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Letter to ME 05화

Who am I? 자기분석의 시간

Letter To Me

by 백소피

프로이트는 편지광이었다.

19세기 후반~ 20세기 초 인물이니 통신 수단이 별게 없었으니까 당연한 걸 수도 있지만.

그의 활발한 저작 활동과 동료 학자들과 주고받은 편지의 양도 엄청난데 생계수단으로 진료소까지 운영했으니 실로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다.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를 처음 접하면서 시대순으로 따라가 보면 제일 먼저 편지를 만나게 된다.

열린책들에서 <정신분석의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발간된 이 책에는 1892년부터 1899년까지 그의 뮤즈와도 같은 친구이자 잠재적 동성애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게 해 줄 정도로 각별했던 빌헬름 플리스에게 보낸 편지가 실려있다.


플리스는 프로이트와 같은 정신분석학자는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프로이트를 잘 이해하고, 받아주었다. 서로의 견해 차로 결별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프로이트가 최초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비롯한 히스테리 환자를 치료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는 정신분석 이론에 대한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혼자 간직하지 않고 플리스에게 편지를 썼다.


플리스와 결별하고 난 후에는 융, 아들러, 페렌치, 블로일러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대표적인 정신분석가들과 편지로 활발히 교류했다. 프로이트를 주축으로 모인 일종의 추종자와 같은 학자들은 그를 존경했지만 결국에는 각자의 길을 간다. 그것은 어찌 보면 서로의 성장을 위해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인류의 지식 발전을 위해서는 그들이 뭉쳐 있는 게 오히려 손해 아닐까. 다들 뛰어난 천재들이었으니 프로이트를 떠나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건 뼈아픈 이별을 겪더라도 필연적이라고 본다.


<정신분석의 탄생>에는 프로이트가 플리스에게 편지를 쓰긴 했지만, 중요한 학문적 토대가 되는 시발점이 담겨 있어서인지 번역이 편지 특유의 부드러운 문체가 아니다.


내 경우에도, 어머니에 대한 사랑의 감정과 아버지에 대한 질투의 감정을 발견했다. 그것은 히스테리 환자가 된 어린아이들만큼(편집증에 있어서 가문-영웅, 종교의 창시자들-의 <소설화>와 유사하게) 이르게 나타나지는 않았을지라도, 모든 어린아이들의 공통된 감정이다.
- 프로이트. 1897년 10월 15일 빈, <정신분석의 탄생>

누가 편지를 이런 식으로 쓸까? 독일어를 잘 몰라서 원서를 봐도 그 뉘앙스가 잘 전달되지 않는 게 아쉽다.


프로이트와 융이 주고받은 편지를 번역한 책 <프로이트와 융의 편지>는 그나마 좀 낫다. 프로이트에게 반해(?) 융이 일방적으로 먼저 편지를 보내오는데 처음에는 서로 격식을 차리고 정중한 어투였다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친밀해지면서 편지에 쓰는 호칭("Dear colleague"에서 "Dear friend")부터 바뀐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가도 분석을 받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였지만 그는 정신분석의 창시자라서 그런지 자기 분석밖에 하지 않았다. 그의 전 생애 통틀어 모든 저서와 심지어 편지까지도 어찌 보면 자기분석에 가깝다. 그나마 동료 학자들과 편지로 자신의 내밀한 무의식을 고백하면서 의견을 주고받긴 했지만 일반적인 정신분석의 형태는 아니었다.


프로이트에게 편지는 끊임없는 자기분석의 중요한 작업 중의 하나였다. 마치 우리가 일기를 쓰듯이. 편지에는 잡다한 신상도 적혀있지만 정신분석에 대한 학자로서의 고민과 새로운 논문 작업에 대한 고충이 절실하게 드러나 있다.


아무리 상담으로 바쁜 와중에도 편지 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건 그 행위가 일종의 탈출구, 요즘식으로 바꿔 말하면 힐링이지 않았을까 싶다.


