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섹스 앤 더 시티>
넷***가 뜨기 전부터 미드를 좋아하던 나는 볼 만한 신규 콘텐츠가 없어서 구독을 해지하고 무료인 쿠*으로만 간간히 봤다. 오래간만에 취향에 맞는 미드를 발견해 다음 시즌을 보기 위해 웨**로 갈아탔다. 보고 싶던 미드가 제법 있었다. 예전에는 밤새 몰아서 보곤 했는데 요즘엔 그런 열정은 없다. 몇 편 보다가도 질려서 차라리 책을 찾게 된다. 그러다 20대부터 좋아하던 미드를 발견했으니 바로 <섹스 앤 더 시티>!
TV를 잘 보지 않지만 영화 채널에서 <섹스 앤 더 시티>를 방영하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본방 사수를 하게 됐다. 하지만 드라마의 특성상 수위가 높아서 부모님과 같이 살 때라 차마 대놓고 보지 못했다. 지금 다시 보니 그렇게 수위가 높은 것도 아니지만 어릴 때는 누구랑 같이 보기가 민망했더랬다.
<섹스 앤 더 시티>는 미국에서 방영될 당시에도 2030 여성들의 워너비 같은 드라마였다. 드라마 주인공인 캐리의 의상과 구두는 엄청나게 히트를 쳤다. 그녀로 인해 마놀로 블라닉이라는 구두가 대체 뭔지 궁금해질 정도였으니까. 4명의 뉴요커 여성들의 연애와 결혼에 관한 이야기가 공감되지 않는 부분도 많았지만 그녀들의 스타일과 여자끼리의 우정이 좋아서 계속 보게 되는 드라마였다. 그때는 나도 30대에는 저렇게 멋진 비즈니스 우먼이 되고 싶다는 환상을 품곤 했었다.
물론 나의 30대는 <섹스 앤 더 시티>의 인물들과 전혀 달랐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그렇게 잘 나가는 여성들도 공통적으로 하는 고민이 있었으니 바로 '결혼' 문제였다.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 다른 4명의 주인공들이 주말 오전에 모여 브런치를 먹으며 나누는 대화를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처음 이 미드를 볼 때와 지금의 나는 십 년이 넘는 세월의 차가 있고, 처지도 달라졌다.
지금이야 브런치 카페가 널렸고, 가격만 오지게 비싸고 별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 대학생 때는 약간 선망의 대상이었다. '결혼'에 대한 기준도 그저 어디선가 주워듣고 남들이 말하는 것들을 마치 내 생각인 양 착각하던 때였다.
<섹스 앤 더 시티>는 1998년부터 시작해서 2004년 시즌6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종영된 후에도 인기가 여전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나도 영화를 보긴 했지만 우려먹기 식의 에피소드에 불과해 그다지 추천하진 않는다. 올해에 스핀 오프처럼 다른 제목(And Just Like That)으로 드라마가 방영된다고 하니 그건 좀 기대가 된다.
요즘 왓*에서 다시 시즌1부터 보는 중이다. 한 편당 20분이 조금 넘는 시간이라 금방 몰아서 볼 수 있다. 시즌 1은 무려 24년 전 작품이다. 세상에! 내 나이가 벌써...
시즌1에서 캐리가 빅을 만나고 그의 연애관 때문에 고민하는 내용이 나온다. 캐리는 결혼 생각은 없지만 남자 친구인 빅이 결혼한 전적이 있는 데다 자신보다 자유분방해서 늘 불안하다. 그러다 우연히 남자 친구에게 "다시는 결혼하고 싶지 않다"라는 말을 듣게 되면서 고민에 빠진다.
연애할 때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서로가 좋아서 연애를 한다. 그러다 관계가 깊어지면 "이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고, 나이도 있고 주변 환경을 보면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자연스러운 순서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결혼에 대해 회의적이었기 때문에 주변에서 결혼을 할 때도 아무렇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는지 확신할 수는 없다. 결혼에 대한 환상도 없고, 결혼할 여건도 되지 않으니 당시 만나던 남자 친구가 결혼 얘기를 꺼내지 않아도 초조하지 않았다. 연하를 만났을 때는 결혼에 대한 부담이 덜해서 차라리 편하다고 생각했다.
캐리처럼 자유분방한 여성도 사랑하는 사람이 이미 결혼한 적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지만, 다시는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오히려 그때부터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다.
