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My Sophy's Friend -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안녕, 소피? 나는 미래의 '너'야.
이 편지는 과거의 나와 대화하고 싶어서 쓰는 거야. 20대, 30대 일 때 몰랐던 얘기들, 차마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얘기들을 지금의 나와 대화할 수 있으면 어떨까? 그랬다면 조금은 덜 불안했을까?
'과거의 나'이자 이 글을 읽는 20, 30대를 거치거나 겪어 온 모든 소피의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싶었어. 그 당시의 나는 누구에게도 속마음을 잘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 삭히고 마는 아웃사이더였거든. 지금이라면 그때의 나에게 조금은 편하게 얘기할 수 있어.
20, 30대의 소피가 '현재의 나'와 대화한다면 이렇지 않을까 상상해 보고, 이 땅의 모든 소피들에게 편지를 보내.
소피 : 미드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캐리가 남자관계에 대해서 고민하는 장면이 있어. 아버지뻘 되는 보그의 사장인가 하는 사람이 캐리에게 이성적으로 접근하면서 그녀의 아킬레스건인 '아버지 문제'를 들먹이는 장면이야. 개수작인줄 알고 욕하면 그만 일 텐데 그게 또 한동안 뇌리에서 잊히지가 않거든. 그 장면을 보고 엄청나게 공감을 했어. 뜨끔하기도 했고. 나도 그 이슈에서 자유롭지 못하니까.
내가 남자 보는 눈이 없는 건 '아버지와의 문제'를 반복하기 때문일까? 그럼 영영 벗어나지 못하면 어떡해?
나 : 나도 그 미드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어. 캐리에게 그 말을 꺼낸 그 아버지뻘 되는 호색한은 자신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어린 여자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변태 XX였지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는 거지. 한창 연애할 시기에는 별로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어. 헤어지면 딴 남자를 만나면 되니까. 힘들어도 시간이 약이니까 견딜만했어. 그런데 말이야, 이혼을 하고 나니까 정말 돌이켜 보게 되더라.
내가 이혼 한 이유는 불완전한 '아버지와의 관계' 때문일까? 상대만 바뀔 뿐 무의식 중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십 대부터 내가 만난 남자들의 소름 끼치는(?) 공통점이 있더라고. 바로 그 남자의 아버지 관계, 다시 말해 '아버지와 문제가 있는' 남자들만 만났다는 거야. 그런데 이것도 일반화하기 어려운 게 대한민국에서 대체 부자지간이 아름다운(!) 관계인 가정이 몇이나 되냐고?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본 적이 없어.
'아버지'라는 가부장적 권위에서 비롯된 강압적인 관계이거나 소통은 커녕 어머니를 통해 관계를 이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 전 XX도 아버지와 전혀 교류도 하지 않다가 결혼을 빌미로 갑자기 가까워지게 됐거든. 웃긴 건 남편은 '아내'에게 자신이 못한 아들 역할까지 떠넘기고, 시부모는 '며느리'에게 그동안 못 받은 부모 대접을 받으려고 하더라고.
소피 : 이러니까 점점 결혼을 안 하려는 거야. 왜 여자들만 이런 짐을 떠안아야 돼?
나 : 결혼이라는 게 완성된 하나의 삶이 아니라 둘이서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을 즐겨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 같아. 결혼하기 전에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결혼'에 대한 프레임을 씌워 놓고, 무리해서 자신을 끼워 넣는 거지. 그럴수록 상대적으로 점점 불행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돼.
생각해 보니 결혼 전에 '나'에 대해 정립할 시간이 부족했었던 것 같아. 내가 뭘 원하는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 채 결혼을 한 거지. 연애도 마찬가지야. 문제는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하고 나서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 알게 된다는 거지. 라캉의 말대로 "나 자신의 욕망은 결국 타자의 욕망"에 의해 규정되는 거야.
집을 벗어나고 싶어서 합법적인 독립인 결혼을 했지만 더 큰 불구덩이에 뛰어든 꼴이었어. 그건 회피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더라고. 시간이 지나야 만 알 수 있는 것들이니 내 선택에 후회는 안 해. 그런 시행착오가 있었기에 공부를 하게 된 거고 여기까지 온 거니까.
정신분석을 공부하면서 프로이트의 핵심 이론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보며 바로 이거다 싶었어. 그동안 실패로만 끝난 남자와의 관계를 해석할 수 있는 단서가 되었거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잘 알려진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파생된 용어야.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왕이 아버지 라이오스를 죽이고 어머니 이오카스테와 (모르고) 결혼한 것은 우리들 자신의 유아기 욕망을 대신해서 충족시키고 있을 뿐이라는 거야.
프로이트는 저서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거기에 빠져들었다가 다시 빠져나오는지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타날 만큼 무척 중요하다"라고 강조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해소하는 과정은 생물학적 남녀의 성별에 따라 정 반대라고 볼 수 있어. 남자아이의 경우 거세 콤플렉스(어머니를 욕망함으로 인해서 자신의 남근이 거세될 수도 있다는 공포심)로 인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소멸돼.
반면, 여자아이의 경우 거세 콤플렉스로 인해(여자도 남자처럼 원래 남근이 있었는데 박탈되었다는 환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만들어져. 여자아이는 남자아이와 다른 남근 부재에 대한 책임을 어머니에게 돌리면서 욕망의 대상이 아버지로 바뀌게 돼.
