결합까지도 그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했다. 영화가 말한 해피엔딩이 아니었다면 애나는 또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러서야 그처럼 따뜻한 온기로 무장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을까 괜히 상상해 본다.

+발이 큰 사람들에 대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게요?라고 묻고 답할 때의 줄리아 로버츠의 상기된 얼굴과 그 입가에 떠오른 표정. 내가 그녀에 대해 생각할 때면 언제나 떠오를 그 얼굴.


(2020년 2월 5일)

매거진의 이전글 해리포터, 영국 그리고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