지금 이대로도 좋지만 앞으로 결혼할 일말의 가능성도 없는 남자 친구와 계속 만나야 할지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자신이 결혼을 원하는지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적어도 지금 이 남자와 열정적인 사랑이 식은 후에도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것이다.
'결혼'은 연애의 끝이 아닌 연장선이므로 남자 친구가 결혼 자체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면 언젠가는 끝날 사이라는 게 불안하다. 결혼해도 끝날 수 있다는 건 일단 결혼을 해야 할 수 있는 고민이니 아직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캐리는 빅이 자신을 결혼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가 만났던 수많은 여자 친구 중 한 명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에 기분이 착잡하다.
캐리가 친구들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자 주변에서 보이는 반응이 제각각이다.
먼저, 시니컬한 변호사 미란다는 "남자 따위 필요 없다"라고 말한다. 경쟁이 치열한 남자 세계에서 일하는 미란다는 야망이 크고 능력도 있지만 번번이 성차별을 당한다. 그녀에게 남자란 이겨야 하는 대상이자 외로울 때 필요한 존재일 뿐이다.
웬만한 바람둥이보다 더 바람둥이고 성에 대해 자유분방한 사만다는 미란다보다 한술 더 떠서 아예 관심 밖이다. 남자에게 구속되는 것을 원하지도 않을뿐더러 뭐하러 결혼이라는 고생을 사서 하냐는 입장이다. 베스트 프렌드 캐리의 고민이니 진지하게 들어는 주지만 지금 서로가 좋으면 그뿐, 더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한편 네 명의 등장인물 중 가장 보수적이며 결혼이 지상 최대 목표인 샬롯은 캐리의 고민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그녀에게 연애란 곧 결혼을 위한 필수 과정이므로 상대방이 결혼 생각이 없다면 이건 관계의 적신호다.
캐리가 빅을 사랑하니까 당연히(!) 결혼하고 싶어 할 것이라고 믿는 샬럿은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서로 솔직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연애할 때 "우리 사이는 특별할 거야", "나는 다른 여자들과 달라"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이런 생각이 착각인지 아닌지는 안타깝게도 연애가 끝나 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한참 눈에 콩깍지가 씔 때는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힘들다.
다만 "절대"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그는 절대 그럴 리가 없어", "우리 관계는 절대 변하지 않아"와 같은 맹신으로 인한 기대감이 관계에 더욱 얽매이게 한다.
"언제든 헤어질 수 있어"가 아니라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라는 것이다.
무슨 운명론 같은 것을 믿는 게 아니다.
연애와 결혼, 이혼을 거쳐 다시 싱글이 되고 보니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결혼 전에 알았더라면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과가 달라지진 않겠지만 내가 좀 더 성숙하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자책은 그만하고 나 자신을 좀 더 사랑할 수 있었다면 과정 속에서 덜 힘들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혼 후에 만난 친구가 "사실 결혼할 때 너랑 그 사람은 맞지 않아 보였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은 막상 이혼을 했으니까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당시에 그런 말을 왜 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듯 물었다.
친구는 "결혼할 때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해도 내 말을 듣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결혼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상태도 아니고 결혼식장에서 만난 친구한테 "너 이 결혼 안 어울려. 다시 생각해봐"라고 말하면 싸움밖에 나지 않는다. 설사 그 친구의 말이 맞다고 해도 다시 연락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내가 결혼 전의 나에게 돌아가 조언을 한다면 뭐라고 할까?
차라리 결혼하지 말라고 했을까?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결혼이냐고 물었을 것 같다. 굳이 결혼을 하고 싶다면 어떤 사람과 해야 좋을까? 적어도 지금 그 사람은 아니라고 말할까?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이 물음에 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캐리의 지인 중 남성 편력이 화려한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청첩장을 보낸다. 잘 나가던 친구가 결혼을 한다고 하자 주인공은 신랑이 누구인지 궁금해서 친구와 다 같이 참석한다. 뉴욕의 온갖 잘난 남자들은 다 만나고 다니고 눈이 높기로 유명하던 친구가 선택한 사람은 의외로 평범하다. 캐리는 외모나 취향이 자신과 맞지 않는 남자와 결혼한 친구가 선뜻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참다못한 캐리는 그녀에게 그 남자와 결혼한 이유가 뭐냐고 질문을 하고, 세상의 이치에 통달한 듯한 친구는 "결혼은 남자쪽이 더 사랑하는 사람과 하라"라고 조언한다.