프로이트는 "여자들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할 때가 무척 많다"라고 단언해. 여자들이 결혼 전에는 아버지상에 따라 남편을 선택하거나 남편을 아버지의 자리에 놓지만, 실제 결혼 생활에서는 과거 어머니와의 나쁜 관계를 남편에게 반복한다고 봐. 결혼 생활에 문제가 있거나 이혼 등을 경험한 여성들이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억압된 것이 뚫고 나온다고 볼 수 있는 거지.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애증' 관계일 때가 많잖아? 같은 여자로서 고단한 어머니의 삶을 보면 안쓰럽다가도 아버지나 오빠에게는 하지 못하는 넋두리를 딸에게만 늘어놓으며 어느새 감정 쓰레기통 취급하는 경우를, 그런 걸 알면서도 차마 어머니를 내치지 못하는 구원자 콤플렉스에 빠진 딸의 이야기. 너무 내 얘기 같지 않니?
소피 :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부모 관계가 정상적이지 못한 특정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거야?
나 : 그렇지 않아.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나지오는 저서 <오이디푸스>에서 "오이디푸스는 보통 가정의 아이는 물론, 한 부모 가정의 아이와 재혼 가정, 심지어 동성애 부부의 아이, 고아거나 입양아까지 서너살 가량의 모든 아이들에게 해당하며, 세상에 오이디푸스를 피할 수 있는 아이는 없다"라고 봐. 프로이트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거기에 빠져들었다가 다시 빠져나오는지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타날 만큼 무척 중요하게 여겼어. 나지오는 "여자의 일생은 지속되는 과거 오이디푸스의 갈등으로 위험한 상태에 놓여있다"라고 했어. 여성의 근본적인 불안은 사랑하는 남자에게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다는 거야. 여자아이일 때 이미 어머니에게 속았던 경험(남자아이와 다른 남근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지.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정신분석의 출발점이 되는 중요한 이론인 만큼 비판적 견해도 만만치 않아. 여성의 경우 멜라니 클라인이 강조한 '전(前) 오이디푸스기'를 더 중요하게 살펴봐야 할 필요성이 있거든. 더 들어가면 너무 이론적인 얘기만 나오니까, 내 논문 주제이기도 한 만큼 다음에 다시 얘기하기로 하자.
중요한 건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잘못된 남성상에 대한 시각은 그리 간단하게 지적하고 고칠 문제가 아니라는 거야. 정신분석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말하면서 과거의 이야기를 회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정신분석에서는 모든 것이 '현재적' 이거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3~4세에 거친 후 잠복기를 지나 사춘기에 한번 더 발생하고, 성인이 되어서 잘못 억압되어 있을 경우 '신경증'으로 발현되기도 해. 신경증이라고 해서 무슨 정신병에 걸린 것처럼 생각할 필요는 없어. 인간에게 병적이지 않은 평범한 신경증은 오히려 자신을 지탱하게 해 주는 필요악이 될 수도 있으니까. 현대인이 얼마나 우울증과 불안이 심한지 너도 잘 알 거야. 그릇된 고정관념을 깨고, 자신의 기질대로 삶의 밸런스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내가 정신분석가가 되려는 이유이기도 해.
소피 : 그냥 이대로 혼자가 편해. 차라리 혼자 살래.
나 : 소피야, 나도 다시 싱글이 됐을 때 가장 먼저 내 탓인 것 같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죄지은 기분이 들었어. 가장 최악은 더 이상 내 판단을 못 믿겠는 거야. 내 선택에 후회도 없고 책임지는 건 당연한 거지만 나에게 일어난 일을 제대로 해석할 필요가 있었어. 그 방법이 내 경우에는 공부였어.
삶에서 정답은 없다는 걸 너도 알 거야. 자신에게는 스스로 한 선택만이 정답인 거야. 대신,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히 파악할 필요는 있어. 더 이상 '피해자 프레임'에 갇혀 있고 싶지는 않잖아?
명심해, 그 누구도 네가 바라는 걸 대신해 줄 남자는 없어. '아버지'와의 관계는 네 탓이 아니잖아. 그건 바꿀 수가 없어. '아버지'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불쌍하게 여기기로 했어. 그리고 좀 더 자신을 믿기로 결심했지.
쉽지 않은 거 알아. 아직도 배워가는 중이고. 좀 천천히 가도 되잖아? 사랑이 두렵다면, 자신을 사랑하는 법부터 배워. 너무 진부하다고? 자신을 사랑하는 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 이기심이나 나르시시즘과 다른 개념이야. 혼자 있어도 충분하다는 기분이 들 때 다시 시작해 봐.
소피 : 혼자 있어도 충분하다는 기분은 어떻게 알 수가 있어?
나 : 아까 라캉의 말 생각나? "나 자신의 욕망은 결국 타자의 욕망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아! 이 사람이라면 혼자 있어도 좋고, 같이 있으면 또 다른 재미가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나의 결핍을 상대방이 채워주고, 상대방의 모자람을 내가 채워줘서 완벽하게 일치하는 모자이크처럼 완성하려고만 하지 마. 억지로 끼워 맞추고, 깎아내리다가 이도 저도 아니게 되는 수가 있어.
이제부터는 나의 결핍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모자람을 막연한 기대감으로 바꾸지 않기로 했어. 물론 쉽지는 않아. 사랑은 환상일 때가 아름다운 법이니까. 그 환상에서 깨어났을 때 현실도 살아갈만하다고 느끼면 된 거 아니겠니?
오늘은 첫 편지라 주절주절 말이 길었네. 소피야,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건 과거의 네가 잘 살아왔기 때문이야. 고마워. 무슨 일이든, 무엇이 되었든 세상에서 가장 너를 응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