요즘 시대에 아날로그식으로 편지를 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가끔씩 손 편지를 쓴다. 똑같은 말이라도 문자나 이메일로 받을 때보다 손글씨로 쓴 편지를 받으면 훨씬 더 정성스럽게 느껴진다.


손글씨를 쓸 일이 별로 없는 세상이다 보니 글씨체를 처음 내보이는 날에는 왠지 모르게 발가벗은 것처럼 부끄럽기도 하다. 실제로 악필인 사람들은 손글씨 쓰는 걸 꺼려하기도 하더라만 그건 그거대로 매력이 있다. 글씨를 보면 그 사람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아무리 못난 글씨라도 빙긋이 웃게 된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나에게는 프로이트처럼 편지를 주고받을 만한 친구가 없다. 대신 나에게 쓰기로 했다. 일기를 쓰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마치 자신을 3인칭화 해서 조금 닭살이 돋긴 하지만, 좀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효과가 있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의 나에게 얘기해 줄 수 있다면 어땠을까?


잠도 오지 않고, 괜히 머리만 복잡한 야심한 새벽.

과거의 '나'였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답장은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엉뚱한 얘기지만, 더 글로리의 송혜교도 연진이에게 편지를 몇 통씩이나 정성스럽게 써 놓고, 복수가 끝난 뒤 한꺼번에 태우지 않나. 처음엔 진짜로 보내려고 쓰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속으로만 담고 있었던, 꺼내 놓아 봤자 연진이가 들어줄 리 없는 그 말들을 편지에 차곡차곡 담아 마지막에 털어냈을 때, "딱 죽고 싶을 만큼만" 행복함을 느꼈으리라.


이 편지가 한 통으로 끝날지, 언제까지 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 써서 비우게 될 때까지 한번 해보자.


Dear My Self

안녕? 언젠가부터 너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맘먹었는데 이제야 쓰게 되네. 이렇게 공개적으로 말이야. 너를 만나는 게 그리 반갑지는 않아. 그냥 만나지 말고 살았으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진심이야.

난 당연히 앞만 보고 살아야지 뒤돌아 보는 짓은 어리석다고 생각했거든. 후회할 짓은 하지 않는다는 게 내 신조였는데 지금 보니까 후회하는 걸 인정하기 싫은 오기였나 봐.

오늘부터 생각날 때마다 편지할게. 답장은 기대 안 해. 아니, 차라리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왠지 "거봐, 내가 그럴 줄 알았어."라는 말을 들을까 봐 겁나거든.

나이 들수록 목소리만 커지는 걸 보면 겁쟁이라서 그런가 봐. 지금쯤이면 마음의 평온을 찾을 줄 알았는데 사실 딱히 그렇지도 않아. 내가 20대부터 지금까지 근 20년 간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찾느라 방황했잖아? 그러다 보니 다시 너를 찾게 되네?

설마 죽을 때가 다 된 건 아닐 테고 왜 그럴까? 그건 앞으로 차차 편지 쓰다 보면 알게 되겠지. 그럴 거라고 믿어.

나는 요즘 끌어당김의 법칙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있는데 마치 세상의 온갖 불순물만 다 끌어당기는 커다란 자석 같아. 어디까지 불안해지나 한번 끝까지 가보려고. 억지로 밝은 척 괜찮은 척 하기엔 난 너무 꼬였나 봐.

그냥 내 식대로 한번 해보지 뭐. 그래서 편지도 쓰는 거야. 너도 내 편지가 그리 달갑지만은 않을 거야.
괜찮아.

바닥 깊이 잠식한 불안을 끄집어내서 밖으로 내동댕이 칠 때까지 우리 함께 발버둥 쳐 보자. 파이팅!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까 좀 낫다야. 담에 또 보자.
from 너의 가장 가까운 친구 소피.



* 함께 읽고 싶은 책

http://aladin.kr/p/UF97P

http://aladin.kr/p/UUsCL

(공교롭게도 둘 다 품절인데 도서관에서 빌려 보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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