사랑을 질량으로 잴 수 있는 저울이 있다면 양쪽에 각각의 사랑을 놓고 무게 추가 기운 쪽이 더 사랑하는 거라고 판명할 수 있겠지. 바보 같은 말이지만 사랑은 무게로 잴 수 없다.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을 보고, 내 마음과 비교해 볼 수는 있어도 사랑은 고정 불변의 성질이 아니기에 그 상태로 똑같이 지속되지 않는다.
"너 밖에 없어", "목숨보다 더 사랑해"라는 말을 들어도 헤어질 수 있고, 배신당하거나 상황이 역전될 수도 있다. 당시에는 진심일 수도 있다.
사랑은 혼자 할 수도 있다. 헤어져도 자신의 사랑은 남아 있을 수 있으니까. 결혼은 그렇지 않다. 혼자 하는 결혼이란 없다. 각자 사는 결혼은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결혼은 원하든 원치 않든 강제로 사각 링 안에서 마주 보고 빅 매치를 펼치는 권투 경기와 같다. 상대방이 기권하거나 기절해 버리면 게임은 끝난다.
실제 경기라면 승자와 패자가 있겠지만 결혼은 끝나도 이상하게 승자가 없다. 패자와 패자만 남을 뿐이다.
캐리의 친구가 조건이 더 좋은 남자들을 놔두고 자신을 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 것도 결혼을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결혼을 '잘 유지하는 것'에 초점을 둔 선택으로 보인다.
연애도 마찬가지지만 결혼이라는 불확실한 미래에 베팅하려면 적어도 자신을 더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게임을 할 때도 아이템을 사용하면 훨씬 더 쉽게 그 판을 깰 수 있다. 결혼생활에서 문제가 생길 때 남편이 나를 더 사랑한다는 점은 게임에서 강력한 아이템을 장착한 것과 같다.
결혼이 무슨 장난도 아니고 권투 경기니 게임이니 비유하는 게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결혼 전에 이런 얘길 들었다면 뭔 쓸데없는 소리냐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생각에서 자유롭다. 오히려 결혼을 지나고 보니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매사에 너무 진심이어서 그 책임감과 압박감이 나를 얽매는 족쇄가 됐다.
이미 상대방은 기권한 지 오래인데 나 혼자 링 안을 빙빙 돌고 있었다. 아이템빨이 떨어진 지가 오랜데 나만 모르고 삽질하고 있었다. 누가 그랬다. "결혼은 함께 추는 춤"과 같다고. 스텝이 꼬이고 박자를 놓치면 파트너가 잘 리드하면 되지만 혼자 출수는 없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결혼할 생각이 없는 남자와 만나도 될까?"를 답하자면 정답은 자신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친구나 부모님, 이미 결혼한 사람이나 전문 상담가를 찾아가거나 하물며 점쟁이를 찾아가도 아무도 알려줄 수 없다. 오직 본인 만이 답할 수 있다.
남자의 "결혼할 생각이 없다"라는 말이 진지한 관계로 발전하거나 책임지는 게 부담스러워서 하는 면피성 발언인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그런 속셈으로 핑계대는 남자치고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여자와 잘도 결혼하는 걸 우리는 주변에서 너무 흔히 봐 오지 않았던가.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을 얼마나 진심으로 대하는지 본인은 알고 있다. 남자의 감언이설이나 주변의 간섭과 상관없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은 불안감을 걷어내면 진실은 이미 내 안에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결혼할 생각이 없는 남자와 만나도 될까?"를 고민하기에 앞서 아픈 진실이라도 마주할 용기가 있다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관계에 대한 불안감으로 겁이 난다고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말아야 한다. 나를 위해서 용기를 내야 한다.
나는 그 용기가 부족했던 것 같다. 겁이 나서 후회할 만한 선택을 했다. 그 선택이 잘못됐는 줄 알면서도 다시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오랫동안 나를 방치했다. 지난날의 나에게 참 미안하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는 빅과 헤어지고 다른 남자에게 청혼을 받게 되지만 그리 기뻐하지 않는다. 결국 파혼을 하고 마는데 그걸 보면 자신을 '결혼 상대'로 여기는 상대가 누구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그녀는 빅에게만 특별한 여자이고 싶었던 것이다.
만약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자신이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 가장 특별하고 유일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나 또한 상대방을 그렇게 여긴다면, 결혼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 따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너무 순진한 생각 아니냐고? 글쎄, 사랑은 원래 유니콘 같은 거니까.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남은 인생, 실패를 피하기 위해
사랑까지 피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