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 관광객 놀이
이혼 후 처음으로 집에 내려가던 날, 엄마가 "뭐가 먹고 싶냐?"라고 물었다.
"생선구이!"
줄곧 생각한 것도 아닌데 엄마의 물음에 나도 모르게 바로 튀어나왔다. 결혼 전에는 생선을 고기보다 좋아했었다. X와 연애할 때 하는 거라곤 먹는 거밖에 없었으니 생선구이 보단 자연스레 고기를 더 먹게 되면서 음식에 대한 기호가 바뀌었다.
결혼을 하고 의외로 가장 힘들었던 것 중의 하나가 먹는 문제였다. X는 원래 식탐이 강했는데 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서 모든 욕구불만을 음식으로 풀었다. 직장에 다니면서 그의 식탐에 부응하느라 매번 힘이 들었지만 처음에는 좋아서 하는 일이었으니까 괜찮았다.
똑같이 일을 해도(아니 나만 일해도) 주방 일은 자연스레 내 차지였다. 그가 할 줄 아는 거라곤 라면을 끓이는 게 전부다. 사실 X의 라면이 딱히 맛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것마저 내가 하기 싫어서 그냥 "네가 끓여야 맛있다"는 핑계를 대며 억지로 얻어먹었다.
그는 무슨 농사를 짓는 사람도 아니고 하루 세 끼에 간식까지 꼬박 챙겨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말로는 "집에 있는 거 대충 먹자"라고 하지만, 집에 뭔가 있으려면 일단 해 놓은 게 있어야 먹을 것 아닌가? 매번 엄마한테 택배로 반찬을 공수 받아 먹는 것도 죄송하고, 몇 년 간 부산 집에 코빼기도 안 비치면서 반찬만 보내달라고 할 염치도 없었다.
결혼 전에 독립해서 혼자 살아봤다면 끼니를 챙기는 게 이 정도로 힘들지 않았을 텐데 요령이 없었다. 매 끼니마다 '무조건 풍성하게' 차렸다. 아무리 맛있는 메인 요리가 있어도 밑반찬과 국이 갖춰지지 않으면 부실하다고 여기는 X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가 매번 이런 밥상을 요구한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맛있고 푸짐한 밥상을 차려주면 고마워하며 워낙 잘 먹으니까 그 모습이 보기 좋아서 더 해주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어쩌다 한 번이지 타지에서 직장 생활하면서 매끼마다 밥상을 차려내기는 쉽지 않았다. 메뉴 구성부터 장을 보고 요리하고 치우는 것 까지 한 끼를 먹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새삼 엄마가 위대해 보였다.
결혼 초, 어제와 다른 식단을 구성하기 위해 난생처음 '조기 구이'에 도전해 봤다. 마트에서 세일을 하길래 저녁 밥상에 노릇하게 구워진 조기를 올리면 좋겠다 싶었다. 그때까지 생선 요리 자체를 해 본 적이 없던 나는 엄마가 해주던 걸 떠올려서 대충 흉내냈다.
겉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이는 조기 구이가 완성되었다. 생선 살 한 점을 골라 입에 넣는 순간 조기의 비린내가 확 퍼졌다. 비위가 약한 X는 그 길로 화장실에 가서 뱉어버렸다. 이제 보니 냉동 조기라서 해동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로 겉만 구운 게 화근이었다. 그걸 굽느라 온 집안에 생선 연기가 자욱했는데 한 입도 못 먹고 다 버렸다. 고생만 공은 온데간데없고 졸지에 비린 생선으로 비위를 상하게 한 주범이 되어 두고두고 원망 거리가 됐다.
지금 생각하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그럼 네가 구워 먹어라"라고 할 수도 있는데 당시에는 미안한 마음만 들었다.
그때부터 결혼 생활 내내 단 한 번도 집에서 생선 구이를 먹은 적이 없다. 실패 확률이 낮은 고기만 구워 먹었다. 고기를 구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굽는 사람은 연기와 냄새를 온몸으로 마셔서 다 굽고 나면 식욕이 떨어진다. 먹고 나서 기름기 가득한 주방을 치우는 것도 일이라서 나중에는 밖에서 사 먹게 됐다.
이혼을 하고 식욕이 뚝 떨어졌다.
