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연락처를 지우니 삶이 단순해졌다

마흔쯤 되니 비로소 살 만해졌다

by 백소피

서른아홉에서 마흔으로 넘어갈 때,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넘어갈 때보다 별 생각이 없었다.

고민은 스물아홉 일 때 더 심각하게 한 것 같다. 아무것도 한 게 없이 서른이 되다니! 원래 나이는 아무것도 한 게 없어도 먹는 법인데 뭘 그리 호들갑을 떨었을까.


서른아홉 일 때 어서 빨리 마흔이 되길 바랬다. 지금의 이 혼돈과 불안을 마흔이 잠식시켜 줄 거라 막연히 기대했다. 나이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나이 한 두 살에 민감해할 나이도 지났고, 아무리 동안으로 보인들 그 사람의 삶의 흔적은 어떤 식으로든 묻어 나오기 마련이다. 그걸 감추는 게 더 나이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여겼다.


마흔이 되었을 때, 나는 결심을 해야 했다.

이대로 삶에 타협할 것인가 아님 판을 뒤집어엎을 것인가.


이혼을 합의하고 X가 집을 나가기 전 날 "내가 돈을 많이 벌었다면 이혼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마치 모든 이유가 돈 때문인 듯. 돈이 표면적인 이유는 맞다. 돈이 있었다면 서로에게 신경을 '덜' 쓸 수 있고, 내가 '덜' 희생할 수 있으니까.


먹고사는 게 팍팍하면 모든 게 힘든 건 사실이다. 생계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면 모든 일에 관대해지는 것도 그렇고. 하지만 그 후는? 그게 다야? 맨날 명품 백이니 뭐니 쇼핑이나 하고, 여행이나 다니고, 돈 생각 없이 유유자적 글이나 쓰고 취미 삼아 공부나 하면 행복한가? 그게 내가 원하는 삶인가?


본질에서 벗어나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면 이혼까지 가지 않고 살았을 거라는 말에 잠시, 아주 잠시 혹할 뻔했으나 익숙한 불안을 떠나보내는 두려움 때문인 것을 깜빡 속을 뻔했다.



마흔, 판을 새로 짰다.

주어지는 삶이 아니라 티끌만큼의 선택이라도 가능하다면 내게 주고 싶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명확하게 안다고 확신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상이 이분법으로 딱 쪼개 지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좋아하고, 나를 힘들게 하는 게 뭔지 정리는 필요했다. 불면증으로 현실과 상상이 뒤죽박죽 얽혀 미치기 일보 직전인 나에게 필요한 건 '단순함'이었다.


가장 먼저 관계를 정리했고, 그다음은 짐을 정리했고, 마지막으로 일상을 정리했다.


결혼뿐만 아니라 의미 없는 관계는 전화번호를 바꾸면서 자연스럽게 마무리가 됐다. 십 년 넘게 바꾸지 않은 전화번호로 걸려 오지 않는 이들을 친구로 저장해 놓은 들 연락처 목록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맘 같아선 카톡의 번호도 삭제하고 싶지만 그게 안되니 일단 숨기거나 차단하는 걸로.


연락처 목록과 카톡 친구를 정리하니 핸드폰 화면의 스크롤을 내리지 않아도 될 정도로 짧아졌다. 카톡 친구 ooo명쯤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닌지 너무 아싸인데 싶었지만 예전에 결혼식이 생각났다. 하객이 적어서 사진 찍을 때 휑할까 봐 이리저리 연락하고 대뜸 청첩장을 보내며 내가 그리도 경멸하던 짓을 하고 있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었다. 뭐하러 이런 짓을 하나 싶었지만 그렇다고 과감하게 생략할 만큼의 배짱도 없었기에 미루고 미루던 숙제처럼 얼른 해치워버리고 싶었다.


지금은 직장 생활을 하지 않으니 당장 연락이 닿지 않으면 큰일 날 만한 일도 없다. 쓸데없는 잡담은 만나서 할지언정 전화나 카톡으로 길게 하는 걸 좋아하는 편도 아니라서 더 쓸 일이 없다.


인간관계를 정리하니 삶이 훨씬 단순해졌다.

내가 원하는 일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이사 갈 때 대부분의 짐을 버리고, 최소한의 것만 가지고 갔는데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어떤 물건을 사야 할 때는 꼭 있어야 하는지 수십 번 생각해 본다. 그렇게 오래 생각하다 보면 또 잊고 지나갈 때가 많다.


프리랜서로 살면서 일상의 루틴을 만들기까지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명상을 하고, 가볍게 유산소 운동을 하거나 일기를 쓴다.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거나 일을 한다. 되도록이면 오후에는 광합성을 하러 나가려고 노력한다. 집에서만 일하니까 시간과 공간 감각을 잊어버리는 것 같다.


오늘은 아침에 명상을 하고, 반신욕을 했다. 겨울이라서 반신욕을 낮에 하는 게 덜 춥다. 반신욕을 하며 수업하는 책을 읽었다. 니체의 전기를 읽고 있는데 평생을 지독한 병마와 싸우며 지리멸렬한 삶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참으로 지독하게 쓰고, 사유한 천재 철학자였다. 그의 삶도 철학이 있기에 병에 집중하지 않고 그나마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구차하다.


일상이 단순해지면 집중이 잘 된다. 해야 할 것과 아닌 것의 구분이 명확해지니까.

지금 내가 글이라도 쓰고, 공부라도 하지 않으면 뭘 할 수 있을까? 뭘 하고 싶을까?


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 이 두 가지만 하고 싶다.

연락처를 지우니 비로소 내가 보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밥상에 국을 없애고 생긴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