식탐에 환장한 사람 때문에 먹는 문제로 너무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당분간은 신경을 끄고 싶었다. 한동안 살이 빠지는 장점도 있었다. 물론 몇 달만에 제자리를 찾으면서 금세 회복했지만 하루 한 끼라도 즐겁게 먹으면 만족했다.
몇 년 만에 부산에 내려가면서 엄마표 생선구이가 생각났다. 뭐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이혼 후 처음이었다. 혼자 KTX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니 마치 여행을 가는 기분이었다. 부산역에 발을 디뎠는데 오랜만이라 그런지 주변이 많이 바뀌어서 어색했다. 마중을 나온 엄마를 보는 것도 어색했다.
부산역에 내리자마자 부산의 맛, '돼지 국밥'을 먹으러 갔다. 서울에는 순대 국밥만 있다. 어쩌다 찾은 돼지 국밥집은 부산에서 먹던 맛이 아니었다. 엄마와 수육 백반을 시켜 한 술 뜨는 순간 안도감이 들었다. 국밥을 잘 먹으면서도 밥에 말아먹는 건 싫어하는 나와 엄마는 식성이 비슷해서 둘이서 종종 수육 백반을 시켜 먹곤 했다. 별 거 아닌 일이 추억이 되어 버릴 정도로 외로웠나 보다.
부모님 집은 그새 이사를 해서 처음 가봤다. 삼십 년을 넘게 부산에 살아도 해운대에 살아본 적이 없는데 영화의 거리와 가깝고, 수영만 요트 경기장과 동백섬을 산책할 수 있는 곳이어서 관광객 마냥 약간 들떴다. 오랜만에 본 바다 풍경은 햇볕에 반짝이는 보석이 떠 있는 것 같았고, 처음 보는 영화의 거리는 생전 찍지도 않던 카메라를 켜게 만들었다.
저녁에는 평소답지 않게 오빠가 회를 사준다고 했다. 오빠한테 회를 얻어먹은 건 처음인 것 같다. 이혼을 하니 온 가족이 갑자기 잘 챙겨주는 장점도 있다. 원래 회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그날은 좀 들떴는지 "회에는 역시 소맥이지!"라며 잘 먹지도 못하는 술까지 들이켰다.
그날 부모님 집에서 술김에 푹 자고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엄마의 아침 운동을 따라나섰다. 동백섬을 따라 걷는 길은 평화로웠고, 역시 낯설었다.
운동을 하고 오는 길에 갑자기 비가 왔다. 지나가는 비라서 수영만 요트 경기장 근처에서 잠시 비를 피했다. 한쪽은 먹구름이 몰려오고, 반대쪽은 맑게 개인 파란 하늘이 공존했다. 마치 우리 인생의 희비가 교차하듯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
드디어! 대망의 생선구이를 먹었다.
무슨 생선인지 들어도 기억이 안 난다. 손바닥만 한 생선이었는데 보기보다 살도 많고, 고소했다. 무엇보다 비린내가 전혀 안 났다. 아침부터 생선 구이만 4마리를 먹었다.
몇 년 만에 부모님과 아침 밥상을 마주 하니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생선 뼈에서 최대한 많이 살을 발라내는 일에 비하면 이혼은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아, 나는 원래 생선을 참 좋아했었지. 이 좋은 생선도 안 먹고 어떻게 살았지?
좋아하는 걸 잊고 살만큼 중요한 일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이혼 후에는 내가 믿었던 신념이나 절대 가치란 영원하지도 않으며 틀릴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 입맛마저 바꿔가며 결혼 생활을 맞추려고 했는데 돌아오는 건 원망뿐이었다. 아마 그도 나 때문에 희생한 게 있었을 것이다. 각자 나름의 사정은 있는 법이니까 끝까지 이해하지 못해 유감일 뿐이다.
아직도 집에서 생선 구이를 해 먹지는 않는다. 생선 구이 전문점에서 사 먹어봐도 그냥 그랬다. 같은 생선인데 뭐가 다르지? 내 입맛이 달라진 건지, 생선 맛이 달라진 건지 몰라도 지금까지 제일 맛있었던 생선 구이는 이혼 후에 처음으로 먹은 엄마표 생선 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